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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태, 프레이저, <황금가지1,2>, 을유문화사, 2005, 872쪽, 774쪽(역)

책소개

『황금가지』는 신화에 관한 방대한 자료의 분석으로 인류의 정신 발전을 기술한 인류학의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인간정신은 본질적으로 유사한 것이며, 여러 민족의 유사한 사례들은 비교가 가능하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근거하여, 모든 사회는 진보와 개선의 동일한 발전 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그의 주술->종교->과학이라는 진화론적 도식은 이런 전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저자인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가 자신의 대작 『황금가지』를 한 권으로 요약하여 출판한 축약본의 한국어판 역주본이다. 저자 스스로 편집하여 원작의 이도에 가장 근접해 있으며,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풍부한 역주와 도판이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프레이저의 다른 작품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프레이저 연보를 첨부했다.

프레이저의 비교방법론은 과학적이지 않으며,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많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하지만 『황금가지』는 인류학이나 종교학에서 신화론과 의례론을 촉발시키고, 서구 교양인들에게 기독교의 독단에 대한 자성을 불러일으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특히 끊임없이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저자

프레이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고전 인문학자로 글래스고와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는 1907~08년에 리버풀 대학 교수를 역임한 것 외에는 죽을 때까지 줄곧 케임브리지의 연구원으로 재임했다. 프레이저는 원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했으나 타일러의 『원시 문화』를 읽은 뒤로 사회 인류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1896년 엘리자베스 그로브와 결혼했으며, 그녀는 평생 프레이저의 저술과 연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프레이저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 모든 저술을 논문과 자료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온실의 인류학자'라 비판 받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문학과 심리학, 사회 과학 및 예술 각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미친 영향은 심대하다. 다른 저작으로는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묘사』, 『사회 인류학의 영역』, 『토테미즘과 족외혼』, 『불멸성의 신앙과 죽은 자의 숭배』, 『구약 성서 속의 민속학』 등이 있다.

역자

박규태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도쿄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일본 종교사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 『종교읽기의 자유』(공저),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이 있고, 역서로 『종교의 의미』, 『일본신도사』 등 다수가 있다.

목차

제1권

역주자 서문
저자 서문
일러두기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연보

제1장 숲의 왕
제2장 사제왕
제3장 공감주술
제4장 주술과 종교
제5장 날씨종교
제6장 주술사=왕
제7장 화육한 인신
제8장 부분적 자연왕
제9장 나무숭배
제10장 근대 유럽과 나무숭배
제11장 식물과 섹스
제12장 신성한 결혼
제13장 로마와 알바의 왕들
제14장 고대 라티움의 왕국 계승
제15장 떡갈나무 숭배
제16장 디아누스와 디아나
제17장 왕의 책무
제18장 영혼의 위험
제19장 행위 터부
제20장 인물 터부
제21장 사물 터부
제22장 언어 터부
제23장 우리가 원시인에게 빚진 것
제24장 신성왕의 살해
제25장 임시왕
제26장 왕자의 희생
제27장 영혼의 계승
제28장 나무정령의 살해
제29장 아도니스 신화
제30장 시리아의 아도니스
제31장 키프로스의 아도니스
제32장 아도니스 의례
제33장 아도니스의 정원
제34장 아티스의 신화와 의례
제35장 식물신으로서의 아티스
제36장 아티스를 표상하는 인간
제37장 서양 속의 동양종교

제2권

역주자 서문
저자 서문
일러두기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연보

제38장 오시리스 신화
제39장 오시리스 의례
제40장 오시리스의 성격
제41장 이시스
제42장 오시리스와 태양
제43장 디오니소스
제44장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제45장 북구의 '곡물의 어머니'와 '곡물의 아가씨'
제46장 세계의 '곡물의 어머니'
제47장 리티에르세스
제48장 동물로서의 곡물정령
제49장 동물로서의 고대 식물신
제50장 신을 먹는 관습
제51장 육식의 공감주술
제52장 신성한 동물의 살해
제53장 사냥꾼에 의한 야생동물의 회유
제54장 성례전적 동물 살해의 유형
제55장 재앙의 전이
제56장 재앙의 공적 추방
제57장 공적 희생양
제58장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간 희생양
제59장 멕시코에서의 신의 살해
제60장 하늘과 땅 사이
제61장 발데르 신화
제62장 유럽의 불축제
제63장 불축제의 해석
제64장 인간 불태우기
제65장 발데르와 겨우살이
제66장 민간전승과 외재적 영혼
제67장 민속과 외재적 영혼
제68장 황금가지
제69장 네미여 안녕

