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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925호-스미스와 종교학의 기본

한종연KIRC 2026. 3. 17. 16:25

스미스와 종교학의 기본

 

 

news letter No.925 2026/3/10

 



 

스미스를 통해 만난 종교학

우리 세대는 조너선 스미스(Jonathan Z. Smith, 1938-2017)를 통해 종교학을 배웠다. 엘리아데의 학문적 깃발을 따라, ‘새로운 인간학’으로서의 종교학의 매력에 이끌려 발을 들여놓긴 했지만, 1990년대 학문 현실에서 실제로 어떻게 종교 연구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장석만 선생님 수업 시간에 조너선 스미스를 만났다. 그의 영롱한 글을 읽으며 이런 종교학이 있다고 하는 충격을 받았다. 이후 연구소 선생님들과 독서와 세미나를 통해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다. 좋은 종교학자가 되려면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종교학자는 한편으로는 복잡한 종교 전통의 자료들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계의 이론적 지형을 명확히 읽고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종교학자가 개별 전통의 자료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학계의 이론적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준 모델이었다. 그는 진정한 ‘비교’를 위해서는 두 가지 맥락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나는 자료가 태어난 사회, 역사, 문화적 맥락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료를 다루는 학술 담론의 맥락이다. 그 두 토대 위에서만 종교학이라는 정교한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

나는 스미스를 통해 종교학을 배웠고, 지금 종교학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스미스의 책을 권하곤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스미스를 만나는 통로는 협소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출판된 두 권의 번역서 《자리 잡기》(2009)와 《종교 상상하기》(2013)도 절판되었다. 그래서 무언가 읽을거리라도 던져주어야 한다는 빚 갚는 심정으로 스미스를 소개하는 작은 책 《조너선 스미스》를 쓰게 되었다. 스미스는 종교학에서 늘 인용되는 학자지만, 솔직히 그의 글이 쉽지는 않다. 학술적인 맥락을 친절히 풀어주는 책이 있었으면 했다. 게다가 2017년에 스미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학문 세계를 조망하는 영미권 연구들이 나와 있어서, 지금이 그를 정리하고 소개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도 했다.

 

스미스를 소개하는 열 개의 키워드

《조너선 스미스》는 130쪽짜리 작은 책이다. 이 책이 속한 ‘컴북스이론총서’는 사상가의 키워드 열 개를 골라 정해진 분량 내에서 소개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은 짧은 호흡의 글을 주로 쓴 스미스와 제법 어울린다. 방대한 자료 검토와 복합적인 이론적 논의를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 안에 꾹꾹 눌러쓰는 것이 스미스의 스타일이다. 명료하면서 핵심을 담은 그의 문장은 종교학계에서 격언처럼 인용된다.

그래서 이 책은 스미스 ‘어록집’을 만드는 식으로 준비되었다. 일반적인 해설서라면 주제를 소화해 풀어쓰겠지만, 이 책은 적은 분량 안에 사상가의 육성을 최대한 전달하다 보니 직접 인용의 비중이 높고 설명은 간략하다. 종교 개념, 분류, 비교, 의례, 번역 등 종교학의 이론적 논쟁에서 자주 인용되는 문장을 최대한 담으려 했다. 스미스의 주 저서가 모두 번역되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말로 스미스를 접할 통로를 더 만들고 싶었다.

스미스의 주 저서는 다섯 권이 꼽힌다. 초기 주제의 형성을 볼 수 있는 《지도는 지형이 아니다(Map is not Territory)》(1978), 스미스 학문을 대표하는 글들이 실린 《종교 상상하기(Imagining Religion)》(1982), 의례와 공간의 관련성을 탐구한 《자리 잡기(To Take Place)》(1987), 초기 기독교 자료를 통해 비교 이론을 제시한 《신성한 노역(Drudgery Divine)》(1990), 그리고 스미스 학문의 총결산인 《종교 관련짓기(Relating Religion)》(2004)이다. 이들 저서를 통해 제시된 학술적 주제들을 10개의 키워드로 정리하고 인용문을 골고루 뽑았다. 이 과정에서 스미스 자신이 정리한 내용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그는 말년 저작에서 자신이 평생 매진한 주제를 5개로 정리했는데, 그것은 전복과 반역, 어긋남, 분류와 비교, 차이, 번역이다. 스미스 하면 떠오르는 화제의 주제와 그 자신이 뽑은 지속적 관심사를 결합하여 선정한 이 책의 키워드 열 개(종교, 분류, 비교, 유토피아 세계관, 어긋남, 차이, 엘리아데, 번역, 종교학)를 뽑았다.

