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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배려’로서 《라이온킹》, 그 성장 이야기

 

    news  letter No.589 2019/8/27     






《라이온킹》은 1994년 디즈니사가 내놓은 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사는 1990년대 들어 과거의 영화를 되돌리고자 4편의 애니메이션을 연속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그 애니메이션이 《인어공주》(1989)를 시작으로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그리고《라이온킹》이었다. 이 네 편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연속적인 성공은 실패를 거듭하며 위기에 몰려있던 디즈니사에 숨통을 터주며, 활기를 되찾아주었다. 실제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1960년대 이후 연속적인 실패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의 네 편의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사의 위기를 해소하고 새로운 부흥으로 이끌었던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 《라이온킹》은 당시 애니메이션으로는 전에 없던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라이온킹⟫은 전 세계적으로 77억 달러의 수익을 안겨주었고, 시리즈물로 2편이 더 제작 되었으며, 영화에 캐릭터로 등장하는 티몬과 품바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여기에 《라이온킹》은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꽤 오랫동안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다. 이런 《라이온킹》의 성공에 힘입어 디즈니사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로 재도약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성공을 뒤로 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아련하게 잊혀져가고 있던, 이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최근 실사판으로 새롭게 재등장하고 있다. 2017년 《미녀와 야수》를 시작으로 올해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알라딘》, 그리고 최근 개봉한 《라이온킹》까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올 여름 한국 극장가에 디즈니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곧 《인어공주》까지 실사 제작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왜 과거 애니메이션이 실사화 되어 연이어 제작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원작 《라이온킹》의 경우, 기술적으로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지만, 화면에 넘쳐나는 생동감으로 인해 실사에 버금가는 현실감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감은 2D라는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후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의 거듭된 발전이 영화산업을 큰 성공으로 이끌었고 이는 기존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실사화가 단순히 기술적 발전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자신이 꿈꾸는 상상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자신의 기억 속에 추억들을 불러내어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는 인간의 그런 욕망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관객들은 자신이 보는 이미지가 현실에 더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더 근접한 실재적인 이미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세계가 현실과 동일하게 재현되길 바라는 욕망, 그러한 욕망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를 추동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다. 특히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킹》은 90년대 애니메이션으로 아직도 관객들의 기억 속에 부유하는 이미지들이다. 그런 이미지들이 관객의 기대와 만나 실사판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실사판으로 재탄생한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은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였다. 특히 실사판 《라이온킹》의 경우 원본의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원작과 스토리라인을 거의 동일하게 유지한다고 해도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1994년 원작 《라이온킹》이 큰 성공을 거두었을 무렵, 성공에 못지않게 혹독한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비판의 내용은 여러 가지였으나 핵심은 이 영화가 미국 백인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이 이데올로기는 미국적 가치로 대표되고, 이 미국적 가치는 미국적 민주주의로 대변된다. 그 이데올로기적 뉘앙스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이 스카가 무파사에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계략을 꾸미는 장면인 'Be Prepared'이다.

이 장면은 스카가 하이에나들과 연합하여 그의 형 무파사와 조카 심바를 살해하기 위해 계략을 꾸미는 장면이다. 그런 장면을 영화는 뮤지컬로 표현하고 있다. 뮤지컬로서 ‘Be Prepared’는 원작 ⟪라이온킹⟫의 인상적인 몇 장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냉정한 스카의 카리스마를 단적으로 들어내는 강렬한 장면이기도 하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하이에나들이 마치 나치나 옛 소련의 군대가 사열하는듯한 장면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이 장면은 《라이온킹》 전체 스토리의 뉘앙스를 결정하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해 《라이온킹》이 어떤 가치를 대변하고 있고, 이 영화가 왜 미국적 민주주의를 대변하는지를 설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것이다. 원작 《라이온킹》은 이 장면을 통해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그래왔던 것처럼 미국 백인 중산층의 가치와 이를 기반으로 한 미국적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디즈니식 클리셰’가 존재하는 영화로 인식된다.

이에 반해, 실사판 《라이온킹》은 같은 스토리라인이지만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품고 있다. 2019년 버전에서 많은 사람들은 원작에 비해 동물들의 풍부한 표정연기가 결여되어 있고, 역동적인 뮤지컬적 요소가 부족하다고 아쉬워하였다. 이러한 아쉬움은 동물의 실제적인 이미지로 영화를 재현하다보니,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과장 기법인 데포르메(déformer)를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한계로 인해 원작이 가지고 있는 동물들의 익살스럽거나 섬세한 표정들을 구현할 수 없었고, 화려했던 많은 뮤지컬 장면 또한 다소 단조롭게 처리되었다. 이에 따라 스카가 계략을 꾸미는 장면인 'Be Prepared'도 전작에 비하면 화려함이 많이 제거되었다. 하지만 실사판의 'Be Prepared'가 단지 재현 방식의 차이 때문에 단조롭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장면은 의도적으로 재구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원작이 나치나 소련 병사의 사열 장면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면, 2019년 버전은 이런 이미지를 제거하고 스카와 하이에나들의 탐욕에 더 집중함으로써 영화의 전체적인 뉘앙스를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의 성장 스토리에 더 집중하였다.

개인은 누구나 자신만의 프라이드랜드를 가지고 있다. 프라이드랜드는 말 그대로 개인의 자부심의 영역이다. 개인의 명예와 자존감의 영역이 바로 프라이드랜드다.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동물을 주인공으로 인간의 인간됨을 설명한다.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자아 성장을 위한 적절한 규범과 의무의 준수가 필요하다. 이런 규범과 의무는 탐욕과 쾌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지켜야 할 당위이며 개인은 그러한 것들의 준수를 통해 영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욕망과 탐욕으로 표현되는 스카와 하이에나들의 'Be Prepared'는 개인의 프라이드랜드를 황폐하게 할 미성숙한 자아의 상태를 형상화하며, 그런 프라이드랜드를 외면하고 떠나는 심바의 뒷모습은 의무와 규범을 뒤로 한 채 안락한 삶만을 원하는 자아의 모습을 구현한다. 하지만 쾌락과 안락한 삶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개인은 현실과 대면하여 자신의 프라이드랜드를 풍요롭게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심바는 쾌락과 안락의 땅, 하쿠나마타타를 뒤로 하고 다시 프라이드랜드로 돌아가야 한다. 탐욕과 욕망으로 황폐해진 ‘돌봄’ 없는 땅으로 변해있는 프라이드랜드에서 심바는 자기 내부의 두려움과 욕망인 스카와 대결하고 풍요로운 프라이드랜드를 되찾아야만 한다.

실사판으로 돌아온 《라이온킹》은 개인의 성장에 대한 드라마이다. 개인의 성장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내면적 성찰행위다. 내면적 성찰은 지켜야 할 의무와 규범 속에서 특정한 자기인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자기인식을 확립해야 하는 실천적인 사유행위다. 따라서 개인의 성장은 ‘자기 배려’라는 자아의 테크놀로지가 지속적으로 통용되는 실천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심바가 겪는 일련의 모험은 그러한 자기배려를 통해 자신의 성장을 추구하는 실천적 여정의 단면일 것이다.

 




도태수_
한국학중앙연구원
논문으로 <한국 초기 개신교 문서에 나타난 문자성>이 있고, <비평으로서 신화 연구하기>라는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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