출판사리뷰

1.『황금가지』를 읽기에 앞서

'황금가지'는 무엇인가?
고대 아리아인의 수목숭배 중에서도 주술 종교적인 의미에서 특히 중요시된 떡갈나무의 '겨우살이'에서 유래한 '황금가지'라는 말을 따서 책 제목으로 삼았다.

'겨우살이'는 무엇인가?
다른 나무에 기생하며 스스로 광합성하여 엽록소를 만드는 반기생식물로 사계절 푸른 잎을 지닌다. 열매를 먹은 새의 변을 통해 번식된다.

겨우살이가 황금가지라 불리게 된 연유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 멸망 뒤에 백성을 이끌고 방랑하다가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 로마를 세운 아에네이아스의 모험을 서사시로 엮었다. 이 『에네이드』에서 아에네이아스는 죽은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나기 위해 무녀의 도움을 받는다. 무녀는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옥의 문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가 바로 황금가지라고 가르쳐 준다. 프레이저는 여기서 착안 『황금가지』에서 다음과 같은 추론을 펼친다.

"비둘기 두 마리가 아이네아스를 황금가지가 있는 저 을씨년스럽고 깊은 골짜기로 안내했을 때 어느 나무 위에 내려앉았다고 적고 있다. '거기서 한 줄기 황금빛 섬광이 명멸하며 빛나고 있었다. 엄동설한의 숲 속에 기생식물인 겨우살이가 싱싱한 초록색 잎들로 무성했고 줄기마다 황금빛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그늘진 떡갈나무 위에 달린 이파리의 황금처럼 보이기도 했고,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바스락거리며 나부끼는 황금 이파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명백히 떡갈나무 위에 자라는 황금가지를 묘사하면서 그것을 겨우살이와 비교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황금가지란 곧 시와 민간신앙의 안개 사이로 비쳐진 겨우살이에 불과하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 본문 68장 황금가지 중에서


