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자’의 언어에 드러난 ‘종교’ 개념 연구
newsletter No.666 2021/2/23
호시노 세이지(星野 靖二)의 『만들어진 종교』가 번역, 출간되었다(이예안, 이한정 옮김, 글항아리, 2020). 이 책의 원제는 『近代日本の宗敎槪念』이고 부제는 ‘종교자의 언어와 근대’로, 저자가 2006년에 제출했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하여 2012년에 출간한 것이다. ‘종교자’1)라는 용어를 처음 눈여겨보게 된 것은 작년 여름 박규태 선생님의 「초고령다사사회 일본에 있어 종교의 새로운 지평: ‘임상종교사’를 중심으로」라는 특별강연에서 종교자ㆍ(임상)종교사ㆍ스피리추얼케어사 등의 용어를 접하면서였다.2) 호시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종교자들이 기본적으로 지식인이며 추상적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언어화하고 그것을 특정 매체를 통해 공개했으나, 관학 아카데미즘의 종교학과는 다른 위치에서 정통적인 학문으로서의 권위를 배경으로 종교를 말하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그는 종교학이 일본에서 제도적으로 확립된 메이지 30년대 이전에, 몇몇 ‘종교자’들이 서양의 기독교론과 그 비판론 및 동시대에 학문으로 발흥하던 비교종교학 등의 활동을 참조하여, 이를 자신들의 변증론을 위하여 재해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왜 종교를 말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말했는지를 학문적 자리에서 종합, 분석하여 그 의미 맥락을 부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구성을 보자면, ‘종교 개념의 역사성이라는 관점’이라는 제목을 가진 제1장에서 ‘종교’ 개념에 관한 선행 연구와 자신의 연구 관점을 제시하였고, 이어서 제1부(2-4장)ㆍ제2부(5-7장)ㆍ제3부(8-10장)는 대체로 시기 순으로 서술하였는데, 시간적인 변화를 드러내기보다는― 저자가 「후기」에서 말했듯이―대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문맥’을 제공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제1부에서는 메이지 초기부터 10년대의 중반까지 ‘종교’가 어떻게 일본 사회에 제시, 수용되었는가를 고찰하였다. 즉, 기독교가 문명의 종교로 제시되었던 상황에서 ‘종교’와 ‘문명’은 불가분의 존재로 수용되었으며, 동시에 전통적 세계관을 통한 재해석이 이루어졌던 상황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의 종교자들이 주로 기독교와 불교의 ‘변증’이라는 문맥에서 한층 추상도가 높은 ‘종교’를 ‘문명’ㆍ‘학술’ㆍ‘도리’ㆍ‘도덕’ 등의 사항과 결부하여 논의했던 양상을 서술하였다. 제2부도 기독교와 불교 측에서 이루어진 변증의 국면에서 종교 개념이 형성되어갔던 과정을 다루는데, 다만 메이지 20년대를 전후하는 시기에는 ‘문명’이나 ‘학술’에서 분리되어 ‘종교’의 독자적인 영역이 모색되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예컨대 당시의 지도자적 기독교도의 한 사람인 고자키 히로미치(小崎弘道)는 종교란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며 도덕을 주체적으로 실천하게 한다고 여겼고, 새로운 형태의 불교변증론을 제시했던 나카니시 우시오(中西牛郞)와 또 다른 지도자적 기독교도였던 우에무라 마사히사(植村正久)는 모두 종교의 본질을 초월성과의 관계에 있다고 함으로써 종교의 독자성을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제3부는 메이지 20년대 중반부터 후기까지를 포함하는 시기를 다루는데, 핵심적인 주제는 ‘종교’와 ‘도덕’의 관계 양상이다. 저자는 종교 개념의 본질을 초월성에서 찾을 경우 종교가 도덕의 우위에 놓이지만,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불경사건’과 ‘교육과 종교의 충돌 문제’의 경우 국민도덕적인 ‘도덕’에 기독교와 같은 ‘종교’는 필수적이 아니거나 심지어 불필요하다는 입장도 생겨났다고 하였다. 나카니시 우시오의 경우, 종교의 독자성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일본과 관련된 가치가 더 상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면서, 저자는 일본에서 믿는 종교는 일본 국체주의와 충돌해서는 안 된다는 이해가 대두되면서 기독교와 불교 모두 개혁이 요구되었던 맥락을 소개하였다.
