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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 신학대학원의 ‘2021 다종교적 학위수여식’

 

news letter No.682 2021/6/15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유튜브는 새로운 탐색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개개인의 무의식을 간파하고 흥미 있을 영상들을 친절하게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이처럼 개인적 탐색의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종교’나 ‘신화’에 관한 연구나 대학 강의를 하기 위해서도 유익한 동영상 자료 확보가 중요하다. 이제 학자나 연구자들은 온라인 네트워크 세계의 중심이 된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장착한 화려한 동영상들을 만날 수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연구와 강의에서 정보에 뒤쳐질 뿐만 아니라 가독성 높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도 없다.

‘신화’에 관한 동영상 자료는 Ted-ed에서 만든 꽤 괜찮은 애니메이션들이 활용하기 좋다. 하지만 ‘종교’에 관해서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만들고 한글 번역 까지 갖춘 유익한 자료를 찾기 힘들다. 그나마 2014년 앤드류 헨리(Andrew Henry)라는 종교연구자가 만든 “Religion for Breakfast”라는 유튜브 계정은 참고할 만 하다. 당시 보스턴대학의 종교학 전공생이었던 그는 유튜브에서 종교학 내용이 완전히 부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채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슬람 입문’이나 “일본종교는 포케몬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와 같은 주제로 15분 가량의 영상을 만들어 올린다.1) 필자는 수업시간에 그가 만든 “코카콜라는 종교인가?(Is Coca-Cola a Religion?)”라는 영상을 보고 학생들과 ‘종교의 정의’에 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 바 있다. 종교에 대한 기존의 발상을 전환하는 파격적 질문과 재미있는 영상으로 학생들은 상당히 관심을 가졌다.

유튜브에서 ‘종교’ 관련 검색은 필자를 뜻하지 않게 흥미로운 영상들로 인도했다. 그중 하나가 2021년 5월 27일 올라온 영상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학교 수업은 현대의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날 나의 유튜브 첫 화면에 떠오른 영상이 하버드 신학대학원의 “2021 다종교적 가상 학위수여식(Multireligious virtual Commencement Service)”2) 이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영상을 접하고 어떤 필연적 알고리즘이 작동한 것 같았다. 칼 융의 동시성(synchronicity) 이론이 떠올랐다. 융이 환자로부터 꿈에 ‘황금색 풍뎅이’ 모양의 보석을 보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바로 그때 융의 진료실 창가에 그전에도, 또 그 이후도 절대 볼 수 없었던 ‘황금색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와 있었다는 일화와 관련된 이론이다. 내가 종교다원상황을 수업에서 다루려던 날, 하버드 신학대학원의 ‘다종교적 학위수여식’ 영상을 유튜브에서 제일 먼저 마주쳤던 것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의 무의식을 간파한 것은 아닐까?

50분 가량의 이 영상을 보면 석사학위 취득 학생들이 번갈아 자신이 속한 다양한 전통의 예배 문구나 시, 찬송과 음악을 연주한다. 신학대학원이라고 하면 기독교 신학을 가르치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게는 그 ‘다종교적 구성’이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학장의 격려사, 그룹 찬송, 베트남 비구니 스님과 유대교인의 낭송, 중국의 세 비구니 스님의 반야심경 낭송, 히잡을 쓴 여성의 코란 낭송, 호흡명상, 성경 시편 낭송, 봄을 위한 노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2021년 가상 학위 수여식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그 내용이 상당히 축소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6년 5월에 진행된 학위수여식 팜플렛을 보면 상당히 많은 음악과 노래 연주가 있었고, 더 다양한 전통의 기도문이 차례로 낭송되었다.3) 팜플렛에 기록된 여러 종교(문화) 전통들은 시크교, 그리스정교회, 쿠란, 퀘이커, 신성한 여성(the Divine Feminine), 불교, 가톨릭, 신약성서, 유란시아서(Urantia Book), 인본주의(Humanist), 심지어 비종교인(Religious Nones) 측의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낭송까지 들어 있다. 또 “다종교 배너(multireligious banner)”의 설치가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다.

비단 학위수여식 뿐만 아니라 하버드 신학대학원 홈페이지의 “Religious Spiritual Life” 항목에는 “다양한 신앙의 캘린더(multifaith calendar)”가 포함되어 있다. 그 안에는 그리스도교의 ‘오순절(pentecost)’, 이슬람의 ‘이드 알 아드하(Id al Adha)’ 뿐만 아니라 위카(Wicca/paganism)의 리타(Litha)도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하버드대학교에는 1991년 다이아나 에크(Diana L. Eck)에 의해 설립된 “다원주의 프로젝트(Pluralism Project)”가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의 ‘종교(religions)’ 항목에는 17개의 전통이 각각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아프로-캐리비언(Afro-Caribbean), 바하이교, 유니테리언 유니버설리즘, 심지어 휴머니즘과 이교도주의(paganism) 까지 포함되어 있다.4)

2021년 4월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채플 수업 진행에서 대체과목을 개설하는 등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2021년 6월 8일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특정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립대학의 86%가 채플 의무 규정을 지니고 있다.5) 이러한 현상은 오래도록 바뀌지 않는 상황이다. 필자가 2016년 쓴 〈종교교육, 누구를 위한 종교·교육인가?〉(《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이진구 편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지음)에서 지적한 한국 종립학교의 종교교육의 문제 상황에서 지금까지 변화한 것은 거의 없다.

물론 수많은 민족과 인종의 용광로라고 하는 미국의 다종교상황과 한국의 다종교상황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도 무종교인과 종교인의 비율이 거의 대등하며, 종교인들도 다양한 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 최고 신학대학교가 다종교적 예배형식을 도입·실천하는 것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종교전통들도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종교성과 관련하여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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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religionforbreakfast.com/about-me/ 2021년 6월 15일 현재 구독자 수는 31.3만 명이다.
2) 엄밀한 의미에서 합동졸업예배의식이라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sbSl4sNaVY (Harvard Divinity School) 스트리밍 시작일: 2021. 5. 27.
3)
https://www.harvardmagazine.com/sites/default/files/mutlireligious_commencement_service_program.pdf
4)
https://pluralism.org/religions
5)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2869 (2021.06.08. 기사)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교수
논문으로 <서구 근대불교학의 출현과‘부디즘(Buddhism)’의 창안>,<한용운의 불교·종교담론에 나타난 근대사상의 수용과 재구성>,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1910-1930년대 불교잡지를 중심으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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