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도와 일본의 교차로에서 주워 올린 신에 대한 정의

 

 news letter No.868 2025/2/4

 

 

 

생애 세 번째의 인도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달 말경 인도의 힌두축제 마하쿰브멜라중 압사 사고로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는 뉴스에 접했다. 마하쿰브멜라는 12년 주기로 북인도 갠지스강변의 알라하바드 지역에서 1월 중순경부터 40여 일 동안 행해지는 세계 최대의 종교축제이다. 올해는 연인원 45천만 이상의 힌두교인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알라하바드 지역은 인도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갠지스강과 야무나강 그리고 신화적인 사라스와티(Sarasvati)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이곳에 입수하면 고통스러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믿어지는 곳이다. 구원의 지름길인 셈이다.

 

인도인들에게 사라스와티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의 배우자로 강의 여신이자 학문과 예술의 여신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불교의 관음보살도 실은 사라스와티가 그 원천 중 하나라고 말해진다. 사라스와티는 일본에 건너가 벤자이텐(弁才天)이라는 음악과 재복의 수호신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새해가 되면 하쓰모우데(初詣)라 하여 신사나 사찰을 참배하면서 한해의 건강과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곤 한다. 그때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칠복신(七福神) 참배인데, 그 중 벤자이텐은 유일한 여신으로 일본인들에게 매우 친근한 존재이다.

 

칠복신에는 벤자이텐 외에도 인도계 복신으로 비샤몬텐(毘沙門天)과 다이코쿠텐(大黑天)이 더 있다. 악마를 퇴치하고 재보를 지켜주는 복신 비샤몬텐은 실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근한 존재이다. 불교 사찰의 천왕문에 들어서면 양쪽에 사천왕들이 안치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인 북방의 수호천왕 다문천(多聞天)이 곧 비샤몬텐이다. 한편 다이코쿠텐은 힌두교의 시바신에서 유래한 복신이다. 시바신의 별칭 중에 마하카라(Mahakala, 죽음의 신)’가 있는데, 거기서 마하는 크다는 뜻이고 카라는 검은색 혹은 시간을 의미한다. 이 마하카라가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들어가 대흑천이라는 한자명으로 번역되었고, 그것이 일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를 베풀어주는 복신으로 관념된 것이다.

 

<종교학개론>이나 <세계종교>의 강사는 통상 이렇게 소개할 것이다: 힌두교는 통상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창시자도 없고 통일적인 경전도 없다. 제도화되거나 조직화된 종교가 아니어서 특정 장소에서 특정일에 정규적으로 종교집회가 열린다거나 사원 방문이 의무적이지도 않다. 그보다는 일상 가정생활에서 집에 모셔진 신을 중심으로 종교의례가 행해진다. 일본 신도(神道)의 핵심적 특징도 이것과 거의 동일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도 간과할 수 없다. 힌두문화는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세속적이고, 금욕적이면서도 지극히 에로틱하고, 신비로운가 하면 매우 현실적이다. 고행(절제) 아니면 쾌락이 아니라 고행과 쾌락 모두이다. 이처럼 상반된 양극이 공존하면서 그 사이에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일본의 문화적 에토스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힌두 신들과 신도 가미()들은 여러 측면에서 닮은꼴이다. 가령 우파니샤드의 핵심적 개념으로 우주의 근원적 신(실재) 브라흐만(Brahman)과 각 개체 속의 참된 본질적 자아를 뜻하는 아트만(Atman)을 들 수 있다. 이때 브라흐만은 자라다를 뜻하는 동사 어근(brh)에서 나온 말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증가하는 힘 즉 생명력을 의미한다.1) 마찬가지로 고사기는 일본열도와 신도 신들을 낳은 원초적 신성을 무스비(産靈)’라 칭하는데, 이것 또한 생생(生生)하는 생명력을 뜻하는 말이다.

 

인도인의 신(바가완, 데바, 데비) 관념과 일본인의 신(가미) 관념은 큰 틀 안에서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힌두교는 우주 자체를 신의 현현으로 간주한다. 이를테면 브라흐만()이 우주의 모든 존재 안에 내재하며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은 신의 본질과 동일하다. 브라흐만은 곧 아트만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힌두교의 신은 만물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도 숭배될 수 있고, 유지의 신 비슈누는 라마, 크리슈나, 부처 등 10가지 아바타라(화신)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일본 신도에서도 원칙적으로 무엇이든 가미가 될 수 있다고 보며, 일본인의 사유방식에 큰 영향을 끼친 신불습합사의 중심사상인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에서 일본의 가미는 부처의 아바타라(수적)로 간주된다.

