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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55호-고혼(孤魂)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11. 29. 18:23

  고혼(孤魂)을 위한 나라는 없다!


 news letter No.755 2022/11/29


          
           




     가끔 어릴 적 품었던 궁금증이 새삼 이 나이에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안전사고가 났을 때 TV에서 장관이나 총리 즈음 되는 자들이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고 사퇴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도대체 저 일의 직접적인 발단과 전혀 무관해 보인다 싶은 사태의 책임을 왜 그/그녀가 짊어져야 하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을 이제 겨우 조금 알 것도 같다.

    1. 


     “불교설화와 마음치유” 시간에 어쩌다 「장화홍련전」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장화홍련전은 효종 연간 실제 사건을 토대로 소설화한 작품으로 배경은 평안도 철산이다. 주인공 장화(薔花)와 홍련(紅蓮)은 배좌수의 딸로 계모 허씨의 계략에 빠져 억울한 죽음에 이르러 원귀(冤鬼)가 된다. 이후 장화와 홍련은 철산부사를 찾아가 자신들의 억울한 한을 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2~3인의 전임 부사가 원귀를 보고 놀라 죽는다.

     그쯤, 막 생각난 듯한 학우가 장화와 홍련은 계모에게 직접 원수를 갚지 않고, 왜 철산부사를 찾아갔을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공권력으로 조질려고!”라며 의협심 강한 한 학우가 내뱉는다.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과제가 아닌 숙제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게 말이다.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그 숱한 원혼들은 왜 고을 사또를 찾아가는 것일까.’

     2.


     이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선에서는 국가제사 중 소사(小祀)로 여제(厲祭)를 지내는데, 위의 사례가 그에 해당한다. 여제는 성황단에서 발고하고 북교단에서 제사하는데, 조선 전기에는 승려들이 수륙재로 베풀기도 했다.1) 그러니까 장화와 홍련은 철산 땅에서 원귀가 되었으니 외로운 넋[고혼]의 억울함을 위로하는 일은 철산부사의 소임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전임 부사들은 그 원귀를 보고 놀라 죽었을까?

    《좌전(左傳)》에는 “귀신이 돌아갈 곳이 있어야 여(厲)가 되지 않는데, 돌아갈 곳이 없는 귀신은 혹시 사람의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 준다.”하였다. 그리고 옛날에는 오직 후손이 없는 귀신만을 여로 여겨 제사 지냈는데, 후세에는 익사자(溺死者)․압사자(壓死者)․소사자(燒死者)․형사자(刑死者)를 모두 여로 여겨 제사 지낸다고도 하였다.2) 물론 고혼이 반드시 후손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여는 가능하다.

    이처럼 조선에서 마련한 여제와 수륙재는 모두 고혼을 위한 의례였고, 여기에는 당대를 함께 살아간 혼령들에 대한 종교적 예의 같은 것이 있었다고 본다. 종교적으로 건강한 사회는 고혼을 혼자 울게 하지도 않고, 고혼들의 이름을 빼앗지도 않는다. 고혼의 이웃이 되어 고혼과 함께 울어주면서 고혼들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임을 아는 사회가 죽음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살아서 죽어가는 자들만의 부동산정책만 있고, 영원히 사는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 한 칸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3.

    내 주변에 불교의 다비의식과 49재[칠칠재 형식 포함]를 현대에 맞게 콘텐츠화하려는 스님이 계신다. 이 스님과 49재로 대화를 하다가 일반 불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였다. 대개의 불자들은 현대에도 49재의 필요성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의외의 반응은 49재를 ‘전통식이네’, ‘현대식이네’, ‘어산단이 어떻네’, ‘장엄이 어떻네’ 하는 형식에 손사레를 치고 나서는 불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까요? 물었더니, “제발 부처님 앞에서라도 울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그 넓은 절간에 울 수 있는 공간 좀 마련해 놓으라고 한다.

     우리의 목숨이 우리 자신도 주관하지 못하는 시대를 산다. 천도(薦度)할 일도 많아졌다. 그만큼 살아있는 자들과만 연결되어 있는 사회가 아니라 죽은 자들과도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에 대한 인식이 필요해졌다. 다시 어렸을 때의 궁금증으로 돌아와 보면, 나는 여러 비난을 감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어진다. ‘도의적’ 책임자가 용서를 구하고 사퇴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종교적 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 모두를 살리기 때문이라고. 그런 최소한의 공감능력조차 탑재하지 못하고 사는 리더들에게는 장화홍련전의 전임 부사들이 왜 죽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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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종실록』 성종16년(1485) 1월 무자
2)『목민심서』 「예전」 ‘제사’

 

 

 

 

 



 

 

 

 

 

 


심일종_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유교제례의 구조와 조상관념의 의미재현〉으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는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공저)과 《유교와 종교의 메타모포시스》(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코로나19시대 민속종교의 반응과 대응〉, 〈조상, 신령 그리고 신을 위한 기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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