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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정동 그리고 예측하는 신체
news letter No.941 2026/6/30

최근 몇 년 사이에 꿈을 자주 꾼다. 특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엄습하고 그 불안들이 신체를 압도할 때, 꿈이라는 또렷한 이미지는 진한 흔적을 남기며 불안의 감정 속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나는 꿈을 해석한다. 이 불안하고 압도적인 이미지들을 읽어내고 이해하기 위해서.
며칠 전 또 꿈을 꾸었다. 큰 여행가방을 닮은 거북이가 나타나 사납게 나를 물려고 덤벼들었다. 거북이의 사나운 공격을 피해, 나는 이 녀석을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고심 끝에 녀석을 잡아 물가에 놓아주기로 결정했다. 사나운 거북이를 겨우 잡아 가까운 물가에 풀어주고 돌아서는 길, 먼발치에서 강가를 바라보니 한 무리의 악어 떼가 보인다. 내가 방금 놓아준 생명체가 악어인지 거북이인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리고 돌아서는 길에 나는 문득 깨닫는다. “아, 거북이와 악어는 본래 같은 것이로구나.” 꿈에서 깬 뒤에도 이 찜찜한 잔상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좋은 꿈인가, 아니면 악몽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꿈의 의미를 해석하려 시도하며 좋은 징조일 거라 애써 위안해 보았지만, 불안의 감정은 흔적처럼 남아 나의 하루를 비집고 들어와 부단히 나를 흔든다.
그리고 며칠 후, 꿈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사건이 현실에서 발생한다. 꿈속의 기이한 이미지들이 구체적인 현실을 예기하는 사건이 되어 내 눈앞에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꿈이 한낱 허구적 잔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뒤흔드는 강력한 예측의 힘으로 감지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예지몽(Precognitive Dream)이라 부르며, 미래를 선취하기 위한 해석을 시도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꿈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꿈은 나의 미래를 예측하는 물질적 형상이 되는가.
그런 맥락에서 꿈을 인간의 원초적인 생체 예측 체계(Biological Predictive System)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나아가 이러한 예측 체계의 심층에 신체를 관통하는 정동의 가상적 에너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학적 지평에서 정동(Affect)은 외부 자극에 신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내장적 힘(Visceral Force)'으로 규정된다. 이 내장적 힘은 연구자에 따라 '본능적 힘(Instinctive Force)'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그 기원과 신체적 메커니즘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내장적 힘'으로 명명하는 것이 학술적으로 더욱 타당하다.
이 힘이 내장적 성격을 띠는 원인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동물적 신체성(Animalistic Force)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과거 사족보행을 하던 포유류 단계에서 동물의 복부는 항상 지면과 맞닿아 있었다. 이러한 물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동물은 외부 세계의 진동을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 즉, 원거리에서 다가오는 외부의 위협들은 땅을 통해 전달되는 파동의 형태로 복부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대지의 진동은 동물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이를 인지하는 일차적 경로였으며, 이러한 자극은 복부의 촉각적 수용을 거쳐 내장 깊숙이 체화되었다. 이는 곧 동물이 세계와 ‘공명(Resonance)’하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을 이룬다.
이러한 촉각적 자극은 신체 내부에 감각적 흔적으로 축적되며, 지면과 맞닿았던 진동의 기억은 육체의 살(Flesh)에 고스란히 각인된다. 이 같은 감각의 누적은 전의식적인 정동적 과잉(Affective Excess)을 야기하고, 이 과잉된 에너지가 임계점에 이를 때 비로소 신체 고유의 생체 예측 체계가 가시화되는 장을 마련한다. 결과적으로 내장적 힘은 외부 세계와의 촉각적 공명을 매개로 정동을 축적·과잉화함으로써, 가상적(Virtual) 공간에 머물던 잠재적 힘을 꿈이나 직감 같은 구체적인 신체 징후로 발현시키는 역학을 수행하는 셈이다.
인간 역시 직립보행을 확립하기 전에는 사족보행을 영위하던 포유류로서 철저히 동물적 지평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인간 또한 여타 동물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관계하고 공명하는 방식을 내장적 힘을 통해 체화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초적 감각 방식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직립을 통해 시각 중심의 인지 체계를 일반화한 이후에도 신체 내부에 잔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세계의 역동적인 힘이 인간의 살에 가하는 촉각적 자극은 지속적으로 누적되며 정동적 과잉을 야기했고, 이 잠재적 힘의 축적이 곧 앞서 언급한 예지몽과 같은 고유한 신체 예측 체계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전개된 산업화 시대에 이르러, 이성 중심주의와 계량주의는 이러한 신체적 감각을 은폐하였고, 이와 같은 신체적 예측 체계는 점차 기술적 방식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리스크(Risk)를 수치화하여 보편화시킨 지적·기술적 체계가 바로 통계학이다. 개인과 사회의 다채로운 사건들을 정량화하여 통계적 일반화를 도출해 내는 이 시스템은, 인간의 구체적인 ‘신체적 삶’을 숫자로 환원함으로써 근대적인 예측 및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산업화 시대를 거쳐 도래한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예측 시스템은 신체적 데이터를 매개로 고도화된 디지털 정보 체계로 전면 전환된다. 인간의 신체적 데이터는 정교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광범위하게 수집 및 축적되며, 이를 통해 개인의 예측 전망 시스템이 정밀하게 구축된다. 이처럼 인간의 신체·생체적 예측 시스템이 디지털 기술을 거치며 매체화되는 현상을 일컬어, 미디어 이론가 유진 새커(Eugene Thacker)는 '바이오미디어(Biomedia)'라는 개념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이러한 테크놀로지적 예측 시스템 이전에 존재하던 고유하고 개별적인 신체 예측 체계가 여전히 보존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꿈'의 영역이다. 인간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미시적인 위험과 불안의 징후들을 끊임없이 신체와 내장에 축적하며, 이러한 축적이 임계점을 넘어 과잉될 때 정동은 단순한 가상성을 탈피하여 현실적인 힘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우리가 수면 중 꿈을 통해 거북이나 악어와 같은 특정한 이미지를 생성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잠재적 위험을 전망하고 해석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테크놀로지 이전의 원초적인 생체 예측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꿈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이미지와 환영들은 세계의 위험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발생한 신체적 축적과 정동적 과잉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결과물에 가깝다. 이 형상들은 예민해진 신체의 내부적 추동력을 바탕으로 꿈이라는 매체적 징후를 생성하며, 나아가 현대 디지털 데이터 체계가 포착하지 못한 미래를 예견하고 해석하는 생체적 나침반의 역할을 수행한다.
도태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근대적 문자성과 개신교 담론의 형성>, <근대 소리 매체(라디오, 유성기)가 생산한 종교적 풍경>, <물질종교, 신유물론으로 접근하기>, <정동경제를 통한 불교 ‘뉴진스님’ 현상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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