이 책의 서론에서 저자는 각 장의 내용을 간명하게 제시하였고,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이 책에 대한 대표적인 리뷰 및 그 안에서 지적되었던 비판점과 그에 대한 자신의 답변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의 평가를 덧붙일 필요는 없고,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생각을 몇 가지 적어보겠다. 첫째, 호시노 세이지가 근대 일본에 대해서 했던 작업을 근대 한국에 대해서 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구도가 될까? 이 의문은 한국에서는 이런 작업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관련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기보다는, 호시노와 같이 ‘종교자’들의 언설에 근거하여 과연 어떤 계기에서 불교나 유교 혹은 기독교가 아니라 ‘종교’라는 개념을 구사하게 되었는지, 또 그 대척점에는 어떤 개념군들이 어떻게 포진되어 있었는지를 맥락화한 연구는 아직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료의 부재뿐 아니라 축적된 연구의 부족이라는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러한 미비점들을 어떻게 보완하고 극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사나 한국불교사의 19-20세기를 서술하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의 변화에 따라 자료도 변화, 확장되어야 할 것이고, 자료의 부재를 그저 부재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하는 자료들을 맥락화에 동원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이지만, 19-20세기 한국의 종교문화 및 종교 이해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는 일차자료의 발굴과 정리가 절실하다. 예컨대, 근대 일본의 학지(學知) 체계를 구축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郎, 1856-1944)는 1891년부터 개설했던 ‘비교종교와 동양철학’ 강좌에서 비교종교의 형식으로 세계의 종교들을 검토하였고, 그 수업을 들은 도쿄제국대학의 제자들은 개별 종교의 전문가들로 성장하였는데, 놀랍게도 이들 대부분의 자료가 전집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21세기에 들어서 제국대학 및 경성제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가하면서 관련 연구가 빠른 속도로 축적되고 있는데, 최근에 읽은 「종교민족학자 김효경의 학문훈련과 제국배경」이라는 논문3)을 통하여 식민지 시기 한국의 종교학 및 한국인 종교(학)연구자들에 대한 연구가 종교학계에서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통감하였다.
공부가 점차 두어 가지 주제로 수렴되면서 깊어져야 할 나이가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오히려 점점 더 분산되면서 잡다해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엉뚱하지만, 소풍 나온 세상살이라고 맘 편히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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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宗敎者’라는 용어는 국어사전에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올라가 있고,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의 용례도 있었다. 일본어에서는 종교를 가진 사람을 宗敎者로 통칭하고, ‘宗敎人’이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듯하며, ‘宗敎家’는 특정 종교의 성직자나 전도사 등 종교 종사자를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원서의 ‘宗敎者’라는 용어를 번역서에서는 ‘宗敎家’라고 하였으므로, 독자들은 이 점에 유의하여 읽어야 할 것이다.
2) 초종파적 입장에 선 종교자들을 교육하여 임상종교사를 양성해내는 일에 종교학자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이런 현상은 다수의 성숙한 종교인들이 있기에 가능한 면도 있겠지만, 뭔지는 몰라도 일본에서 형성되어갔던 독특한 ‘종교’ 이해라는 토대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탈아(脫亞)를 꿈꾸며 아시아 속에서의 구화(歐化)를 추구하던 메이지 시기, 일본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일본인들이 형성해나갔던 ‘종교’ 이해, 나아가 일본 국체주의 하에 모든 종교들이 국가의 안녕질서에 위배되지 않음이 우선시되는 분위기와 연결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3) 이는 『민속학연구』 제36호(2015. 6)에 실린 전경수의 논문이며, 『근대서지』 제15호(2017. 6)에는 「사진으로 보는 김효경 선생」이라는 같은 저자의 글이 실려 있다.
이연승_
서울대학교 교수
논문으로〈서구의 유교종교론〉, 〈이병헌의 유교론: 비미신적인 신묘한 종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