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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것만 죽일 수는 없다

 

news letter No.938 2026/6/9

 



민트가 누렇게 시들던 날

초록 풀들이 무성해지는 오월이 되면 민트 시럽을 만든다. 각종 모임에 가져가서 시원한 물에 타서 나눠 마시면 향긋한 민트향이 기분을 전환해 주기에, 이맘때 모임이 있으면 민트 시럽을 만들어 가곤 한다. 얼마 전, 나는 문화생태지도 야외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과 나눠 마시려고 민트 시럽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아직 우리 밭의 민트는 양이 많지 않아서, 함께 가꾸는 생태텃밭에 잠깐 들러서 민트를 수확하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지역의 몇몇 친구들과 버려진 공터를 빌려서 함께 텃밭을 가꾸고 있다. 단일작물로 수확량을 늘리기보다는, 다종의 식물들이 공존하는 숲밭을 지향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퍼머컬처 농사를 시도해 왔다. 수년에 걸쳐 약을 치지 않고 다종의 식물이 함께 자라는 환경을 조성하고 솎아낸 풀은 흙으로 돌아가도록 땅에 덮어주는 등 노력을 기울이니, 처음에는 딱딱했던 땅이 지금은 지렁이도 많은 비옥한 검은 흙이 되었다.

밭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지난주까지도 초록빛으로 생기를 뿜어내던 민트가 시들시들하고 일부 누렇게 말라 있다. 누군가 약을 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며칠 뒤 텃밭모임을 위해 다시 밭으로 갔다. 지난번 텃밭에 잠깐 들렀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게 착각이 아니었다. 그토록 무성하게 자라던 민트도, 세력을 확장해 가던 세인트존스워트도, 방풍나물도, 삼잎국화도, 광대싸리도, 꽃양귀비도, 댑싸리도, 가지 모종도... 모두 오그라들거나 잎끝이 시커멓게 타거나 전체적으로 누렇게 말라 있었다. 누군가가 텃밭 곳곳에 제초제를 뿌린 것이다. 그 식물들은 오월에 한창 생생하게 잘 자라다가 인간이 뿌린 날벼락을 맞았다. 며칠 전까지 반짝반짝 빛나며 생기를 뿜어내던 식물의 기묘하게 뒤틀린 줄기와 오그라든 잎을 보는 건 고통스러웠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중얼거리면서 제초제를 맞아 오그라든 방풍나물과 삼잎국화를, 누렇게 말라버린 세인트존스워트와 민트를 베어냈다.

 

제초제  원하지 않는 식물을 죽이는 

제초제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농작물을 해치지 아니하고 잡초만을 없애는 약”이라고 적혀 있다. 주로 농작물을 재배할 때 작물이 아닌 풀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는 화학물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초제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화학무기를 제조하는 전시 기술을 활용해서 획기적으로 ‘발전’을 이루었다.

제초제를 사용하는 농업은 자연에 깃들어 먹거리를 얻기보다는 자연과 전쟁을 일으켜서 인간이 원하는 바를 얻는다는 발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사용과 제초제 및 살충제와 같은 새로운 유독성 화합물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제초제의 주요 성분은 2,4-D이다. 그것은 식물의 잎에 흡수되어 작용한다. 미국은 2,4-D와 2,4,5-T를 결합해서 ‘고엽제’, 곧 나무의 잎을 죽이는 약물을 개발했고, 베트남전에서 수백만 갤런을 공중에 살포했다. ‘에이전트 오렌지’로 불리는 이 유독성 화학물질은 나무와 풀, 농작물은 물론이고 노출된 인간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남겼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에도 2,4-D가 제초제의 주요 성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4-D를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몬산토라는 기업이 글리포세이트라는 이름의 새로운 잡초 방제 분자의 특허를 얻었다. 그것은 식물 효소를 교란해서 식물 성장을 중단시키는 물질이다. 글리포세이트의 주요 브랜드 상품이 라운드업이며,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제초제이다.

왜 생태학적 순환을 생각하지 않을까. 인간도, 인간이 만든 온갖 화학적 물질도 순환의 고리에서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농작물에 분무되는 글리포세이트는 결코 목표만 달성한 뒤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의 순환 고리를 타고 우리의 음식과 우리의 물, 우리의 토양, 우리의 공기로 흩어지며, “그 모든 장소는 다른 하나의 장소, 곧 우리의 몸으로 이어진다.” 독성물질은 단지 식물을 죽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인간을 비롯해 살아있는 존재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 글리포세이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제초제인 아트라진은 미국의 지질조사국 연구에 따르면 지하수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제초제인데, 내분비계 교란물질로서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제초제, 살균제, 살충제는 흔히 ‘작물보호제(crop protection)’ 또는 농약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기만적인 이름이다. 약이라기보다는 “죽이기 위해 고안된” 독이다. 그리고 그 독은 생태학적 순환의 원리에 따라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로 퍼지고 기대하지 않았던 몸에 작용한다.

죽이고 싶은 대상만 딱 골라서 죽일 수 있는 물질이란 세상에 없다.

 

환기미술관의 은행나무



최근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은행나무 한 그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환기미술관 담벼락 바깥에 자라던 2백 살 은행나무가 담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명목으로 미술관 측에서 은행나무 몸통에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평소 은행나무를 아끼던 부암동 주민들이 봄날에 누렇게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고 주위를 살피다가 밑동과 뿌리의 구멍에 제초제를 투입한 흔적을 발견해서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연일 은행나무 주위에 모여서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투입한 환기미술관 측에 항의하고 나무를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 무당은 나무 아래 굿상을 펼치고 굿판을 벌였다. 나무 살림굿이다.

총체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무 한 그루가 죽고 사는 일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 주위 나무 한 그루의 안녕에 주의를 기울이고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일이 더욱 중요한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리는 일은 세계를 살리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수많은 존재들이 떠받치는 세상에서

숲길을 걷다가 누군가 나무 몸통을 한 바퀴 돌아가며 껍질을 깎아내 고사한 큰 나무를 보았다. 길가에서 제초제 맞은 모시잎과 금계국을 보았다. 금계국 꽃잎이 다 오그라들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애쓰고 있었다.

수많은 존재들이 떠받쳐온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 누가 세상을 무너뜨리고 위기를 만들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제초제로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금계국잎이 오그라들고 민트가 누렇게 시들어가는 동안, 우리의 세계도 오그라들고 시들어간다.

그 둘이 어떻게 다를까.

우리 집 밭 뽕나무 아래에는 벌통이 자리하고 있다. 몇 년 전 겨울에 벌들이 다 죽거나 사라져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도 벌통을 계속 그 자리에 놓아두었더니, 언제부터인가 꿀벌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 환기미술관의 은행나무도, 함께 가꾸는 텃밭의 풀들도 다시 힘을 내어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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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조시 티켈, 《대지에 입맞춤을》, 유기쁨 역, 눌민, 2023

매튜 홀, 《식물 사람: 철학적 식물학》, 유기쁨 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4

 

 

 

 

 

유기쁨_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저서로 《애니미즘과 현대세계: 다시 상상하는 세계의 생명성》,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바이러스에 걸린 교회》, 《아픔 넘어: 고통의 인문학》 등이 있고, 논문으로 〈인간적인 것 너머의 종교학, 그 가능성의 모색: 종교학의 '생태학적 전회'를 상상하며〉,〈‘병든 지구’와 성스러운 생태학의 귀환-생태와 영성의 현실적 결합에서 나타나는 종교문화현상의 비판적 고찰〉, 〈발 플럼우드의 철학적 애니미즘 연구: 장소에 기반한 유물론적 영성 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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