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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증적 읽기와 회복적 읽기 그리고 녹스 혹은 밤

 

news letter No.752 2022/11/8

 

 




     1. 영국의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취임선서를 하던 날, 퀴어이론가이자 비평가인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Eve Kosofsky Sedgwick)의 에세이 “편집증적 읽기와 회복적 읽기(Paranoid Reading and Reparative Reading)”1)를 떠올렸다고 한다.2)  눈앞에 펼쳐진 현실의 원인을 다양한 각도에서 추적하고 분명한 인과관계로 설명하고자 하는 무수한 목소리들 앞에서 그녀는 세지윅의 에세이가 파고 들던 질문을 떠올리며 말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한다. 그러나 얼마만큼 세세한 것들이 도움이 되며, 이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지윅이 1997년 에세이에서 편집증적 읽기라 부르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집요하게 의심하고 질문하며 분석하여 그 내면에서 작동하는 힘의 질서, 억압과 폭력의 기제를 폭로하는데 주력하는 읽기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읽기는 오랫동안 비평적 접근 방식의 기본적인 덕목으로 여겨졌고, 세지윅 스스로도 이러한 읽기를 통해 서구 문화의 사유와 앎의 구조에 내재한 동성애/이성애 개념의 세세한 면들을 파헤쳤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편집증적 읽기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두는 상자가 되는 지점마저도 –또 다른 편집증적 읽기로- 들여다본다. 그리고 예측과 폭로에 중심을 둔 편집증적 읽기에 내재한 결정론을 포착해낸다. “나쁜 놀라움은 없어야 한다. ..나쁜 소식은 언제나 이미 알려져 있어야 한다.” 예측과 폭로에 대한 강박과 의무감은 폭로가 문제의 해결로 이어지는 것이 자명하다는 태도로 이어지면서 “폭로함으로써 말소하고자 했던 문제를 역설적으로 물화”4) 하게 된다.

    그러나 편집증적 읽기에 대한 꼼꼼한 분석 속에서 세지윅은 “또다른 가능성의 윤곽을 언뜻” 본다. 그녀는 우리의 예상을 빗겨 나며 발생하는 다름의 순간을 포착하고 회복하고자 한다. 그녀가 편집증적 읽기의 옆에 두고자 하는 회복적 읽기는 결코 상실과 압제의 암울한 현실에 덜 주의를 기울이거나 고통과 재앙의 예측틀을 중단하지 않으면서도, 결정론적이고 방어적인 부정적 정동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와의 새로운 대면, 놀라움의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는 것이다.

     세지윅의 회복적 읽기를 생각하며 2017년의 올리비아 랭은 시 낭송회를 가고, 연극을 보러갔다. 친구의 연극 공연을 보고나서 그녀는 말한다. “이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의 공연은 세상을 읽는 그 두 가지 방법을 말하고 있었다. 하나는 책임 소재와 처벌 대상을 가리기 위해 편집증으로 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한 것. 그는 끊임없이 사실 파편들 -사라진 기체, 피에 전 스카프, 시골길에 주차된 자동차 - 을 모아 패턴을 제시하고 그것들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했다. 재앙은 이미 벌어졌고, 나쁜 놀라움은 결국 찾아오고 말았다. 문제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상실과 분노와 함께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어떻게 하면 명백히 파괴적인 힘에 의해 파괴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독백이 이어질수록 극장 안이 점점 커지는 듯하더니 종내 모두 다 같이 거대한 공간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은 미래가 아직 그려지지 않은 가능성의 대성당이었다.”

     2.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된, 캐나다의 고전학자이자 시인, 번역가 앤 카슨(Anne Carson)의 <녹스>5)는 오랫동안 타지를 떠돌다 세상을 떠난 오빠를 추모하며 쓴 책이다. 두꺼운 회색 상자에 담긴 이 책은 보통의 책과는 달리 아코디온처럼 접히는 긴 한 장의 종이로 되어 있다. 접힌 종이의 한 폭마다 왼편에는 고대 로마의 시인 카툴루스(Catulus)가 형제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쓴 비가의 단어들 하나하나의 뜻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 놓여있고, 오른편에는 죽은 오빠와 관련된 이야기, 기억, 사물들의 파편이 놓여있다. 책은 이들을 따로 개별적인 종이에 프린트 해 오려 붙이고, 사진, 그림, 편지의 조각들을 직접 잘라 붙여서 만들어졌다. 각각의 종이의 질감, 때로는 구겨지고 바래고 번지고 눌린 자국, 찢어진 자국, 스테이플러의 자국 까지도 선명하다.

    카슨은 고등학교 라틴어 시간에 처음 접한 카툴루스의 이 비가를 여러 번 번역해보고자 시도했으나, “영어로는 무엇으로도 로마 비가의 정념 가득한 완만한 표면을 그러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비가의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적어 놓은 왼편은 얼핏 보면 라틴어 사전의 정보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으나, 번역자 윤경희는 이것이 단순히 사전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 아니라, 카슨이 의도적으로 예문의 단어들을 바꾸었고, 이 속에 많은 ‘밤(nox)’의 흔적들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로써 형제를 애도하는 시의 곳곳이 균열하며 밤은 그 주름들을 비집고 무차별적으로 스며든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의미로만 담아낼 수 없는 슬픔과 복합적인 감정의 무게들이 단어와 단어들, 수많은 기억의 흔적들의 물질적인 존재감 속에 꾹꾹 눌려져 있는 이 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주변의 흩어진 파편들을 모으고, 누군가의 말들을 인용하고 필사하고 번역하며 그 속에서 애도라는 불가능한 작업에 천천히,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힘겨운 노력일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대로의 시 101 번역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렇게 작업한 세월 너머, 나는 번역이란 전등 스위치를 찾으려 더듬거리는, 아주 모르는 방은 아닌, 하나의 방과 같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 일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형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나는 그를 배회한다. 그는 끝나지 않는다.”   



 * 이 글은 이브 세지윅, 올리비아 랭, 김희원, 앤 카슨, 그리고 윤경희의 글을 직접 옮겨 쓴 인용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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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ve Kosofsky Sedgwick, “Paranoid Reading and Reparative Reading; or, You’re So Paranoid, You Probably Think This Introduction Is about You,” Novel Gazing, Duke University Press, 1997. 1-37.
2) Olivia Laing, Funny Weather, W.W. Norton & Company, 2020; 올리비아 랭, 이동교 옮김, 『이상한 날씨』, 어크로스, 2021.
3) 『이상한 날씨』의 인용은 한국어 번역본을 따랐지만 중간 중간 영어원문을 직접 번역한 것도 뒤섞여 있다.
4) 김희원, “세즈윅이 벌랜트를 다시 읽는다면? 반복, 형식, 시나리오의 가능성과 ‘느린’ 읽기,” 영학논집, Vol. 40. 1-33. 2020.
5) 앤 카슨, 윤경희 옮김, 『녹스』, 봄날의 책, 2022.

 

 

 

 

 

 



 

 

 

 


최화선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 논문으로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 점술의 사유와 이미지 사유>, <이미지와 응시:고대 그리스도교의 시각적 신심(visual piety)>,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 남장여자 수도자들과 젠더 지형>, <기억과 감각: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의 순례와 전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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