 

우리 시대에 스미스를 읽는 이유

여기서 책 내용을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대신 내가 《조너선 스미스》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학자 스미스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책에 사용된 언어를 할 수 있는 한 적게 사용해서 말하고자 한다. 다음 세 줄기로 묶어 본다.

첫째, 스미스는 종교학의 ‘기본’을 말한 사람이다. 스미스가 이론적 흐름을 주도한 학자였기에, 학계에서 “조너선 스미스의 이론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나는 어떤 때는 이런 표현이 불만스럽기도 하다. 많은 경우 스미스가 강조한 바를 ‘이론’보다는 ‘기본’으로 이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미스가 늘 강조한 것은 종교학자가 자신이 어떠한 관점에서 연구하는지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주어진 개념이다. 따라서 학자는 자신이 어떠한 관점에서 종교를 정의하는지 분명히 밝히며 연구해야 한다. 학자는 종교의 ‘분류’를 주어진 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준이 적용된 것인지 비평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종교의 ‘비교’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자가 어떠한 목표를 갖고 떨어져 있는 두 대상을 연결하는 인위적 조작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을 비교할 때 ‘~의 관점에서’ 비교가 행해졌는지 투명해야 한다. 스미스가 반향을 일으킨 이러한 주장들은 종교학이 갖추어야 할 학문의 ABC이기에 이론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둘째, 스미스는 종교인을 ‘보통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스미스가 종교학의 거장 엘리아데에게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주제를 형성한 과정은 흥미롭다. 스미스는 종교 공간에 대한 인간의 사유가 중심 상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 세계관’도 있음을 주장하면서 대안적 이론을 제시하였다.(내가 책에서 설명을 위해 엘리아데와 스미스를 대조점을 단순화하여 강조한 면은 있다.) 인류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스미스는, 인류학에서 원주민이 우리와 다르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종교인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게 생각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종교인이 전통만 지키는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스미스가 연구한 종교인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종교인은 종교의 가르침과 현실 사이에 ‘어긋남’이 있음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그 틈새에서 새로운 실천을 창조해낸다. 종교의 진정한 생명력은 바로 그 순간에 있다고 스미스는 보았다.

셋째, 스미스의 학문적 유산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하지만 그가 가리킨 방향성은 아직 학계에서 생생한 울림을 갖는다. 그는 종교인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은 관점에서 연구했고, 종교를 일상적 영역과 다르지 않게 접근했다. 그렇기에 종교학은 종교 영역을 우리에게 친숙한 언어로 ‘번역’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종교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다루는 것은, 종교학의 오랜 이상이지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종교학’이 스미스의 유산을 진지하게 수용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정확히 말하면 "나는 ○○교 신자입니다"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시대를 살고 있다. 종교 개념 자체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종교적인 것’의 시대에, 스미스는 아직 가르쳐 줄 것이 많은 종교학자이다.

예전보다는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한국에서 종교학은 여전히 낯선 학문이다. 엘리아데의 저서가 많이 번역된 덕에 과거의 종교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다. 하지만 엘리아데 이후, 지금의 종교학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이들에겐 조너선 스미스를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의 주 저서가 번역되어 더 깊은 만남이 이루어지면 더 좋겠지만, 이 작은 책이 그 만남을 예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이 글은 <대학지성>(2026.2.8.)에 기고한 원고를 뉴스레터 맥락에 맞게 수정한 것이다.

 

 

 

 

방원일_

서울대학교 강사, 인문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종교문화에서 만남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 내용을 발전시켜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종교의 만남≫(2023)을 출판했다. 현재 물질종교의 관점에서 근대 한국 종교사를 새롭게 서술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저술로는 ≪메리 더글러스≫(2018), ≪근대 전환기 문화들의 조우와 메타모포시스≫(2021, 공저), ≪메타모포시스의 현장≫(2023, 공저), ≪조너선 스미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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