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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리즘과 도호쿠오헨로
news letter No.590 2019/9/3
현대적 순례의 뉴웨이브 중 하나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비극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인 이른바 ‘다크투어리즘’을 들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오래 전부터 다크투어리즘을 대표하는 곳으로 히로시마 원폭돔과 나가사키 원폭평화기념관을 꼽을 수 있겠다. 1995년 한신대지진과 2011년 3・11동일본대지진 관련 지역도 다크투어리즘의 대상지로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원효대사처럼 유명한 고승 홍법(弘法)대사 구카이(空海)의 묘소가 있는 와카야마현(和歌山県) 고야산(高野山)의 오쿠노인(奥の院)에는 한신대지진 위령비와 동일본대지진 위령비가 마주보고 있다. 이 외에도 한신대지진 이후 전국 각지에 피재(被災)기념비가 세워졌고 그곳을 순회하며 위령하는 ‘진재 모뉴멘트 교류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주로 피해자 가족이나 친지들로 구성되었으며, 종교의 틀을 넘어선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
도호쿠오헨로의 홈페이지(http://tohoku-ohenro.jp/)는 도호쿠오헨로를 ‘마음의 길’이라고 소개하면서 천년 후에도 이어질 이야기를 찾아내어 ‘마음의 길의 이야기’로 널리 발신하는 것이 사업의 취지라고 밝힌다. 이와 아울러 민족과 종교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순례지를 찾아주기를 기대하면서, 피해지역들이 협력하여 천년 후에도 경제적・문화적으로 자립 발전할 수 있는 부흥에 일조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 내용을 피력하고 있다.
성지순례라는 전통적인 종교시스템을 이용하여 특정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와 기억을 전달하여 사회적으로 공유하려는 시도인 도호쿠오헨로 63개소의 순례지는 신사와 사원 등의 종교시설이 가장 많다. 신사(도리이 포함) 16개소, 사원(지장상과 관음상 포함) 14개소, 정교회 1개소 등 총 31개소로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신사와 사원은 대개 높은 고지대의 지반이 탄탄한 곳에 세워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다수가 쓰나미 피난처로 기능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이 위령비, 진혼탑, 석비, 인공산 등의 각종 모뉴멘트(10개소)와 기념공원(6개소) 순이며, 그 외에 센다이공항과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하여 학교, 기차역, 운하, 수문, 뮤지엄, 등대, 간석지 등의 공공시설 및 해수욕장, 온천장, 포구, 수족관, 방재숲과 특정 나무, 가옥군, 역사적 인물의 동상 등 종교와 무관한 곳도 많다. 전체적으로 도호쿠오헨로의 순례지는 진재 피해를 면한 곳이나 쓰나미로부터의 피난처가 된 곳, 부흥의 상징이 된 곳, 피해가 심했던 곳이 주종을 이루며, 후쿠시마 제1원전과 그 근방의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모두 위령・진혼・부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도호쿠오헨로에 대해 다크투어리즘이란 말은 이미지가 안 좋으니 ‘부흥투어리즘’ 또는 ‘희망투어리즘’이라고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크투어리즘은 관광학, 문화연구, 인류학, 경영학, 정보학, 지역학, 커뮤니케이션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각 분야마다 정의가 조금씩 달라 아직도 공통의 함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다크투어리즘이란 어디까지나 방문자나 연구자의 입장에서 본 용어이고, 피해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부흥투어리즘이나 희망투어리즘이란 말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크투어리즘 연구자 이데이 아키라(井出明)에 따르면, 도호쿠오헨로의 순례지는 부흥투어리즘과 겹치기는 해도 다루는 정보에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양자가 겹치는 부분은 장소적인 위치정보에 관한 것이며, 개념적인 공통항은 놀랄 만큼 적다. 한마디로 다크투어리즘의 역할은 부흥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다크투어리즘의 명소로 만듦으로써 자신이 희생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노력해 왔다. 마찬가지로 만일 도호쿠오헨로를 다크투어리즘의 명소로 만듦으로써 재해지역의 부흥을 부각시키려 한다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사례와 동일한 ‘피해의 신화’를 초래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정부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후쿠시마 재해 지역을 다크투어리즘의 명소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절박한 인식 및 해결책 제시가 먼저일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유출 문제는 지금도 해결이 요원한 상태이다. 거의 체르노빌급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3・11진재 부흥을 앞세워 실상을 은폐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는 ‘도호쿠오헨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시켜 온 재해 지역민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도호쿠오헨로는 다크투어리즘의 명소로서가 아니라 “사자와 생자를 매개하는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재난의 기억과 이야기성을 강조하는 ‘도호쿠오헨로 프로젝트’의 결성 취지 및 순례지 선정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다.
어쨌든 다크투어리즘과 부흥투어리즘을 둘러싼 도호쿠오헨로의 위상은 애매하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빅터 터너의 ‘리미널리티’를 상기시킨다. 리미널리티는 애매성 즉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뿐만 아니라 ‘이방인성’과 ‘구조 내의 열등성’이라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근방에 살던 주민들은 일본사회 내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되었다. 실은 도호쿠오헨로의 순례자 또한 이방인이다. 순례자에 해당하는 영어 ‘필그림’(pilgrim)의 어원 ‘페레그리누스’(peregrinus)는 원래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도호쿠 지방 자체도 역사적으로 고대에는 오랑캐들 즉 이방인이 사는 곳으로 여겨져 정벌의 대상이었고, 현대에는 고령화와 과소화 지역을 대표하는 곳이자 3・11대지진 이후에는 방사능 오염지역이 되어 일본사회라는 견고한 구조 내의 열등성을 대표하는 곳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도호쿠오헨로는 ‘일본 순례문화의 리미널리티’라고 불릴 만하다. 거기서 일본의 자기폐쇄적 사회구조에 균열을 초래할 만한 커뮤니타스가 생겨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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