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속의 드라큘라와 버려진 성경책 news letter No.844 2024/8/20 오랜 기억이 되살아난 건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2년여 만에 만난 아들과 사진첩을 함께 보다가 나의 어린 시절 교회 주일학교 사진을 발견했다. 국민학교 4학년, 주일학교 분반 야유회 단체 사진이었다. 얼굴만 기억나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김순종 선생님이 계셨다. 다른 모든 기억은 희미하지만, 김순종 선생님은 한 권의 성경책과 함께 또렷이 기억난다. 사연은 이렇다. 1982년 여름, 나는 어머니와 함께 동네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내가 먼저 보자고 했는지 어머니께서 보자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의 일이 끝난 후 어두워진 저녁 무렵 영화관을 찾았다. 드라큘라를 소재로 한 한국 영화였다. 잊히지..
헝가리 가톨릭교회의 어제와 오늘 news letter No.843 2024/8/13 헝가리의 말썽 많은 수상 오르반 빅토르는 2021년 9월 헝가리를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과의 만남에서 “기독교 국가인 헝가리가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교황에게 청했다. 헝가리가 시리아 난민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헝가리의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신교 신자인 오르반 수상의 이러한 언급은 헝가리에서 가톨릭(기독교)이 갖는 위상을 잘 보여준다. 가톨릭은 헝가리의 국가적 종교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헝가리는 유럽에서 독특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민족의 기원은 우랄산맥 근처의 아시아 지역이다. 스스로를 마자르족이라고 부르는 헝가리 민족은 이곳으로부터 수 ..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에 관한 단상: 라이트룸 서울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과 더 문워커스 전을 관람하고 news letter No.842 2024/8/6 올해 들어 ‘라이트룸 서울’이라는 전시관을 두 번 다녀왔다. 라이트룸(Lightroom)은 “몰입형 예술 체험”과 “아티스트가 이끄는 스토리텔링”을 표방하는 대형 전시관으로, 런던과 서울 두 곳에 있다. (다른 나라에도 더 생길 것으로 전망하지만, 일단 현재까지는 두 곳이다). 런던관은 작년 6월에 개관하였고, 서울관은 한 국내 전시기획사의 독점 라이센스 계약으로 작년 11월에 개관하였다. 두 전시관의 입지는 사뭇 달라서, 런던관은 런던 시내 중심부 킹스크로스 구역에 있고 (킹스크로스역에서 도보 8분), 서울관은 서울 동쪽 끝 한강변 산기슭에..
박물관의 종교적 유물들: 새로운 의미화, 혹은 ‘세속화profanation’의 가능성 news letter No.841 2024/7/30 전 세계 어느 박물관을 가든 거의 대부분 우리는 과거 실제 종교 의례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고대의 무덤 흔적, 관, 부장품, 봉헌물로부터 부적의 역할을 한 다양한 물건들, 기도 용품들, 나아가 여러 종교 건축물의 제단, 벽, 천장을 장식했던 그림들, 조각들, 이 모든 것들은 오늘날 박물관의 주요 수집품이자 전시물이다. 한때 종교적 의미로 충만했던 이들은 박물관이라는 장소에 놓이면서 역사적, 고고학적, 인류학적, 예술적 유산이자 자료로 재의미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재의미화가 곧바로 종교적 맥락의 상실을 의미하진 않는다. 상반기 서점가 베스트셀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