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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사에서 본‘한국적인 기독교’

2011.4.12


1860년 동학발생 이후 한국에서 발생한 메시아 운동들은 가장 역동적인 종교현상의 하나로 꼽힌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이들 메시아 운동은 기존 종교계에 변화와 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기독교사만이 아니라 한국정신문화사 또는 한국종교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만 현재 개신교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는 이들을 기독교 정통에 대립되는 이단차원의 평가를 넘어 사이비종교로까지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이단 차원에서의 판단은 정통신앙을 믿는 그들의 자유이지만 사이비종교라는 규정은 그들의 판단할 수 있는 몫이 아니다. 사이비종교라는 것은 정통 기독교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은 물론 한국의 종교로서도 아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과거와 같이 기독교가 종교일반의 중심모델이 되지 않는 한 이단 종교와 사이비종교는 분명히 구별될 필요가 있다.

종교학자의 눈에는 기독교로서는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메시아운동으로 정착된 ‘한국적인 기독교’들이 한국의 종교로서는 나름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종교심성과 한국의 문화상황을 잘 반영한 한국의 기독교적인 종교이고, 한국 종교문화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성 기독교가 이들을 무조건 배제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최대 약점 즉, 한국적인 종교심성과 종교문화의 전통을 보완하는 반면교사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메시아운동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할 사항이 있다. 전 세계 종교적인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기성 기독교도 이 같은 메시아 운동 또는 천년왕국운동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예수는 기존 종교인 유대교의 제사장으로부터 반체제인사로 고발당해 십자가에 처형당할 정도로 기존의 종교계와 사회로부터 격렬한 비난과 저항을 받았다. 그럼에도 초기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죄의 회개와 임재된 하나님의 나라,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 기대 등을 지속적으로 증거하였다. 그러나 예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은 다시 오지 않았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제국 이후에는 지상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하게 된다. 이와 같은 초기 기독교 형성과정이 바로 메시아운동 전개과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되는 과정이다.

이 같은 메시아운동은 기존의 사회와 기성종교로부터 이단이나 사교, 사이비종교로 간주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나아가 현실 종교와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심히 탄압을 받는다. 그러나 앞서 기독교 발생과정에서 본 바와 같이 메시아운동은 그러한 저항과 비판을 도리어 자신의 종교운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많은 메시아 운동들이 자기 정당성을 제대로 평가받기란 정말 쉽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세우기도 전에 즉, 새로운 종파나 신종교로 안착하기도 전에 난파당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물론 기성종교의 거친 파고를 넘어 기존사회에 잘 정착하여 대형종교로 발전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 나운몽의 용문산 기도원 등이 대표적인 시례로 꼽힌다.

한편, 한국의 메시아 운동은 신앙형식상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후천개벽과 지상천국의 대망, 그리고 정감록과 같은 전통적인 비결서에 근거한 ‘전통적인 메시아운동’이고, 하나는 종말과 천년왕국의 대망, 그리고 요한 게시록과 같은 성서를 근거로 한 ‘기독교계 메시아운동’이다. 전자의 메시아로서는 미륵과 진인 등이 출현하고 지상천국이나 용화세계을 대망하며, 후자의 메시아로서는 재림예수가 등장하여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 기독교계 메시아운동은 이전의 전통적인 메시아운동과는 좀 다른 종교적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1884년 개신교가 이 땅에 전래된 후 10년 지나 1894년 동학농민 전쟁이 발발한다. 봉건적 잔재 청산과 근대화의 과제를 달성하려는 동학농민전쟁의 실패로 인해 신앙대중들은 큰 좌절을 겪는다. 이후 한국에서는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위해 개신교의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하여 개항기 한국사회에서의 개신교는 문명종교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지만 당시 한국 개신교는 미국 선교본부의 선교정책에 따라 운영되는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었고, 한국 개신교는 한국 전통문화를 스스로 부정하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초기 개신교가 한국 전통문화 또는 신앙전통과의 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생산적인 대화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개신교가 이 땅에 유입된 지 20년이 훨씬 지나서야 한국 전통문화와의 첫 대화가 있었으나, 그것은 기독교신 이름으로 행한 비공식적인 성향을 띠었다. 1907년 평양 대부흥회가 그것이다. 이 부흥회를 통해 개신교는 많은 교인 수를 확보했지만 개신교 신앙이 한국인의 심성에 정착될 수는 없었다.

