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시험
news letter No.872 2025/3/4
2017년 영남 지방의 한 국립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과 1학년생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안식교’라고 흔히 불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Seventh-day Adventist Church, SDA)에 속한 재림교인이었다. 교단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제칠일(토요일)을 안식일로 삼고 있는 재림교회의 교리는 금요일 일몰에서 토요일 일몰까지 학업을 비롯한 일체의 ‘세속적’ 행위를 금지한다. 수강 과목 중 일부 과목의 시험일이 토요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학생은 담당 교수와 지도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몇 차례에 걸쳐 알리면서 추가시험의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질병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추가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학교 규정이 있었으나 학교 당국은 ‘종교적 사유’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추가시험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다른 요일에 실시되는 시험에는 모두 응했으나 매주 토요일에 실시된 총 15회의 시험에 응하지 못해 결국 유급 처분을 받았다. 고민 끝에 소송을 결심한 그는 학교가 자신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하였다. 1심에서는 패소하였으나 2018년 항고심에서 승소하였다. 고등법원은 ‘토요일 이외의 날에 추가시험을 실시함으로써 학교 당국이 져야 하는 부담’과 ‘추가시험의 기회를 얻지 못해 의사의 길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의 불이익’을 비교한 뒤, 학생의 손을 들어주었다. 학교 당국이 상고하였지만 2019년 대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1)
2021년 호남지방의 한 국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한 응시생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역시 재림교인이었다. 1차 시험인 서류전형에 합격하였으나 면접일이 토요일 오전으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관한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면접 일정을 토요일 오후 마지막 순번으로 변경해 달라는 취지의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총장은 이를 거부하고 면접 평가에 응시하지 않은 그에게 불합격 처분을 하였다. 교단의 지원을 받고 소송에 나선 그는 1심에서는 패했으나 항소심에서 승소하였다. 개별 면접은 시험 문제의 유출이나 공정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면접의 순서만 바꾸는 것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고등법원은 판단했다. 따라서 면접일시 변경을 거부함으로써 응시생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받게 된 중대한 불이익을 방치한 총장의 행위는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한 것이며 그로 인한 불합격 처분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학교가 상고하였으나 2024년 대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2)
의학전문대학원(medical school)과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이라는 교육 공간과 관련하여 일어난 두 재판의 구체적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일반 법규와 종교적 신념이 충돌할 때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어느 정도 배려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수렴된다. 요컨대 종교적 편의 제공(religious accommodation)의 문제다. 두 판결은 소수종교 집단의 종교적 실천을 배려한 것으로서 이제 재림교인은 적어도 학교에서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면서 학업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무기를 얻은 셈이다.
두 판례를 살피면서 머리에 떠오른 것은 주5일 근무제의 시행이 재림교회에 미친 효과다. 주지하다시피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주5일 근무제는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지만 특히 재림교회에 미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는 한마디로 토요일 휴무제인데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고 있는 재림교회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을 것이다. 주6일 근무제하에서 재림교인들은 토요일의 학교 등교와 직장 출근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주5일 근무제의 시행으로 이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살핀 두 판례가 보여주듯이 모든 제도에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토요일 시험이나 토요일 면접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더 큰 문제가 재림교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6일 근무제하에서는 국가가 주관하는 자격시험이 대부분 일요일에 실시되었다. 그런데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국가 주관 시험의 대부분이 토요일로 이관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배경으로 작용했지만 기독교계의 주일성수(主日聖守) 운동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개신교 진영은 오래전부터 주일성수를 내세워 일요일 국가고시 시행을 반대해 왔고 특히 선거와 관련하여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상당한 압력을 가해 왔기 때문이다.
2001년 한 개신교인이 사법고시의 일요일 시행이 자신의 종교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보수 개신교계의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원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었지만 주5일 근무제의 점진적 도입과 맞물려 사법고시는 마침내 2010년부터 토요일에 실시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재림교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지만 기각되었다. ‘종교적 행위의 자유는 절대적 자유가 아니라 질서 유지와 공공복리 등을 위하여 제한할 수 있는 것’이며, 사법고시의 토요일 시행은 ‘다수 국민의 편의를 위한 것이므로 청구인의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공공복리를 위한 부득이한 제한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는 논리에 의해 기각당했다. 이는 9년 전에 개신교인의 헌법소원을 기각할 때 구사한 논리와 동일한 것으로서 ‘일요일 시행’을 ‘토요일 시행’이라는 표현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헌법재판소는 사법고시의 시행일은 수많은 시험 응시자의 편의, 시험 장소 확보와 시험 감독 동원의 용이성, 교통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선택된 것으로서 이러한 공익은 특정 종교인들의 종교자유 제한으로 인해 감내해야 할 사적 이익보다 크다고 본 것이다. 2017년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이 문제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국가 자격시험이 토요일에 치러지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간호조무사 시험이다. 1년에 2회 시행되는 간호조무사 시험은 두 번 모두 토요일에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상당수의 재림교인이 안식일 준수 의무 때문에 이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재림교인들은 먼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였는데 국가인권위는 이 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 시험일의 다양화를 권고하였다. 국시원이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자 재림교인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심리에 관여한 3인의 재판관은 ‘토요일 이외의 날 실시 가능함’, ‘토요일 실시의 경우 일몰 시간 이후로 조정할 것’, ‘시험 시행 인력 확보의 어려움과 같은 행정적 이유는 청구인의 종교자유 제약을 정당화할 수 없음’,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교리를 위반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 등의 이유를 들어 종교자유의 침해를 인정했다. 그러나 나머지 6인은 토요일 시행 시험이 직업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기 때문에 결국 다수결 원칙에 따라 기각되었다.
2000년대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시선을 끈 인권 관련 이슈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시민사회의 열띤 논쟁을 거친 끝에 ‘대체복무제의 도입’으로 나름의 해결을 보았지만 그 과정에서 여호와의증인이라는 소수종파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만큼 큰 관심을 끌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종교적 성일(religious holidays)의 준수 권리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종교자유 지수를 판가름하는 척도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여호와의증인이나 재림교회와 같은 소수종교는 국가권력과 주류종교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종교자유 지평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 왔지만 내부적으로는 교단의 논리에 의해 신자 개인의 양심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이는 모든 종교 집단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응집력이 강한 소수종교일수록 해결하기 힘든 과제임이 틀림없다.
--------------------------------------------------------------
1) 대구지방법원 2018. 4. 18. 선고 2017구합22567 판결 : 원고패; 대구고등법원 2018. 9. 21. 선고 2018누3005 판결 : 원고승; 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8두60564 판결 : 심리불속행기각
2) 광주지방법원 2021. 9. 16. 선고 2021구합10347 판결 : 원고패; 광주고등법원 2022. 8. 25. 선고 2021누12649 판결 : 원고승; 대법원 2024. 4. 4. 선고 2022두56661 판결 : 상고기각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주요 저서로 《한국 개신교의 타자인식》,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 《한국종교학: 성찰과 전망》(공저), 《세속주의를 묻는다: 종교학적 읽기》(공저) 등이 있다.
'뉴스 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874호-대만 세계종교박물관 참관기 (0) | 2025.03.21 |
---|---|
873호-작은 자들의 농밀한 기록 (1) | 2025.03.11 |
871호-한국에서는 도교를 어떻게 이해했나?:유불도에서 유불선으로 (1) | 2025.02.25 |
870호-‘숭고한 희생’이라는 말의 그림자 (1) | 2025.02.18 |
869호-딥시크에게 종교를 묻다 (0) | 2025.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