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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사와 종교학: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별세에 즈음하여

 

 

news letter No.940 2026/6/23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침 그가 브루스 링컨(Bruce Lincoln)과 공저한 책(Old Thiess, a Livonian Werewolf, 2020)에 대한 서평 원고를 교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존경하는 학자가 떠날 때 많은 연구자가 그렇게 하듯이, 그에게 받은 학문적 영향과 지적 자극을 추억하게 되었다.

1.

긴즈부르그의 대표작 《치즈와 구더기》(Il formaggio e i vermi, 1976)의 한국어판은 2001년 말에 발간되었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역사학계에서도 미시사, 신문화사, ‘새로운 역사학’ 등의 이름으로 회자되던 새로운 역사학 방법을 대표하는 저작 가운데 하나였다. 16세기 이탈리아 동북부 프리울리 지역의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에 대한 이단심문 기록을 통해 지배 계급의 문화와 종속 계급의 문화, 문자 전통과 구비 전통, 엘리트 종교와 민속 종교의 상호 침투를 추적한 이 연구는 20세기 후반 역사학의 걸작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나는 대학생 시절 주경철 교수의 문화사 수업에서 이 책을 포함한 긴즈부르그의 저작 일부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치즈와 구더기》를 쓴 미시사 연구자로서의 긴즈부르그보다는 《밤의 역사: 사바트의 해석》(Storia notturna. Una decifrazione del sabba, 1989)를 쓴 비교 연구자로서의 긴즈부르그였다. 그것은 긴즈부르그를 ‘미시사가’라고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할 책이었다.

《밤의 역사》에서 긴즈부르그는 중세 유럽의 위치크래프트(witchcraft) 자료에서 흔히 나타나는 밤의 집회(사바트)에 대한 서사를 농경의 풍요와 관련된 민속 종교 사례들과 연결한다. 그 가운데에는 그의 박사학위논문과 첫 단행본의 주제였던 프리울리 지역의 베난단티(benandanti)도 있다. 마술 혐의로 이단 재판소에 끌려온 농민들은 자신들이 마술사나 마녀가 아니라 풍작을 위해 신의 편에서 마녀들과 싸우는 이들이라 주장하였다. 긴즈부르그는 박사논문을 제출한 직후 다른 지역의 자료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의 종교현상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동유럽 지역의 이단심문 자료에 종종 나타나는 늑대인간이었다. 늑대인간으로 지목된 이들은 자신들이 괴물이 아니라 ‘신의 사냥개’로서 악마들과 악한 마술사들을 사냥하는 전사들이라고 주장하였다. 베난단티와 늑대인간 자료의 비교는 뒤에 단행본으로 발간된 《베난단티》(I benandanti, 1966)에 몇 페이지 정도로 추가되었다.

《밤의 역사》는 바로 이 주제를 두꺼운 책 한 권 규모로 확장한 연구다. 긴즈부르그는 유럽 민속 종교 사례들에서 나타나는 주기적인 탈혼(엑스터시), 동물로의 변신, 풍요를 위한 전투, 죽은 자들의 세계로의 비행과 같은 공통 요소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유사성의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은 전파론이다. 유럽의 농경의례에서 마녀들의 사바트까지 이 종교적 주제와 패턴은 중앙아시아 샤머니즘에서 기원하였고, 스키타이족의 이동과 함께 유럽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런 주장은 학계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했다. 신선함과 엄밀함을 동시에 충족하는 미시사적 접근에 비하면, 유라시아 샤머니즘이나 스키타이족 같은 것을 거론하는 전파론은 이 책이 발간될 무렵에는 이미 너무나 낡고 진부한 설명이었던 까닭이다.

2.

긴즈부르그의 별세를 보도한 국내외의 언론 기사들 대다수는 그의 ‘미시사’ 저작인 《치즈와 구더기》와 《베난단티》 정도를 언급하고, 《밤의 역사》을 거론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이 지면에서는 《밤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 이 책에서 종합된 그의 비교 연구를 가장 진지하게 다룬 분야가 다름 아닌 종교학이었기 때문이다.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1975년 논문인 “유럽의 위치크래프트에 대한 몇 가지 고찰(Some Observations on European Witchcraft)”에서 긴즈부르그의 《베난단티》를 중요하게 인용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럽 풍요의례가 이단심문의 억압 속에서 흑마술의 형태로 정착되었다는 가설을 문헌 자료로 입증한 연구였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본문보다는 엘리아데가 달아놓은 긴 각주다. 여기에서 엘리아데는 긴즈부르그가 간략하게 언급한 베난단티와 늑대인간, 샤머니즘 사이의 비교를 높이 평가하며, 이것이 북유럽 등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죽은 전사와 신들이 악마적 세력과 싸운다는 믿음과의 비교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밤의 역사》의 비교 방법에 대해 가장 높이 평가한 학자는 이오안 쿨리아누(Ioan Culianu)와 웬디 도니거(Wendy Doniger)다. 쿨리아누는 《밤의 역사》의 영역판(Ecstasies: Deciphering the Witches' Sabbath, 1990)에 대한 서평에서 이 연구가 “우리 시대의 두 지배적 문화인 구조 없는 역사주의와 역사 없는 구조주의에 대항하는” 입장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도니거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긴즈부르그의 작업은 단순한 전파론이라기보다는, 인간 정신의 구조적 특성에 근거를 둔 전파를 말하고 있다고 평했다. 샤머니즘적 사유와 실천이 유럽의 민속 종교로 전파되고, 지배문화의 압박에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신의 원형적 도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긴즈부르그 자신의 문장을 살펴보자.

