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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53호-“분열된 세상에서의 불교”를 돌아보고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11. 15. 17:40

“분열된 세상에서의 불교”를 돌아보고

 

news letter No.753 2022/11/15

 

    

     국제참여불교 네트웤(INEB: www.inebnetwork.org)의 제20차 격년제 대회가 최근 10월 23일부터 30일까지 한국에서 열렸다. INEB(International Network of Engaged Buddhists)은 1989년 태국에서 술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 박사를 중심으로 선진민주사회를 열망하는 불자들과 일반 지식인들과 사회활동가들이 함께 세운 단체이다. 방콕을 거점으로 조직활동이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세계 25개 국가에서 불자 개인 및 단체들의 다양한 사회참여운동을 선도· 연계하고, 달라이라마와 故 틱낫한 스님에게서도 큰 지지와 격려를 받아 왔다.

    국내에서 이번 행사를 주관한 정토회(
https://www.jungtosociety.org)는 수년 전부터 “즉문즉설”로 유명해진 법륜스님이 1988년에 주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불교신행단체이다. 금년 대회는 정토회의 선유동 연수원(경북 문경)과 갓 준공된 정토사회문화회관(서울 서초구)에서 약 20여 개국의 불교계 사회활동가를 포함한 150여 명이 참여했다. 2003년도 한국에서 타 불교단체와 공동주관한 바 있었던 본 대회를 19년만에 정토회가 단독으로 다시 주관한 것인데, 안정된 수행처 환경과 훈련된 자원봉사자 인력들을 보더라도, 그동안 반듯하게 성장해온 종교조직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Buddhism in a Divided World: Peace· Planet· Pandemic”(사진)이라는 대주제 아래, 10월 24-25일은 식전 행사의 격으로 문경 수련원에서 지도법사인 법륜스님 외 법사들과 함께 명상· 법회가 열렸고, 26일은 한국 비구니 교육의 본산이라는 운문사(경북 청도)에서 “21세기 비구니의 연대의식”이라는 제하(題下)의 웤샾이 있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비구니 출가제도를 현재도 갖지 못하고 있는 특히 남방불교권 참여자들에게는 선망(羨望)의 참관이었을 것 같다.

     본 행사는 10월 27일에 개막하여, 첫째 평화(Peace)의 장에서는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비롯해 ‘미얀마 시민 내전· 민족분쟁· 젠더 갈등· 종교갈등· 새로운 냉전체제’ 등에 관한 토론을 했다. 둘째 지구환경(Planet)의 장에서는 ‘기후 위기· 생태계· 생물다양성· 회복력과 지속가능성’ 등의 쟁점을 숙의했고, 셋째 팬데믹(Pandemic)의 장에서는 ‘COVID-19와 불교적 긴급구호’ 등을 논의했다. 28일에도 웤샾들이 병행되어 ‘성평등과 사회 포용성· 변화를 위한 교육· 정신건강과 불교교직자의 역할· 디지털 보살· 불교사원에서 아동보호’ 등의 분과별 토론이 있었고, 오후에는 다도· 등(燈)과 염주 만들기는 물론 김치담그기· 태권도· 한복 등 한국문화도 빼놓지 않고 선보였다. 좀 더 근사했던 한국문화의 과시(?)는, INEB 창립자인 술락 시바락사 박사의 90세 생신을 기념하여 모든 참석자들이 가족처럼 함께 축하하도록 기획한 일이었을 것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상당히 지루할 수 있는 한낱 불교행사를 이 귀한 지면에 필자가 굳이 스케치해 올린 까닭은, 29일 공개 심포지움에서 얻은 중요한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INEB 집행위원회 Harsha Navaratne 위원장(캐나다 주재 스리랑카 고등판무관)의 기조연설 “The Role of Spirituality and Faith in a Divided World” 일부를 아래에 발췌 인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서 어떻게 그런 살상(殺傷)과 폭력의 시대를 계속해서 겪을 수 있는 것인가? 저 역시도 이 어려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왔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절 주변에 살면서 협력· 공존· 공유· 연대의 가치를 배웠고, 스님은 우리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치가 절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우리 공동체는 정치인들에게 더 많이 좌우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적 스승이던 스님들 중에서 일부도 신앙과 가치보다 정치판 흐름에 편승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비슷한 역사적 사건과 불행한 기억들이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신적 가르침이나 윤리적 도덕적 토대에 모순되고 그것을 위반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인들· 지도자들· 설교자들 그리고 소위 “박애주의자들”은 그들이 설교한 것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습니까? 때로는 유명하고 크나큰 집단에서 정신적 스승으로 설교하는 사람들 역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데 연관되어 있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영적인 스승들이 국가 사회를 분열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는 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임감 있고 진실되고 진정한 지도자가 우리 사회를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사회적으로 참여불교 활동가인 우리 모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온전히 헌신하고, 우리의 가치를 토대로 성실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모범이 되고 롤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항시 “자신이 설교하는 것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틱낫한 스님께서는,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폭력적이었던 경험조차도 우리의 온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픔에 온전히 관심을 가질 때 타인의 아픔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이 세상의 고통과 폭력이 반복되는 고리를 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과 폭력의 고리에서 마음의 평화와 마음챙김을 가르치셨습니다.”


