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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가져다준 예기치 않은 선물
newsletter No.635 2020/7/14
‘흩어져야 산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상생(相生, 서로 함께 사는 대화합의 정신)과 해원(解冤, 원통한 마음을 다 풀어냄)의 종교를 가진 대한민국을 더 새롭게 하고 있다. K-방역이 세계 표준모델이 된 것은 물론이고, 타자와의 ‘상생과 연대’라는 인류 미래 가치를 선도하고 있다. 현대문명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극단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것이라서 더불어 사는 현실에서는 상생과 연대 정신의 결핍으로 드러난다. 이런 문명은 개인의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켜 인간 공동체의 장(場)을 파괴하고, 과도한 산업화, 도시화, 자본화로 인해 인간의 건전한 삶을 크게 훼손시켜 왔다.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은 그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지금과 같은 생활 방식과 사회구조가 유지되는 한 전염병은 대규모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경쟁의 자유와 승자 독식만 지향하는 자본주의를 보다 인간화, 사회화하고, 자연 보호와 생명 중시와 같은 친환경적 삶의 방식을 시급히 도입해야만 21세기 후반에도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류 문명사의 전환을 요청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을 통해 인간의 과잉 욕망을 절제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금년 3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소위 선진국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해 지금도 국가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팬데믹 현상이 아직 최악의 상태에 이르지 않았고, 곧 2차 파동이 닥쳐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국가들은 다급한 경제 사정이나 정치적 이유로 지역 봉쇄나 자가 격리를 해제하고 있어 국가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의 방역 실패는 공적 국가가 사적 시장에 포획되어 인간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공공의 영역을 무시해 온 결과다. 최첨단의 의료기술과 IT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공공재를 한낱 시장의 상품으로만 간주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자원을 방역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국가적 재난에 대한 정부의 대비, 제반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제도나 리더십, 공동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공공지원, 그리고 시민의 자발적 방역 참여도 부족했다. 선진국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은 모양새다.
이와 달리 한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며 국경과 지역의 봉쇄 없이 방역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소통과 개방, 그리고 투명성을 기반으로 한 K-방역은 세계적인 방역모델이 되었고, 많은 찬사도 받았다. 이 같은 방역 성적표는 우리의 국격과 자존감을 크게 높이고, 한국인의 저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러 면에서 이제까지 소위 선진국이라는 일본과 미국을 따라 배우는 학습자였다. 해방 이전에는 근대국가를 형성하려는 우리의 표준모델이 일본이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미국이 표준모델이 되었다. 이는 종교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근대국가에 잘 적응한 일본불교와 미국 자본주의의 선도적 역할을 한 미국개신교를 소위 선진종교로 받아들였다.
해방 이전 한국은 메이지유신을 모방하려는 친일세력과 자주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세력 간의 대립으로 점철되었고, 지금도 일본 불매운동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맞서고 있다. 해방 이후는 미국이 요구하는 국가발전 모델과 남북분단의 긴장 관리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었다. 지금도 자주 국가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인 전작권(戰作權)과 같은 군권(軍權)까지 미국에 내주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죽음에 빠뜨리는 야수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는 물론이고, 우리의 민족 공동체를 고사시키는 패권적 미국주의는 한국인의 의식과 생활 방식을 지배하고 있어 미국이 가져다준 모든 것을 거의 당연시한다. 실제로 시장 근본주의를 추종하는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국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탈냉전 이후에도 남북분단의 긴장을 관리하는 미일동맹으로 말미암아 한국은 패권국 미국만 아니라 전범국 일본의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롭지가 않다.
개항 이후 한국인은 두 타자에 대해 깊은 애증 관계에 빠져 왔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닮음과 흠모의 대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시기와 저주의 대상으로 삼았다. ‘생존과 성장’을 생각하면 이들을 닮고 또 흠모하게 되고 ‘자주와 민족’을 생각하면 저주의 대상이 되는 묘한 감정을 가지고 개항 이후 150여 년의 모진 세월을 살아온 우리가 아닌가.
그러나 이번 팬데믹 사태는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흠모했던 일본과 미국이 과연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의 표준모델인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과거 군국주의의 유산에다 아날로그 시대를 답습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사회 공공재를 시장에 맡겨 국가의 공공성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미국을 보면서 과연 이들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가모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의문과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발전모델에서는 한민족의 정체성과 일제 잔재의 문제, 미국의 발전모델에서는 분단과 자주의 문제가 나름대로 언급되어 왔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우리 내부에서 그냥 응어리져 왔다. 더구나 이념의 시대를 벗어난 오늘날 탈냉전과 민족화해의 시대에도 남북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두 국가는 아직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기회만 있으면 한국의 역량을 무시하며, 남북의 대립과 긴장을 조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방역은 예기치 않은 역사적 반전을 가져다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 땅을 헬(Hell)조선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었지만, K-방역의 세계 평가를 보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들보다는 적어도 세계사의 큰 흐름에 앞서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단순한 K-방역의 선진국이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가는 미래 그린(Green)문명의 창조자로서 위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선진국들에 대한 과거 환상을 과감히 버리고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 길을 다지기 위해 천지인(天地人)의 통합 이치에 순응하는 이화세계(理化世界)와 모든 인간을 다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은 우리 민족의 이상을 다시 새기고, 동서합덕(東西合德)과 같은 이 시대정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이는 이번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예기치 않는 고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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