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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적 정교분리가 과연 정답인가?

2012.3.37

지난 2000년간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보면, 서구의 교회가 국가에 완전히 복속되었거나 복속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국가의 간섭은 피할 수 없었다. 교황이 황제 위에 군림한 시기는 11세기 중반 가톨릭교회가 새롭게 정비되면서 ‘교황혁명’이 일어난 불과 100여 년간이다. 그 외 국가의 간섭을 벗어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국가권력이 붕괴되었거나 국가권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 한해서였다. 전통사회가 신민의 통합을 종교에 근거하고 있는 이상 결코 종교를 자유롭게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그것이 근대이전의 교회와 국가 즉, 정교관계를 규정하는 조건이었다. 교회와 국가를 분리할 수 있게 한 것은 종교와 관계없이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세속국가가 들어섰을 때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그것도 그냥 분리해 준 것이 아니다. 언제 돌출할지 모르는 종교의 잠재적 위험성을 제거하고자 종교의 독자성은 보장하나 내면의 정신세계로만 한정하여 세속의 공적인 질서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고서야 가능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해 등장한 다양한 개혁 교파들도 프로테스탄트든 가톨릭이든 모두 ‘짐이 국가’라는 절대왕정의 국가교회가 된 것이다. 결국은 국민국가의 신민을 통합하는 하나의 사회적 기제였다. 이런 국가교회에서는 개인의 사적인 신앙은 허용되기는 했지만 공직인 영역에서의 불이익은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교회의 해체는 피할 수 없는 투쟁대상이었다. 그래서 현대 대부분 서구국가들은 종교자유의 보장을 위해 교회와 국가를 철저하게 분리시켜 나가게 된다. 이 같이 정교분리 원칙은 국가교회의 폐해에서 벗어나고자 유럽에서 출발을 했지만 그 곳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국가교회로부터 신앙인의 피난처였던 미국에서 이상적인 형태로 결실을 맺는다. 현재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이 정교분리는 서구의 긴 역사적 투쟁과정에서 보면 아주 최근의 일임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교회와 국가 관계를 통해 살펴본 서구의 정교관계와 특성을 우리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서구 근대성이 부족한 비서구 국가에서 정교분리제도를 무조건 도입하게 되면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교분리를 도입하기 전에 반드시 전통적인 종교의 도움 없이 근대국가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세속주의적인 근대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서구 유럽에서도 세속적 근대국가가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기독교적 문회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비서구국가로서는 최초로 근대화되었다고 하는 일본도 천황제국가의 유제가 남아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것을 고려한다면 정교분리원칙을 실행하는 데는 과거 문화전통과 전통종교의 뒷받침 없이 세속적인 이데올로기만으로 국민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서구의 정교분리는 기독교라는 단일 문화전통에서 형성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교파문제나 이단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나 문화전통이 전혀 다른 사회나 종교에 대해서는 공존해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서구에서는 문화전통이 다른 종교는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왔을 뿐이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나 정교분리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협소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 교파에 대해 종교적 관용을 베풀어 준 것도 30년 종교전쟁을 치루고 난 이후의 일이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모델의 정교분리만으로 다종교 상황에 있는 현대국가들이 그 해결책을 찾는다면 반드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정교분리의 모범국가가 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유럽의 종교문화 전통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가 없었던 신천지에 새로운 종교이상을 백지에 그린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노르웨이의 백색 테러 사건이나 무슬림의 거리기도를 금지시킨 프랑스의 조치를 보면, 서구에서도 인종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고 세계화와 다종교시대에 맞는 보다 폭 넓은 정교관계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셋째, 정교분리제도는 무엇보다도 서구의 교회와 국가 간의 역사적 전개에 따른 서구적인 산물이다. 정교분리 원칙에도 어떤 형태든 기독교적 요소와 그런 배타적 성향이 많이 깔려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이외 종교에 대해서는 그 원칙을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 실현운동은 지상의 타락한 국가와 대비해 이상적인 또 하나의 국가를 눈앞에 제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로의 교회와 이 세상의 국가를 끊임없이 날카롭게 대립시킨다. 그 결과 교회와 국가가 항시 긴장관계에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그것을 이주 정상적인 관계로 간주한다. 그런 양자의 긴장관계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창조적 긴장관계를 조성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성공사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그런 엄격한 긴장관계가 다른 종교나 문화전통에서도 가능하며 또 이상적일 수 있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정교분리의 기반은 하나님의 백성과 같은 분명한 집단 정체성을 가진 신앙대중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한 신앙대중이 없는 동양종교에게 정교의 엄격한 긴장관계를 전제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보다 성속이 분명할 뿐 아니라 집단의 정체성도 분명하다. 그래서 종교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에 세속의 국가와 갈등관계가 자주 발생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현대 세속사회에 와서는 그런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교가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집단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근대 이전의 동양종교들은 세속 국가와 관계를 심한 탄압을 받지 않는 한 구태여 긴장관계까지 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도리어 국가와 협조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더 많았다. 설령 그들이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은 승려와 신도 전체집단이 아니고 일부 승려집단과 같은 전문가집단에 한정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같이 종교는 있으되 집단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종교문화 전통을 가진 한국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는 양자 긴장을 조장하는 엄격한 정교분리보다 전통 민족문화 같은 일부 영역에서는 양자의 협조를 기반으로 하는 느슨한 정교분리가 우리의 종교현실에 맞는 것이 아닌가. 특히, 국민을 통합하는 천황제와 같은 국가상징도 없고, 민족주의와 같은 세속적 통합이데올로기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기독교적 성향이 강한 정교분리제도의 운용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seyoyun@yahoo.co.kr


주요 논문으로〈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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