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하는 재미를 알려주다
newsletter No.668 2021/3/9
후배 학자의 책을 받자마자 냉큼 읽어버렸다. 한승훈 선생의 《무당과 유생의 대결: 조선의 성상파괴와 종교개혁》(사우, 2021)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벌써 주요 언론에 소개되었고 팔림새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일반 독자의 흥미를 끌고 있음이 분명한데, 이 책의 ‘재미’가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 싶다.
종교학이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것은 우리끼리 흔히 하는 이야기이리라. 종교학을 아는 주변 학자들도 그 말에 흔쾌히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재미라는 것이 상당히 고생해서 올라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어서, 눈앞에서 실증해 보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종교학 하는 재미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증거물로 부족함이 없다. 그 재미를 편의상 셋으로 나누어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이 책은 흥미로운 자료로 가득하다. 우리는 한국 종교사를 공부하다 보면 조선은 유교 국가라는 단순한 도식이 실제 종교 현실과 얼마나 괴리된 것인지를 알게 되는데, 이 책을 가득 메운 자료는 그러한 현실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것들로 버릴 것이 없다. 조선조에는 왕조가 천명한 유교 외에도 불교와 무속의 종교 주체와 상징들이 다양하게 공존하면서 밀고 당기는 다채로운 양상이 펼쳐졌다. 이 자료는 흥미 위주로 뽑은 자료가 아니라 조선 시대 종교들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의 만남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 숙지해두어야 할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종교를 서술할 때 사용한 자료들, 예를 들어 알렌(Allen)이 무당을 설명하며 언급한 무함(巫咸)과 서문표(西門豹) 이야기가 어느 자료에 나오는 것인지, 게일(Gale)이 번역한 《천예록》 귀신 이야기의 맥락이 무엇인지 훗날 알 수 있었다.
둘째, 이 책의 자료는 종교학적 성찰로 직조되어 있다. 사료로 가득 찬 책이 거침없이 읽히는 것은 단지 흥미로운 자료를 뽑아 모아서가 아니라, 자료 사이를 종교학적 비교가 끈끈하게 메워주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인 성상, 종교개혁, 유교화(기독교화에 대응하는) 등은 조선 시대 자료를 다루는 언어로는 새로운 것들이다. 성리학을 다루면서 교리가 아니라 의례 영역에, 물질세계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종교적 실천에 주목하는 태도도 천상 종교학자의 모습이다. 따로 떼놓고 보면 과감하다 싶은 주장이나 비교가 있기는 해도, 자료 사이에 촘촘히 박혀있는 언급들이기에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싶어진다. 그러기에 이 책은 흥미로운 사료를 모아 놓은 역사 서적과는 다른, 종교학적 사유로 비벼 만든 다른 향기를 낸다.
셋째, 이 책은 새로운 형식의 종교학 서적이다. 이 책의 재미를 그냥 난해한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식으로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대중서를 겨냥하여 술술 읽히게 썼다는 표현도 적당하지 않다고 본다. 책에 담긴 생각이 재미있는 것이고, 종교학적으로 흥미로운 자료를 찾아가는 방식이 책의 재미를 주는 것이다. 에피소드로 흩어질 수 있는 사료를 묶어 생각하게 해주는 종교학적 성찰이 주는 쾌감이 있다.
나는 이 책이 새로운 세대의 종교학하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문의 언어와 대중의 언어의 장벽이 사라진 인터넷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학자의 언어를 대중적으로 공연히 톤 다운하는, 그런 번역이 공연해진 시대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대의 언어로 쓰여졌기에 전에 볼 수 없었던 종교학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책의 제목 “무당과 유생의 대결”은 깐깐하게 보면 1부와 2부로 구성된 책 내용을 오롯이 담지는 못한다. 대결이라기보다는 경쟁적 긴장이 흐르는 공존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결을 형상화한 표지의 인물들은 1, 2부의 책 내용과는 맞지만 제목과는 딱 들어맞지 않아 어색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 생뚱맞음마저도 웹툰 느낌을 주는 책의 새로움을 표현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그러이 봐주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새로운 세대의 종교학을 꿈꾸게 하는, 즐거운 책이다.
방원일_
숭실대학교 HK연구교수
최근 논문으로는 <치아 고통의 종교적 표현>, <성공회 선교사 랜디스의 한국 의례 연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