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치병(治病)의례의 과거와 현재
newsletter No.625 2020/5/5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고 있다. 국내만 해도 감염자가 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250여 명이나 된다. 전 세계적으로도 감염자가 삼백만 명을 훌쩍 넘어선다. 이처럼 질병이 발생했을 때 무속은 어떤 역할을 해 왔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치병은 무속이 담당한 주요 기능의 하나로, 삼국시대부터 확인된다. 물론 무속만이 치병을 담당했던 것은 아니다. 무속의례 외의 다른 의례도 행해졌다. 고려시대 예를 들면, 불교, 도교의례는 물론 신사나 산신, 온신(瘟神)에게 기도를 한다든지 아니면 거처를 옮기는 피병(避病) 등의 행위를 하였다.
이는 의약의 공급이 충분치 못했던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속 치병의례는 왕실이나 양반가,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행해졌다. 이문건의 《묵재일기》를 보면, 그가 무녀를 불러 손자, 아들, 부인을 위한 다양한 치병의례를 14차례 이상 행했음이 확인된다.
왕실도 무속의 치병의례를 행하였다. 태종 18년(1418)에 성녕대군 이종이 완두창으로 위독하자, 판수를 불러 치병의 성공 여부를 점치고 국무 가이와 무녀 보문에게 치병의례를 행하게 하였으나 끝내 사망한다. 이 일로 무녀 보문은 성녕대군의 노비들에게 맞아 죽기까지 한다.
세종 때 원경왕후 민씨가 학질에 걸리자, 무당에게 별에 대한 제의를 행하도록 하였고, 또한 세종이 직접 민씨를 데리고 현재 인왕산 선바위[繕巖] 아래 냇가로 행차를 옮겨 무당에게 치병의례를 행하게 하기도 한다, 성종 때에는 문성왕묘를 다녀 온 성종에게 병이 생기자, ‘공묘’의 신이 빌미가 되었다는 무당의 말에 따라 성균관 대성전 뜰에서 치병의례를 행하다가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 저지당하기도 한다. 선조의 왕후인 인순황후가 아팠을 때도 역시 무당의 치병의례가 궐내에서 행해졌다. 숙종이 마마를 앓았을 때도 무녀 막례에 의해 치병의례가 행해진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널리 무속 치병의례에 의존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행해진 무속 치병의례에는 여러 유형이 있었다. 첫 번째로 무당이 행하는 치병굿이 있다. 두 번째로 무당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피병이 있다. 물론 피병은 무당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이 경우, 무당은 환자의 생년월일을 보고 피병의 방향과 돌아올 시기를 정해주었다. 세 번째로 이른바 대명노비(代命奴婢)를 무당집에 바치기도 하였다. 대명노비는 환자의 병을 대신하는 일종의 인간 희생양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무속의 치병의례 중 특별한 것이 천연두가 걸렸을 때 행하는 마마배송굿이다. 천연두는 몸에 들어온 지 13일 째에 떠난다고 하는데, 마마배송굿은 이때 천연두를 가져온 두신(痘神)을 잘 내보내는 굿이다. 마마배송굿에서는 말과 마부로 두신이 탈 것을 갖추며, 기타 의장(儀狀)은 벼슬아치들이 외출할 때와 같이 한다. 말이 없으면, 짚으로 만든 말로 대신하였다. 무당을 부를 수 없는 가난한 선비의 집에서는 제문을 지어 배송하였다. 마마배송굿은 19세기 후반 종두법이 널리 보급되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조선시대에 무당은 무속의 치병의례 시행에 그치지 않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했다. 치병의례를 행한 뒤 병이 낫지 않거나 병자가 죽는 등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었을 경우, 무당은 이에 대한 책임추궁을 받았다.
또한 무당들은 전염병이 돌 경우 의원들과 함께 병자를 돌보는 역할도 맡았다. 평소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병자를 돌보고, 연말에 돌 본 사람만큼 세나 부역을 경감받았다. 천연두가 유행할 때는 무녀들이 천연두 환자를 찾아내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무당의 이러한 역할을 고려할 때, 조선시대 무당은 단순히 종교적 의례를 집행하는 종교전문가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현대의학이 발달하고 의료시설이 널리 갖추어진 지금 상황에서 무속은 치병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종두법의 시행과 함께 마마배송굿이 사라진 것처럼, 현재 무속은 질병 치유와 관련된 기능을 거의 현대의학에 넘긴 상황이다. 특히 현재 무속의 치병의례 중 직접적 치병을 위한 의례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행해지는 치병의례가 있다. 그것은 조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병을 위한 치병굿이다. 이러한 병은 현대의학으로서는 치유할 수 없다. 또한 무속의 치병굿에서는 병의 원인이 된 존재와의 대화와 소통을 통한 상호 이해와 공감,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관계 회복이 치병의 중심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무속의 독특한 병인론과 치유 메카니즘으로 인해 현대 의학이 일반화된 상황에서도 무속의 치병굿은 나름의 생명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
논문으로 <일제의 무속 규제정책과 무속의 변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무속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비교: 접신(接神)체험과 신(神)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