 

해탈을 설하는 우파니샤드에 앞서 다신론적인 리그베다와 의례 중심적인 브라흐마나는 인도인들의 종교적 심성에 현세 중심적인 관념의 토대를 부여해 주었다. 특히 리그베다의 신들은 인간에게 보상과 처벌을 내리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보다는 우월하지만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또한 종종 불멸의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인간처럼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한다. 마찬가지로 일본 신도야말로 전형적인 현세 중심적 종교라 할 만하다. 일본 전역에 걸친 12만 개소의 신사에 모셔진 신도 가미들 또한 인간처럼 태어나고 죽는 존재로서 철저히 기브--테이크의 신격이다. “신의 마지막 꿈은 스스로 인간이 되는 것2)에 있기 때문일까?

 

확실히 이런 힌두적 풍토의 인도와 신도적 풍토의 일본에서는 기독교적인 전지전능한 절대적 신성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양국 모두 이른 시기에 기독교가 전래되어 수많은 감동적인 장면들을 연출해 왔다.

 

인도의 기독교 전래는 52년 성 토마스(도마)가 남인도 코친(Cochin) 근처에 상륙했다는 절반 설화적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마는 그곳에서 7개 교회를 세우고 원주민 힌두교 신자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 후 천 수백여 년이 지난 뒤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1498520일 코지코데(Kozikode)에 상륙함으로써 본격적인 기독교 전래의 길이 열렸다. 오늘날 도마의 순교지로 전승된 첸나이(Chennai)에는 성 토마스 대성당이 세워져 있다. 예수 제자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은 이 밖에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야고보의 무덤 위에 건립된 스페인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대성당 등 단 세 곳 뿐이다. 그중 하나가 인도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함께 예수회 창설에 참여했던 프란시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 1506-1552)를 태운 배가 15414월 리스본을 떠나 몇 개월 뒤 아프리카 모잠비크를 경유하여 1542년 남인도 고아(Goa)에 도착했다. 당시 고아는 가혹한 이슬람 술탄 지배하의 번창하는 국제 무역항으로 왕궁과 모스크와 사원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예수회에 앞서 16세기 초엽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가 고아에 입성했다. 이 중 프란치스코회의 창시자인 앗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기리는 성당이 현재 고아에 세워져 있다. 하비에르는 1542년 고아에 대학을 세워 많은 원주민들을 교육하는 한편 다수의 현지인 성직자와 전도사를 배출했다. 향후 산타페(Santa Fe) 또는 예수회 성 바울 신학교로 불린 이 대학의 유산이 현재 고아의 라촐 신학교(Rachol Seminary)에 남아 있다.

 

하비에르는 이후 일본을 향해 고아를 출발하여 마침내 1549815일 가고시마에 상륙했다. 햇수로 3년간 일본에서 포교 활동을 하다가 인도로 귀국한 그는 다시 중국선교를 위해 광동성 상천도에서 입국 기회를 기다리다가 열병에 걸려 사망했다. 고아의 프란치스코 성당 맞은편에 있는 봄 지저스 성당(Basilica of Bom Jesus)에는 하비에르의 유해가 근 4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연 상태에서 썩지 않은 채로 모셔져 있다. 올해 초 인도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이 봄 지저스 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기적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데에 있었다.3)

 

 

그런데 가장 평범한 삶조차 가장 큰 기적이 아니라면 삶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힌두교와 일본 신도만 삶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종교전통들 또한 특정 형태의 삶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삶의 방식은 그것이 기적에 토대하는 한 하나의 초월(超越)’을 내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초월은 33천만으로 말해지는 힌두 신들과 팔백만으로 칭해지는 신도 가미들을 포괄하는 신성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때 무언가에 해당하는 것은 예컨대 터무니없는 세계의 모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실존적 고통, 난감한 사회적 불평등에서 기적 같은 일상의 권태로움과 무의미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한마디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가리킨다. 또한 넘어선다는 것은 그런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런 의미의 초월은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실재로 존재한다. 하지만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강렬한 속성을 지니면서 일련의 강력한 효과를 산출한다. 우리는 이런 실재를 신이라 부른다. 그 신은 한 가지만 빼놓고는 썩지 않는 하비에르의 기적처럼 완벽하다. 그 한 가지는 그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12.3 이후로 초월이나 영원으로 표상되는 신은 내게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와는 전혀 별개의 속성과 효과만으로 구성된 기괴한 현실의 다른 옷차림으로 보여질 뿐이다.

 

 

------------------------------------------------

1) 류경희, 인도의 종교와 종교문화,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44-45.

2) 정진홍, 신 이야기, EBS BOOKS, 2022, 121.

3) 하비에르와 일본에 관한 상세는 졸저 일본재발견, 모시는사람들, 2020, 335-431쪽 참조.

 

 

 

 

 

 

 

박규태_
전 한양대학교
저서로 《한과 모노노아와레: 한일 미의식 산책》,《현대일본의 순례문화》,《일본재발견》,《일본정신분석》,《일본 신사의 역사와 신앙》,《포스트-옴시대 일본사회의 향방과 '스피리추얼리티'》,《일본정신의 풍경》 등이 있고, 역서로 《일본문화사》,《국화와 칼》,《황금가지》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