    위의 기조연설을 들으며 새삼, 불자로서의 헌신이 부족한 나의 일상을 반성하고, 한때 자타공인 진보(進步)라던 20여 년차 소속단체의 퇴보(退步)와 무능에 ‘내 탓임’을 반성하고, 특히 지난 선거철에 불거진 어느 종단의 정치적 추문들을 성찰하던 그날 10월 29일. 아시다시피, 억장이 무너질 참사가 또 터졌다. 적당히 늙어서 이태원에 가지도 않고 살아남은 내가 오히려 죄인의 심정이 되고, 그저 비통함에 빠진 채 무력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한때 잘나갔다는 소위 참여불교단체조차 개별적으로 몇몇 사람이 애도를 표할 뿐, 지금껏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참여불교”에 무능하다 못해서 이제는 부끄러움까지도 사라진 것 같다.

     해외에서 온 불자들이 평하는 한국불교는 너무나 윤택하고 거창하다. 주최자가 누구든지 국제대회를 열면, 곧잘 폼나게 보이도록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국제참여불교 네트웤의 연례대회도 상당히 화사했다. 세상에 중차대한 문제들을 망라하여 바다 건너온 불교활동가들이 진지하게 염려하는 자리로 꾸며졌고, 주관한 정토회 봉사자들은 박수를 받을 만큼 충분히 애썼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종교적인 시설에서 깔끔하게 기획된 한 편의 공연을 본 느낌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인가. 그 가운데 영성(Spirituality)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남북분단만큼이나 사사건건 대결(對決)로 갈라져 버린 우리나라에서 쉴 틈 없이 생겨나는 고통과 불안을 다루려는 불교활동가들을 만나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다. 목하 고통을 외면한 채, 마치 초연한 척 거룩한 어휘로 이기적 일상을 포장하는 불자들이나, 실현 가능성도 희박한 공언으로 허세 부리는 불교단체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출가/재가를 막론하고 지도자연(指導者然) 하던 분들은 지금 여기 갈등하는 난국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고통을 고통이 아닌 척하도록 꼬드기는 종교적 술수들이 있다면, 그 판은 사이비(似而非)라고 널리 크게 외쳐야 한다........요즘에 이만저만 내 나이값도 못하도록 심사가 뒤틀리는 탓으로, 이 글의 마무리 두어 줄을 마저 채우지 못하고, 다른 분의 말씀에 기대어서 겨우 맺는다.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소리 들을라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장독(杖毒)들도 남아있어야

                                                -----------------------오현 스님 시 <일색변(一色邊) 2>

 

 

 

 



 

 

 


이혜숙_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국제참여불교네트웤(INEB) 집행위원
논문으로 <종교사회복지의 권력화에 대한 고찰>, <한국 종교계의 정치적 이념성향 연구를 위한 제언>, <시민사회 공론장 확립을 위한 불교계 역할>, <구조적 폭력과 분노, 그 불교적 대응>등이 있고, 저서로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공저), 《임상사회복지이론》(공저),《종교사회복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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