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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

 

news letter No.942 2026/7/7

 

 

최근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많을 듯싶다. 월드컵 축구는 단순한 유희를 넘어서 국가 공동체의 정체성이나 자존심을 건 대결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월드컵 축구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렇다는 생각이다. 몇 날 며칠을 분개하거나 답답한 느낌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다.

이럴 때 축구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서 옆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왜 저러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평정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아마도 이런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할 터이고 잘못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앞으로 이번 경우처럼 경기에서 패배하더라도 불필요하게 감정을 다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축구 애호가들의 공통된 심정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승패를 떠나서 월드컵에 참가하는 모든 축구 선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때가 있다. 축구공은 둥글다. 둥글고 잘 튀고 웬만한 압력에도 내구성이 좋아서 가지고 놀기에는 흥미로운데 내 맘대로 다루기는 힘들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게 축구공이다. 이 속을 알 수 없는 축구공을 내 의도대로 다루어서 목표를 달성하면 이기는 게임이 된다. 축구공을 다루는 기술이 웬만큼 숙련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각고의 노력을 해야 했을까. 우리가 보는 수많은 축구선수는 이 과정을 거친 전문가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축구는 단체 경기라서 여러 사람이 손발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선수들끼리 유기적인 연결망이 조직되지 않으면 제한된 공간에서 언제 불쑥 발생할지 모르는 변수에 대응하는 능력이 생성되지 않는다. 초록의 피치는 언뜻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여도 막상 게임이 시작되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천만하고 긴장감 넘치는 공간이 된다. 서로를 이기려고 대드는 두 집단이 만나서 빚어내는 충돌의 에너지는 예측 불가하다.

축구는 다양한 전술을 활용하는 스포츠다. 수비수를 몇 명을 세우고 공격수의 움직임을 어떻게 운영하며 상대방의 파상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방법은 무엇인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감안하여 효과적인 전술을 선택한다. 축구의 역사는 다양한 전술이 패러다임을 바꿔가며 진화해 온 과정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그렇지만 전술이 코치나 선수들의 의도대로 백 퍼센트 먹히는 게임은 거의 없다.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가 늘 발목을 잡는다. 축구 경기장에서 돌출하는 우연은 늘 새롭고 경이로울 정도로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런 의미에서 축구는 우연이 지배하는 게임이다. 축구의 모든 기술과 전술은 우연을 최대한 통제하는 데 동원된다. 축구장에서 우연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늘 패배와 더불어 좌절된다. 운이 따르지 않아서 졌다는 말은 우연의 지배를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저항의 표현이다. 승리의 여신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인생도 우연의 연속인 점에서 축구와 닮았다. 우연은 삶을 위기로 몰아가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가령 매 순간이 뜻하지 않은 우연으로 점철된다면 우리는 집 밖으로 단 한 발 짝도 내디딜 수 없다. 방향을 정하고, 시간을 구획하고, 길을 닦고, 걷기 좋은 신발을 만들고, 보행 규칙을 마련해서 위험 요소를 줄이는 일은 실용적인 목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삶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우연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지그시 눌러야 하는데 인간의 역사란 그걸 위한 고심의 흔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문화란 결국 우연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이 아니겠는가.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문학이나 여러 예술에 대해 조예가 그다지 깊지 못한 편인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요즘 들어 종교와 거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우주 어느 한구석도 무관심과 무의미의 상태로는 절대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일념이 모두에게서 감지되어서일까, 아니면 우연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점이 공통적이어서일까. 그런데 이 둘은 표현은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말이다. 기실 우연을 다루는 기술로 말하면 과학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분야이다. 그렇다면 종교와 과학도 그럴까. 과학의 출발은 삶에 대한 진지한 관심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논문으로 〈상대 갑골 점복의 복조 해석에 관한 소고〉, 〈商代 토테미즘 설에 관한 비판적 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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