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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47호-장례 분쟁과 법원 판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10. 4. 19:19

장례 분쟁과 법원 판결


news letter No.747 2022/10/4

 



    지난 9월 초에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서 스크랩해 두었다. 뉴스레터 원고에 쓸 요량이었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8월 12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에서 판결이 나왔는데, 모친의 시신을 인도해 달라며 장남이 낸 유체동산 인도 단행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차남에게 시신을 인도하라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다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6남매의 의견이 갈렸다. 장남은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모셔진 선산에 모시자고 하였다. 그런데 차남과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가 마련했지만 정작 아버지 본인은 묻히지 못한 가족묘에 모셔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애초에 아버지 시신을 선산에 모신 것부터 장남의 일방적인 결정이었고, 생전에 어머니는 그런 장남을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장남은 어머니의 시신을 모셔갈 수 있게 해달라며 병원 장례식장을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제사용 재산(분묘에 속한 묘토, 제구, 족보 등)은 제사를 모시는 사람이 승계한다는 민법 조문을 들어서, 시신 역시 제사용 재산에 속하므로 장남이 승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2008년 대법원 판례에서 제사주재자는 장남, 장손, 장녀의 순서로 정한다고 했으므로 장남인 자신이 제사주재자로서 어머니의 시신을 인도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서 재판부는 장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적장자가 제사를 승계해야 한다는 종래의 관습은, 가족 구성원인 상속인들의 자율적인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적서 간에 차별을 두는 것이어서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한 변화된 가족제도에 원칙적으로 부합하지 않게 되었고, 이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법적 확신 역시 상당 부분 약화되었으므로, 더 이상 관습 내지 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러한 관습에 터 잡은 종래의 대법원판결들 역시 더 이상 판례법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사람의 유체, 유골은 매장, 관리, 제사, 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로서, 분묘에 안치할 유체, 유골은 민법에 정한 제사용 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

     결국 재판부는 2008년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질서는 호주제도의 폐지, 형제자매 간의 동등한 상속분 인정, 여성의 종중원 자격 인정 등 가족 관계 내에서 개인의 의사와 가치가 존중되고 양성평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므로, 이런 추세를 감안하여 장남이 당연히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인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전에 어머니가 차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장남과 불화를 겪었던 점, 어머니가 장남을 빼고 나머지 자식들에게만 재산을 상속한 점, 이에 대해서 장남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여 재판부는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 제사주재자가 되어 어머니의 시신을 모시도록 허락하였다. 장남이 항고장을 제출하였다고 하니 법률적 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사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확인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에 가서 기사에 나온 사건의 판결문을 내려받았다. 아울러 2008년 대법원판결이 무엇인지도 찾아서 내려받았다. 또 유해가 과연 제사용 재산인가, 유해가 물건이어서 누군가가 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유해가 제사용 재산이라면 그 귀속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등에 관한 어느 법학자의 글도 찾아서 읽었다. 아닌 게 아니라 2008년 1월 1일로 호주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제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법률이 최종적인 판단의 준거로 자리 잡고 있다.

     제사 문제도 흥미롭지만, 내게는 법원의 판결과 법 해석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다. 법률과 법원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몸과 그 몸을 처리하는 방식, 나아가서 자손들이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권위 있는 판정을 내리고 있다. 그런 법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니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언젠가 종교적인 사안을 다루는 법원 판결문들을 찾아서 종교사 자료를 다루듯이 읽고 분석해볼 생각이다.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올해 쓴 글로는 <다블뤼 주교의 교회사 기록에 나타난 성호학파 문인들의 행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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