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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36호-마마의 신비와 공덕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0. 7. 21. 15:13

마마의 신비와 공덕


newsletter No.636 2020/7/21

 

 


같이 있어 미운정이라도 든 것일까? 조선시대에는 천연두에 걸렸다가 나으면 마마신을 보내는 굿을 하였다. 아픔을 가져오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 한 병이 떠나간다고 굿을 열었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했을까? 제발 뒤돌아보지 말고 말없이 가시라는 마지막 간절함으로 이해해야 할까. 사대부 중에도 굿판을 외면하면서도 ‘송두신문(送痘神文)’이라는 글을 지어 마마신을 직접 전송한 자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마마신은 어떤 ‘신(神)’일까?

보통 유자(儒子)에게 ‘신’이란 선한 존재들이다. 귀신을 음양의 조화로 이해하는 신유학에서 귀신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기(氣)의 신비한 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본다면 사람을 아프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마마를 신이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사대부의 송두신문에는 마마신의 신비로움과 공덕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813년에 장혼(張混, 1759-1828)의 4살, 3살 두 손자가 마마에 걸렸다. 매일 아침 일어나 어른들에게 문안하며 귀여움을 받던 손자들이 마마에 걸리자 장혼은 옷을 벗지 못하고 고기반찬을 삼가고 전전긍긍하며 밤낮을 보냈다. 마침내 병이 물러가자 음식을 차리고 송두신문을 지어 마마신을 보내었다. 그때 어떤 이가 그에게 마마의 신이 정말로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장혼은 마마의 신비로움을 통해 그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여러 병과 달리 마마는 한번 걸리면 재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프기 시작하여 반점이 생기고 부풀어 오르고 고름이 차고 딱지가 앉는 데에 각각 3일씩 걸려 하나의 오차도 없이 12일이면 끝나는 것은 어느 병에도 볼 수 없는 신이한 것이라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마마에게 현혹(?)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마마의 정확한 시간적 추이이다. 마마를 앓기 시작해 생기는 피부의 반점 증상 3일, 포진 발생 3일, 고름 형성 3일, 그것이 터진 후 딱지가 되어 떨어지기까지 3일 등 12일 동안의 증상은 당시 널리 알려졌다. 장혼을 비롯한 당시 사람들은 그 지식을 자신 또는 가족의 증상을 통해 확인하고 신비롭게 여겼다.

장혼은 마마의 신묘함에서 끝나지 않고 마마의 공로(功勞)까지 기록하였다. 마마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환자의 피부와 뼈를 견고하게 하고 환자의 지혜를 자라게 하니 신이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마마에 걸리는 것은 성인(成人)이 되기 위한 입문식으로 인식되었다. 12일이라는 정해진 시간 내에 신묘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린 피부는 어른의 피부가 되고 고통 속에서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마마가 남긴 거친 피부, 딱지는 성인의 결과물로 간주되었다. 1683년에 숙종이 마마에 걸렸다가 회복되었을 때 이현석(李玄錫)이 지어 올렸던 성두가(聖痘歌)에서는 마마신의 공로를 ‘옥성지공(玉成之功)’이라 하였다. ‘옥성(玉成)’은 송(宋)나라 장재(張載)가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는 말이 나온다. 두역(痘疫)의 고난을 성왕과 성인이 되기 위한 입문의 과정으로 묘사한 것이다.

육체의 고통을 주고 떠나가는 그 몹쓸 존재를 신으로 모시던 시절보다 우리는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반점이 생기고 포진이 생기고 고름이 맺히고 그것이 터지며 딱지가 생기는 하루하루의 변화를 바로 곁에서 마음조리며 간호하던 일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다. 우리에게 코로라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와 삶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있다.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집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한다. 하루빨리 보내고 싶다. 사라진다면 빚을 내 굿을 하고 미사여구로 송신의 글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곁에 머무는 코로라는 우리가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우리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욱_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주요 저서로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조선왕실의 제향 공간-정제와 속제의 변용》, 《조선시대 국왕의 죽음과 상장례-애통•존숭•기억의 의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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