이런 개신교는 1920-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국인의 심성에 닿기 시작한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거족적으로 저항한 1919년 3.1운동 실패 이후에 한국 개신교는 전통문화와의 첫 실질적인 대면이 있었다. 이때부터 이 땅에서 개신교 신비주의 운동과 한국적인 메시아운동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한국 개신교사에서는 이 시기를 소종파 또는 신령파 시대라고 부른다. 전자는 민족교회나 자주교회운동으로서 선교사의 부당한 위계에 도전하는 성격을 가졌다면, 후자는 한국문화와의 대화를 통한 개신교의 한국화 또는 토착화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자 모두 개신교의 서구적인 교계제도와 서구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삶과 신앙, 그에 따른 새로운 신학적 해석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선교사의 신앙 또는 서구의 신앙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통 계시 또는 자신의 신앙체험을 통해서 얻은 사명을 선포하며 한국인의 삶에 맞는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후 1970년 중반 민중신학과 민중교회가 그러한 성향을 조금 띠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 메시아운동을 계승했다고 보기 힘들다. 그것은 민중적인 것이 아니라 엘리트적 것이고, 종교문화적 것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메시아 운동에서 발생한 기독교계 신종교들은 신앙형식만 기독교일 뿐 신앙내용에는 ‘전통적인 메시아 운동’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비록 개신교 신앙이라는 신앙형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전의 전통적인 민족종교들과도 문제의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구세주 출현 기대와 지상천국의 건설, 도성덕립(道成德立)의 완성과 한민족중심주의 등과 같은 전통적인 민족종교의 지향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자신이 메시아라는 객관적인 증거를 정감록과 같은 전통적인 비결 예언서에 가탁하거나 성서를 하나의 비결서로 보아 증거하는 형태도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이들 기독교계 신종교들은 기독교신앙 전통을 지키는 종파라기보다는 한국인의 삶과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민족종교에 더 가까운 새로운 ‘한국적인 기독교’라고 볼 수 있다. 그 신앙 주제들도 역시 그렇다. 역의 논리, 후천과 개벽, 해원과 상생, 혈통과 가정, 영육동시구원, 풍수와 피장지 등은 전통적이든 기독교적이든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신앙주제들이다. 이들의 신앙형식과 내용을 두고 평가해 본다면, 정통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들을 이단종교로, 종교학자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적인 기독교’로 서로 상반되는 평가가 가능하다.

어떻든 한국의 기성기독교의 정통-비정통의 이분법적인 경계 짓기 때문에 ‘한국적인 기독교’는 자기의 땅인 한국사회에서 험난한 행로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만 이 피해를 본 것이 아니고, 이로 인해 한국의 기성기독교도 많은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기성 기독교가 ‘한국적인 기독교’를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정립하려다 보니 한국 전통문화와 한국인의 종교심성이 자연히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개신교는 표면적으로는 양적 성장에 크게 성공을 거두었지만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을 짓고 만다. 그 결과 한국의 기독교는 현재까지 종교문화적인 역할 없이 신앙대중에게 구원이라는 상품을 즉자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잘 포장된 ‘소비종교’로만 자리하게 된 것이다.

한국종교사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기성 기독교는 해방이후 양적 성장에 도취되어 한국 전통문화 또는 신앙전통과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 한국적인 정신과 문화가 부족한 앙꼬 없는 찐빵이 되고 말았으며, 서구적 신앙과 신학을 추종할 수밖에 없는 자기 한계에서만 맴도는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현재 개신교의 이와 같은 상황을 ‘한국적인 기독교’의 문제의식까지 모두 배제한 신앙 결과물이라고 필자는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사에서는 ‘한국적인 기독교’의 흔적을 결코 찾아볼 수 없다. 현대 문화다원주의 시대를 맞아 종교의 개념마저 재검토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의 기독교도 새로운 자기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적인 기독교’를 타자화하여 자신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들 ‘한국적인 기독교’를 다시 평가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미래 통일한국의 종교문화를 고려한다면, 이들 ‘한국적인 기독교’는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그리고 우리사회 아주 중요한 기독교적인 정신문화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많다.

* 이 글은 종교문화비평 19호 서평 <'한국적인 그리스도교'를 메시아운동을 통해 복원하다>를 재정리 한 것이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seyoyun@yahoo.co.kr


주요 논문으로〈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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