2. 『황금가지』는 어떤 책인가?
"북이탈리아의 네미 호수 옆에 '디아나의 숲'이라 부르는 신성한 숲과 성소가 있었다. 그 숲 속에는 황금색 가지를 지닌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칼을 든 어떤 남자가 밤낮없이 그 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사제이자 동시에 살인자였다. 그는 나무를 지키던 전임자를 살해하고 황금가지를 꺾은 후 비로소 사제가 될 수 있었는데, 그 또한 언젠가는 다른 자의 손에 의해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이 사제는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기묘한 장면의 서술로 시작되는 본서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대작 『황금가지』 제3판 전12권(1906∼1915)을 1922년에 저자 자신이 한 권으로 요약하여 맥밀란 출판사에서 간행한 축약본 『황금가지』의 한국어판 역주본이다. 프레이저는 이 책에서 인류의 종교와 성생활, 다양한 제식과 축제를 다루었다. 이 책은 민담과 주술, 종교를 비교 연구하면서 이교도의 원시 문화와 기독교 신앙을 평행선상에 두고 보았다. 고대인의 삶은 단순하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뿌리친 『황금가지』는 원시 인류가 복잡한 마술과 금기, 미신과 얽혀 있었음을 보여준다. 프레이저는 이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미개 상태로부터 문명으로 진화했는지, 어떻게 그의 운명을 개척하고 잔인한 풍습으로부터 벗어나 변치 않는 도덕과 윤리, 종교적인 가치를 얻게 되었는지 말해준다. 『황금가지』의 독창성과 포괄성이 종교 인류학에 미친 영향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생물학 분야에 미친 영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여파는 심리학과 문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고루 미쳤다. 본서는 69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심 내용을 제3판의 구성에 따라 일곱 단락으로 나누어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1장에서 제17장까지는 주술의 기법과 왕권의 진화를 논하고 있다. 프레이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주술론에서 그는 '인간의 복지를 위해 자연의 힘을 지배하려는 시도'로서 주술을 규정하는 한편, 주술의 두 가지 상이한 사고 원리인 유사의 법칙(동종주술 혹은 모방주술)과 접촉의 법칙(감염주술 혹은 접촉주술)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이탈리아 네미 숲을 무대로 하여 전개되는 황금가지의 전설에 주목하면서 거기에 등장하는 숲의 사제를 숲의 왕이자 나무정령의 화신과 동일시하면서 주술로써 풍요를 관장하는 주술사로 해석한다. 이는 곧 왕권의 기원을 주술사에서 찾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2) 제18장에서 제23장까지는 주로 터부론 및 영혼론을 다루고 있다. 먼저 터부의 대상이 되는 행위, 인물, 사물, 언어 등을 다룬 후, 사제왕에게는 특히 엄격한 터부가 부과되었는데 이는 그의 생명 원리인 영혼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3) 제24장에서 제28장까지는 '살해당하는 신'의 모티프가 중심이다. 여기서 프레이저는 "네미 숲의 왕이 왜 규칙적으로 살해되어야 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면서, 이는 왕의 쇠약은 곧 해당 공동체의 쇠약을 초래한다는 관념 때문이었다고 해석하면서 왕의 죽음을 살해당하는 신의 이미지와 연결시켜 고찰하고 있다.
(4) 제29장에서 제44장까지는 주로 아도니스, 아티스, 오시리스 등에 관한 동양종교의 신화를 다루면서 농경주술에 있어 죽음과 재생의 의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즉 이 신화에서 신성하기 때문에 살해당했다가 다시 소생하는 신들은 매년 반복되는 식물세계의 죽음과 재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5) 제45장에서 제54장까지는 식물세계에 있어 죽음과 재생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각 문화권의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6) 제55장에서 제60장까지는 이른바 '속죄양'의 주제를 중심으로, 병들거나 쇠약해진 왕을 추방하거나 살해하는 관습은 사회 전체의 죄악을 그 왕에게 전이함으로써 공동체의 존속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7) 제61장에서 제69장까지는 발데르 신화 및 유럽 불축제와 외재혼의 문제를 다루면서, 궁극적으로 황금가지의 의미를 규명하고 있다. 여기서 프레이저는 겨우살이에 의해 죽은 북유럽의 신 발데르와 네미 숲 사제를 대비하면서, 황금가지(겨우살이) 안에 신적 생명 즉 사제왕의 생명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신성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황금가지』에서 프레이저가 전제로 깔고 있는 방법론과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프레이저에 의하면, 인간 정신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며 따라서 여러 문화권의 유사한 사례들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프레이저는 당대의 생물진화론(다윈) 및 사회진화론(스펜서)에 입각하여, 모든 사회는 동일한 발전 단계를 거치며 그 발전 방향은 필연적으로 진보와 개선의 방향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의 주술→종교→과학이라는 진화론적 도식은 바로 이런 전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3. 프레이저에 대한 비판
이런 전제는 곧바로 프레이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즉 프레이저의 비교방법론은 구체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으며 유사성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많다는 점, 그리고 입증하기 어려운 진화론적 도식과 심리학적 유추에 입각함으로써 일관성이 없고 피상적이며 낭만적인 서술로 흐르기 십상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그 밖에 다른 비판들도 많다. 가령 본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민족지학적 사례들은 프레이저 자신이 직접 현장 조사한 것이 아니라 주로 선교사나 식민지 관리자 혹은 여행가들에게서 수집한 자료들이므로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말하자면 프레이저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의 인류학자였다는 말이다. 또한 '미개인'이나 '미신'이라는 용어를 남발한다든지 혹은 주술을 오류라고 단정짓는 프레이저의 태도는 중립성을 강조하고 섣부른 가치판단을 경계하는 현대 학문의 관점에서 볼 때는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들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황금가지』가 갖는 의의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만큼 본서는 인간정신이 산출한 고전적인 대작의 하나로 꼽혀 왔던 것이다. 본서는 직접적으로 인류학이나 종교학에서 신화론과 의례론을 촉발시켰으며, 서구 교양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독단성에 대한 자성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 하면, 특히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본서가 갖는 매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본서의 매력은 무엇보다 인간과 세계의 복마전 같은 수수께끼 앞에서 결코 물음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 프레이저의 인간미 그 자체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60년 동안 평균 하루에 12시간 이상 연구에 몰두한 책벌레였고,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자였고, 개인적으로는 지독하게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논쟁에 끼어들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신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들어도 흥분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는 세상사에는 지극히 어설프고 서투른 상아탑의 학자였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묻는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강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전사였다. 본서는 그런 신뢰와 희망과 호기심의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4. 출간 의의 (판본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황금가지』 축약본은 세 종류이다. 프레이저 자신이 축약한 맥밀란판 『황금가지』(1922), 프레이저 연구자인 로버트 프레이저가 축약한 옥스퍼드판 『황금가지』(1994), 메리 더글러스가 서문을 쓰고 세이빈 맥코맥이 축약한 도설판 『황금가지』(1978)가 그것이다. 맥밀란판은 을유문화사(1978)와 삼성출판사(1991)에서, 옥스퍼드판은 한겨레신문사(2003)에서, 그리고 도설판은 까치(1995)에서 각각 번역본이 나와 있다.
그 중 옥스퍼드판은 맥밀란판에 누락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등의 논쟁적인 부분이 복원되어 있으며, 편자의 각주가 첨부되어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한편 도설판은 맥밀란판과 옥스퍼드판의 절반 분량인데다 관련 그림이 많이 실려 있어 보다 대중적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본 맥밀란판의 강점은 무엇보다 프레이저 자신이 편집한 것이므로 『황금가지』의 원래 의도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맥밀란판을 대본으로 삼은 본서의 재번역 작업은 이 세 가지 장점을 한데 아울러 제시함으로써 부족하나마 독자들의 『황금가지』 이해에 기여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위해 가능한 한 풍부하게 역주와 도판을 삽입하는 한편, 프레이저의 다른 저작물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프레이저 연보를 첨부하여 참고가 되도록 했다.

