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카슨의 시에서 추스르는 마음 news letter No.798 2023/10/3 앤 카슨의 시를 읽다가 오래전, 그러니까 4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어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날,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전파상 텔레비전의 뉴스 방송을 통해서 슬쩍 알게 되었던 그 날. 그렇게 죽음의 광폭함을 내게 알리는 신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한동안 말문을 닫고 마음의 굴을 파고들며 쉬지 않고 신에게 물음을 던졌던 그때가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출신)를 대면하기 위해 이동하는 축제 기간 한가운데서 앤 카슨은 내게 이렇게 읊조린다. 신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이삭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었다. 이삭은 눈먼 자라고도 불렀다. 마음의 어두운 하늘 속에서 이삭은 가장자리에 ..
“멀고도 가까운 것, 지옥” news letter No.720 2022/3/8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 가토 슈이치(加藤周一)는 오늘날의 지옥은 전쟁이고, 그 전쟁은 멀고도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한다(가토 슈이치,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 그는 자신이 겪은 태평양전쟁을 떠올리면서, 전쟁이란 모름지기 상상과 일상의 밖에서 배회하다가 우리를 급습하여 삶을 파괴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참상을 압도할 만한 핵전쟁이 동아시아에서 벌어질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면서 일본사회에서 반전반핵평화운동을 전개했다. 그가 볼 때, 전쟁은 인간의 삶에 상존한다. 그렇지만 전쟁의 상존성은 전쟁이 인간의 상상과 일상의 바깥에 위치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폭력)이 인간(국가/집단)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성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