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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927호-사유(思惟)를 감각하기

한종연KIRC 2026. 3. 24. 16:41

사유(思惟)를 감각하기

 

 

 

news letter No.927 2026/3/24

 

 

 

 

 

                                사유의 세계

                       금동반가사유상 앞에서

 

                                                        이사라

 

정문으로 들어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계단은 신전 계단인 듯

저 위가 궁금하다

 

깨진 토기 조각

솟아오른 석탑

황금 왕관

역사 담긴 유물이 이렇게 많고

그들이 말 걸어오는 생각들이 이렇게 많고

반응하는 내 마음도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상설관 2층

국보 78호와 83호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만 있는

적막한 사유의 방에 다다르면

 

바라보고 느끼는 나도 사유하는 인간이 되는 듯

시간과 공간에 흐르는 고요 속에서

한쪽 마음을 다른 한쪽 마음에 얹는다

반가처럼

미소처럼

 

그런데 왜 사유의 방이라고 이름 붙이고

여기서만 왜 사유를 더 해야 하나

박물관에는 모두가 사유의 주체이고 객체인데

갸웃거리다가

그래도 해야 한다면 아니 할 수 있다면

미륵불도 아니고 태자불도 아닌

보편적인 반가상의 미소를 사유하고 싶다

 

서둘러 사유에 갇힌 사유를 벗어나

박물관 건물을 나오면 정원 곳곳에서는

옛 석탑들이 오늘과 바람과 노니는데

이쯤 되면 생과 사의 분별없는 혼재

옆으로 더 걸어가면 가족공원에 들어서고

 

오늘을 사는 가족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펴고 일상을 나누며

미소 짓는 사이를 지나가며

나는 사유의 또 다른 넓은 방을 지나가는 듯

세기를 뛰어넘는 사유의 평정을 누린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미소를 사유하고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유의 자유는 살아있고

사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고뇌하는 사람에게 있는 세계라고

그리고 사유의 끝에는 박물관 후문이 있다고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오는 길

도처에 사유가 있다

 

(사)한국시인협회, 『시의 낙원』 중에서

 

 

 

Prologue

 

시를 노트에 적는다. 만년필의 단단함과 잉크가 흘러내리는 부드러움이 손끝에 와 닿고, 꾹꾹 눌러쓴 압력이 서걱거리는 종이의 질감과 맞물리며 나는 시를 감각하고 있다. 손과 펜, 종이가 맞닿는 촉감은 시를 머릿속에서 굴리는 사고의 흐름이 아니라, 몸으로 진동하는 미세한 파동으로 만들어낸다. 어느 순간 시는 머리에서 떠오르는 형상이 아니라, 몸을 통과하는 감각의 떨림이 되고, 그렇게 몸은 시를 감각하는 하나의 장()이 된다.

 

시인(이사라)은 이 시를 통해 금동반가사유상을 바라보며, 사유가 박물관의 전시실에 갇혀 있는 부자연스러움을 노래한다. 시인은 사유란 원래 인간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유되는 인간다움의 증거인데, 이를 몇 평 남짓한 공간에 가두어 인위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사유 자체를 형해화(形骸化)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유감을 나타낸다. 시인이 말하듯, 사유는 누구에게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사유라는 이름의 조각상을 세워놓고 이를 전시하며 사유 자체를 특별화하는 것은 그 자체를 해체해서 박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모든 사유의 평범성이 동일한 감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박물관 안에서 금동반가사유상을 마주하며 발생하는 사유의 결(), 너른 장소에서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사유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는 사유가 단지 인간의 인식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인지적 흐름이 아니라, 특정한 사물·공간·분위기 속에서 신체가 감각하고 응축하는 감각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사유를 인식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몸의 감각적 층위에서 감정과 정동으로 공명하는 사건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서 금동반가사유상이라는 박물관의 특정 사물이 몸과 마주치는 그 사이, 좁은 틈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흔들림을 통해 사유를 읽어내는 방식을 서술한다.

 

이 시는 금동반가사유상이라는 사물이 사유의 흔적을 전염시키듯 확장시키는 감정의 물결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다양한 오브제를 지나 사유라는 관념을 구체화한 조각이 마침내 눈 앞에 드러난다. 사유의 공간을 사물화하기 위해 적막하게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진열한 공간 속에서, 조명 아래 고요히 자리한 두 오브제는 사유라는 사물로 다시 태어난다. 눈을 감은 채 미소 짓는 금동반가사유상의 형상은 그 자체로 고요와 적막이 흐르는 사유의 기쁨을 전염시키는 매개체이다.

 

그렇게 전염된 사유는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몸에 축적되고, 곧이어 가족공원에서 마주한 일상의 미소들과 연결된다. 이러한 대비는 공간과 시간에 갇혀 있던 사유의 형상을 다시 한 번 확장시키며, 사유가 일상의 장면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드러낸다. 또한 전염된 사유의 감정은 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오는 그 순간까지 지속되며, 지나온 공간의 길이 만큼 사유의 기쁨이 흔적으로 남아 공명한다. 결국 시는 사유를 박물관이라는 사물로 치환시키며, 공간 전체를 사유의 회로로 변환시킨다. 마침내 사유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Epilogue

 

사유는 인간의 몸이 특정한 환경이나 사물과 조우했을 때 분열하듯 일어나는 신체적 반응이자, 물질적 사건이다. 시인은 반가사유상의 전시실로 향하며 수많은 사물들과 조우한다. 깨진 토기와 우뚝한 석탑, 황금 왕관은 사유의 사물을 만나기 전 설렘과 기대를 고조시키며 사유의 파편들을 흩뿌린다. 이러한 사유의 파편들은 신체에 축적되고 사유상 앞에 섰을 때, 비로소 하나로 응집된다. 사유는 이내 조형물이 지닌 미소처럼 기쁨으로 전이되고, 적막한 전시실의 침묵 속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이런 침묵 끝에 시인이 도달한 사유의 마지막 결은 불편함이었다. 시인은 인간다움의 조건으로 사유의 평범함을 자유롭게 펼쳐야 할 사고가 사유의 사물 앞에 적막한 침묵으로 가로막혀 있음을 감각한다. 곧이어 사물 앞에 선 시인의 불편함은 신체에 응축되고, 전시실을 벗어나 드넓은 공간으로 나오면서 새로운 감정으로 전환된다. 탁 트인 공간에서 사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신선함과 미소 짓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사유는 다시 기쁨으로 변모하며, 사유의 자유와 일상성을 되찾는다.

 

그 사유의 흔적은 박물관을 빠져나오는 순간,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이어진다. 결국 사유란, 몸이 사물과 조우하면서 신체 안에 축적되는 감정의 응축과 강화이다. 그러한 응축이 강화될 때 사유는 강도를 이루고, 사건으로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사유는 신체가 물질과 조우하여 만들어내는 물질적 행위이자 사건이다.

 

 

 

 

 

 

 

도태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근대적 문자성과 개신교 담론의 형성>, <근대 소리 매체(라디오, 유성기)가 생산한 종교적 풍경>, <물질종교, 신유물론으로 접근하기>, <정동경제를 통한 불교 ‘뉴진스님’ 현상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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