5.『황금가지』가 미친 영향 - 문학과 영화에 대해

『황금가지』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문학작품은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1871~1948)의 『황무지』(The Waste Land)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와 함께 나란히 1922년에 발표되어 20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 시이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황무지』는 성적으로 타락해 삶도 죽음도 아닌 상태를 이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식물의 생장과 풍요 지식의 기원에 빗대어 설명한다. 엘리엇은 이 유명한 시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와 제시 웨스턴의 『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를 운문으로 옮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명이라는 또 하나의 야만에 항거하는 메시지를 담은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은 원래 폴란드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조세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 (The Heart of Darkness)의 패러디이다. 바로 벨기에 식민 치하의 콩고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착취와 인간성 상실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이를 다시 베트남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바꾸었다. 외형이 콘래드의 소설이라면 내형은 또 다른 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무공 훈장을 여럿 탄 엘리트 군인이던 커츠(말론 브랜도)는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데리고 이곳에 와 원주민을 다스리며, 은둔자요, 왕으로 살고 있다. 자기를 찾아온 윌러드(마틴 쉰)가 자객임을 감지하고서도 커츠는 그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놓아둔다. 윌러드는 커츠의 책상에서 두 권의 책을 발견한다. 카메라가 책을 비추는 이 짧은 순간에 영화가 기대고 있는 엄청난 배경이 드러난다. 『황금가지』와 제시 웨스턴의 『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 (From Ritual to Romance)가 그것이다. 이 두 책을 이어주는 고리는 바로 엘리엇의 『황무지』이다. 커츠는 자신이 속한 문명의 '황무지'를 떠나 밀림의 오지로 들어갔고, 윌러드에 의해 목이 잘린다. 왕이 성적(性的)으로 쇠약해지거나 타락하면 대지가 황폐해지고 불모가 되므로 새로운 왕이 나타나 그를 대신해야 한다는 황금가지의 첫 이야기 네미 호의 사제와 같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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