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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84호-기록자치와 문화민속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1. 6. 29. 18:18

기록자치와 문화민속

 

news letter No.684 2021/6/29

 




 


1.

우리는 이제 기억하고자 하는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이 제게는 그런 날 가운데 하루였습니다. 이날은 6․25 한국전쟁 71주년이자 인문사회계열 개인 연구과제 선정결과가 통보된 날이기도 했거든요. 한국전쟁이 제게 남다른 이유는 참전 용사인 아버지의 운명이 6․25와 저를 연루시키고(entangled)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날은 아버지의 절룩거린 인생에 위로한답시고 곧잘 막걸리를 받아드리곤 했었습니다. 국사[거시사/전체사]가 개인사[미시사]에 오롯이 새겨져 작동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 연구과제로 신청한 학술연구교수 A유형(5년)과 B유형(1년)은 당일 비슷한 시각에 발표되었는데요, 이날 ‘단톡방’에는 때아닌 축하와 위로가 넘쳐났었지요. 각 연구자의 선정결과와 무관하게 저는 뜬금없이 그‘불금’에 토해냈을 감정들의 교차와 교감, 그리고 축하와 위로의 문자 너머로 보이지 않는 환희와 비애의 신비적 세계를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지를 떠올려 본 하루였기도 했습니다. 그 관심은 아마도 지난 금요일 그 시각 제가 기획한 동해문화원「기록연구원」 양성과정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

사실 기억의 기록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번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부지불식간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억의 기록 매체에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그녀들 스스로가 또한 적극적으로 기록의 주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기록이란, 미국 국립문서기록원(NARA)에 새겨져 있는 글귀 “Democracy starts here.(민주주의는 여기서 시작한다.)”가 상징적으로 웅변하듯이,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초석이자 민주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구현하는 실천적 도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이 정도 되면 기록이 단순히 경험과 기억의 과거를 담는 그릇에 머물지만은 않는다고 봐야겠지요. 특히 기록주체로서의 ‘기록자치’는 지역공동체의 경험과 기억의 역사를 주민들 스스로 수집․발굴하는 아키비스트(archivist)가 되고, 이를 사회적 기억 및 공동의 기억으로 공유․활용하여 자신들의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의 민주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기록자치의 지점이 그동안 나름대로 지역학을 이끌어왔던 한국의 민속학, 인류학 분야에서 공동체의 문화 기록의 형식과 성격을 전연 달리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근현대 시기 한국에서 ‘공통의 역사와 문화를 지닌’ 지역사회를 규정하고 지역의 문화를 기록해 온 주체는 ‘지방’사학자와 국문학자를 포함한 범(凡) 민속학 연구자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도 지역학으로서 시․도 명칭 및 특정 지명을 차용하여 수십수백개의 “OO학”의 담론을 생산하고 주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속 분야의 연구자들이 불교민속 분야에 개입하여 ‘잘 아는 척’ 목에 힘을 주는 일이 다반사인 것처럼, 일군의 학문 권력은 유․무형문화재를 발굴하기도 하고 이를 다시 ‘모니터링’이나‘기록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지역학을‘감시하는’ 조력자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실제로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혹은 총체적 삶으로서의 민속인(民俗人, Folkloricus)이 되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기 일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민속문화의 평가와 온갖 문화재 보유자, 이수자, 전승교육사 등을 지정하고, 학술사업에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학문권력과 지역지식의 담론으로 넘겨두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기록과 관련하여 이 자리에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주어진 것으로서의 민속’, 그리고 ‘과제로서의 지역문화’등 우리가 지역사회를 떠올릴 때 함께 생각하기 쉬운 ‘민속사회’, ‘전통사회’를 규정하고 기록하는 민속문화(folk culture) 개념과 사용자의 인식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민속문화 개념은 가치 중립적으로 보이기 쉽고 때로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안성맞춤인지 몰라도, 그 개념은 ‘큰 시스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부분문화(part-culture)’를 지닌 ‘부분사회(part-society)’라는 측면에서 출발했다는 정도는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Kroeber 1923). 이 개념과 사용의 확산은 1930년대~1960년대에 걸쳐 미국의 문화인류학자들이 도시사회, 문명사회로의 연속적인 변화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기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dfield 1964). 되풀이하면, 민속문화는 그 자체로 완결된 문화가 아니고 민족문화(national culture)의 부분문화로 이해된다는 점입니다(Foster 1953). 그런 궤적에서 보면 그동안 지역문화의 기록주체를 자임했던 민속문화연구자들 스스로가 지역을 부분사회 혹은 민족국가의 탄생으로 생겨난 전근대시기의 ‘반자율적’ “‘민속’공동체(‘folk’ community)”로 상정하고, 그들 입맛에 맞는 조사와 기록만을 수행해 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아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

문제는 그런 민속문화의 인식과 기록의 역사성에 대한 비판과 무관하게 기록자치시대의 기록 참여자들 또한 현재는 지역 내 동일문화의 공유와 공속성(公屬性)에 대한 열망을 생각보다 강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개인이 저마다 추구하며 온전히 살아가는 생활세계는 기록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심지어 그 세계는 기록에 의해 도달 가능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삶의 연속성의 문제가 근본적 측면에서 공간적으로 제한되는 기록의 문자성(literacy)에서 좁혀질 수 없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이 점은 동해시 문화학당 「기록연구원」과정에서 어떤 분이 제기한 물음과도 맥락이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기록자치를 하고 또 민속문화를 ‘문화민속’이라는 역발상적 사유로 접근하면, 지역 공동체가 복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뼈때리는’ 질문에서도 저는 기록문화가 갖는 한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주민 아키비스트들의 다양한 삶이 다각화된 기록방식으로 모여 사회적 자산이 될 때, 보다 공정한 목소리의 통로(gateway)가 생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기록자치가 소위 학 적으로 특화된 전문연구자에 대한 아쉬움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고 한다면, 기록자치를 통해 미래의 선택적 가치 실현에 기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서 기록자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곧 삶 자체이고, 누군가의 기록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전달해 줄 수도 없는 신비하고 성스러운 자신들의 연루된 세계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금 한국의 지역에서는 기존에는 학계에서 담당했던 부분을 ‘학벌’이나 학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지역의 자문화연구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기록해 나가고 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동해 문화학당 「기록연구원」과정을 거쳐 지역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기록 활동을 할 무렵 사례연구로 한 번 더 보고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심일종_
서울대학교 강사 /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논문으로 〈감나무 식생분포로 본 감의 가치 연구〉, 〈현대 한국의 조상의례문화연구〉, 〈조선전기 국행수륙재 찬품연구〉등이 있고, 저서로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공저), 《유교와 종교의 메타모포시스》(공저), 《연어를 따라간 인류학자》(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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