“이렇게 해서 원형 개념이 극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개념이 신체에,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체의 자기표현에 단단히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형 개념이 인간 종의 신체적 특성과 결부된 경험을 재구성하여 보편적인 상징적 형태로 옮길 수 있게 하는 형식적 본성의 매개 사례로서, 일종의 도식으로서 작동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 같은 논리로 문제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원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범하는 실수, 즉 고립된 채로 다소 널리 퍼져 있는 특정 상징들을 ‘문화적 보편성’으로 잘못 판단하는 실수를 방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김정하 역, 《밤의 역사》, 문학과지성사, 430)

원형 개념을 이런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면 20세기 후반 이후 폐기되는 것처럼 보였던 종교현상의 광범위한 비교 연구는 일정한 정당성을 회복하게 된다. 역사적 전파론은 인간의 공통된 ‘신체 경험’이라는 구조적 도식과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긴즈부르그의 비교는 유라시아 전역을 범위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엑스터시나 통과의례를 통해 다른 세계에 다녀온 샤먼의 특징인 ‘비대칭 보행’이라는 요소를 드러내기 위해 그는 오이디푸스 신화, 중국의 우보법(禹步法), 그리고 신데렐라 이야기 등을 비교 범위에 넣었다.

3.

한편 브루스 링컨은 이런 방식의 광범위한 비교에 명확히 반대하면서도, 비교종교 연구에 있어 긴즈부르그의 작업이 가지는 의미를 다른 측면에서 평가하였다. 그는 긴즈부르그가 아직 늑대인간 자료와의 비교를 시도하지 않았던 《베난단티》의 박사논문 버전에서도 이미 비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보았다. 이단심문관의 질문과 피고인의 답변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정통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성, 엘리트 문화와 민중 문화의 차이가 날카롭게 분석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신중한 비교가 유라시아 샤머니즘의 전파라는 야심 차고 위험한 기획으로 바뀌었을 때 이 프로젝트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스타일의 비교 연구에서는 비교 자료가 늘어날 때마다, 연구자는 자신의 욕망이 투사하는 결론으로 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자료의 세부사항을 생략하고, 의미 있는 차이들을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링컨은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긴즈부르그의 역사 서술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이단심문 자료에 대한 긴즈부르그의 연구는 지배집단에 의해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린 피고인들의 심성과 문화적 전통을 보다 정확하고 공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링컨이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평가한 거시적 비교 작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치의 이데올로그 가운데 하나였던 철학자 오토 회플러(Otto Höfler)는 늑대인간 재판 자료를 나치 친위대(SS)의 역사적 원형인 고대 아리아인 남성 결사의 불완전한 흔적이라 주장하였다. 긴즈부르그 또한 회플러의 연구를 통해 이 자료를 알게 되었지만, 베난단티와의 비교를 통해 이 자료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늑대인간은 나치의 원형으로 여겨진 고대 아리아인 전사 집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풍요와 행복을 위해 싸우는 샤먼의 후예로 재해석된 것이다. 그래서 링컨은 긴즈부르그가 늑대인간들을 ‘두 번 구했다’고 말한다. 한 번은 판사들로부터, 또 한 번은 나치 학자들로부터.

나아가 링컨은 이런 접근을 긴즈부르그의 개인적 배경과 연관시킨다. 그의 아버지 레오네 긴즈부르그(Leone Ginzburg)는 슬라브 언어와 러시아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그는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해 교수직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유년기의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아버지가 반파시스트 단체에서 활동하고,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사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밤의 역사》에서 긴즈부르그는 “과거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시도는 죽은 자들의 세계로의 여정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링컨은 긴즈부르그가 그의 개인적 상황과 직업적 실천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연구한 샤먼이나 유럽 민속종교의 주술사와 같은 일을 했다고 말한다. 그의 학문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 여행해 악마의 세력과 싸우고, 자신과 타인을 치유하는 힘을 얻는 실천이었다는 것이다.

긴즈부르그의 학문에 대한 종교학자들의 평가를 정리하며, 나 자신은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긴즈부르그의 저서, 특히 《밤의 역사》가 제시한 로망 넘치는 비교 연구는 나를 종교학으로 인도한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베난단티》와 《치즈와 구더기》에서는 거시적인 역사 연구에서 간과되어 온 자료들을 치밀하게 파고들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문화적 층위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는 민간의 종교적 실천에 대한 지배체제의 통제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에서 민속 종교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아시아 종교사에서 발견한 나의 메노키오, 나의 베난단티들, 나의 늑대인간들에 대한 연구를 이어 나감으로써 죽은 자들의 세계로 영원한 여행을 떠난 그에게 감사를 전하기로 다짐했다.

 

 

 

 

한승훈_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전공 조교수
최근 발표한 논문으로 〈청림교의 도참신앙과 해도진인설〉, 〈17세기 함경도의 術儒 朱棐: 조선 후기 유랑지식인의 一例〉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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