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국에서는 도교를 어떻게 이해했나?

- 유불도에서 유불선으로 -

 

 

news letter No.871 2025/2/25

 

 

동학은 보통 유불도 삼교를 창조적으로 종합한 종교로 설명된다. 가령 중학교 7국사교과서에는 최제우가 전통적인 민간 신앙과 유교, 불교, 도교를 융합하여 동학을 창시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우리역사넷 참조). 2015년에 천재교육에서 나온 윤리와 사상교과서 역시 마찬가지다: 신흥 종교는 우리 민족 고유 사상을 바탕으로 ··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서양의 종교 사상에 대응하여 성립한 새로운 민간 종교였다.”(87) 여기에서 신흥 종교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유불도이다. 왜냐하면 동학의 텍스트에는 유불도(儒佛道)’가 아니라 유불선(儒佛仙)’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해월 최시형의 설법을 모은 해월신사법설에는 천도(天道)유불선(儒佛仙)이라는 제목의 장()이 있고, 거기에서는 동학과 유불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 도는 유()와 같기도 하고 불()과 같기도 하고 선()과 같기도 하지만, 실은 유()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吾道, 似儒似佛似仙, 實則非儒非佛非仙).” ‘유불선이라는 장 제목은 후대에 해월신사법설이라는 텍스트를 편집할 때 붙여진 이름이겠지만, 최시형의 설법 내용을 보면 확실히 유불도가 아니라 유불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용례는 이후의 원불교 문헌에서도 반복된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의 언행을 모은 텍스트 중의 하나인 대종경 선외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성현은 유불선 삼성(三聖)을 겸하셨고, ()유불선 삼교(三敎)를 통합하시사여기에 나오는 유불선 삼교라는 표현은 적어도 내가 대학원 시절에 읽었던 중국철학 관련 문헌이나 연구서에서는 본 적이 없다. 거기에서는 유불선 삼교가 아니라 유불도 삼교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가장 먼저 참고할 수 있는 문헌은 9세기의 신라 사상가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난랑비 서문이다. 거기에는 화랑의 풍류와 중국의 삼교(유교불교도교)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玄妙之道)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 가르침을 세운 근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핵심은 삼교를 포함하고(包含三敎) 뭇 생명을 접화한다(接化羣生)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에서는 (부모에) 효도하고 나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공자)의 가르침이고, 무위의 일에 처하고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주사(=노자)의 종지이며, 그 어떤 악도 저지르지 않고 모든 선을 행하라는 것은 인도 태자(=붓다)의 교화이다.”

 

여기에는 유불도유불선이라는 말 자체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공자와 노자와 붓다의 예를 들고 있고, 그것을 삼교라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그 내용이 선사(仙史)에 기록되어 있다는 서술이다. ‘이 삼교를 포함하는 그것보다 더 큰 범주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최치원에게 있어서 유불도 삼교를 포함하는 풍류와 동일한 층차의 범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화랑이 국선(國仙)’이라고도 불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점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최치원 이후의 용례는 어떻게 될까? 19세기 실학자로 알려진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일종의 도교 개론이 실려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도교(道敎)’가 없다는 것은 북사(北史)에서 이미 말하였다.”“도가(道家)가 처음에는 선도(仙道)가 아니고 구류(九流)의 하나였는데, 나중에 신선을 도교로 간주하였다.” 여기에서 구류는 제자백가를, 도가는 문맥상 노장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규경에 의하면 중국 역사에서 노장을 가리키던 개념인 도가가 점차 선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형성된 개념이 도교인데, 이러한 도교는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 즉 선도와 도교를 동일시하는 발상이고, 다른 하나는 도교는 (풍류와 같은 토착종교가 아니라) 중국에 기원하는 외래종교라는 지적이다. 이 중에서 후자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만, 전자에 대해서는 고려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도교의 형성은 4~5세기 무렵에 대승불교를 수용하여 불로장생적인 선술(仙術)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타자 구제 중심의 대승적인 가르침, (Teaching)’의 체제를 갖춰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규경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도교=신선사상으로 등치시키고 있다. 이후에 동학과 같은 민중종교에서 유불도가 유불선으로 바뀐 것은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도 한자문화권의 다른 지역에서, 가령 대만이나 일본에서, 유불도를 유불선이라고 일컫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유불선은 한국인의 도교 인식을 반영함과 동시에 한국에서의 도교 수용 방식을 보여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성환_
원광대학교 철학과
저서로 《한국 근대의 탄생》,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한국의 철학자들》, 《K-사상사》,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공저)가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