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123호-추석 단상(진철승)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26. 16:13

추석 단상

2010.9.14


세시풍속은 정월, 이월연등, 삼월삼짇, 사월초파일, 오월단오, 유월유두, 칠월 칠석과 백중, 팔월 추석, 구월귀일, 시월상달, 동지와 납일 등에 주로 행해졌다. 그러나 이는 학자들이 주로 조선 후기 민간의 풍속을 월별로 나열한 것이고, 시대마다 지역마다 풍속이 각기 달랐다. 추석의 경우도 매 역사 시기마다 그 위상이 매우 달랐다. 오늘날의 추석차례 풍속은 19세기 중후반에 와서야 정착된 것이다. 또한 밭농사 중심인 이북에서는 추석보다 단오가 더 큰 명절이었다. 영남 등 일부 추수가 늦는 지역에서는 추석이 아니라 중양절(9월 9일)에 차례 천신을 올리기도 했다.

<<추석이란 명칭의 문헌상 기원은 예기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추석이란 명칭이 보이지 않고 음력 8월 15일을 중추(仲秋), 월석(月夕)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명칭을 합하여 속명으로 추석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추석이란 명칭은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았고, 각종 문헌의 속절(俗節) 기사에도 주로 중추가 쓰였다. 추석은 예전에 국가의 공식 사전체제에 속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공식 명절이 아니다. 오늘날 추석은 공식적으로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그냥 쉬는 날일 뿐이다. 단지 1962년 이후 일제 총독부의 의례준칙의 변형인 ‘(건전)가정의례준칙’에 설과 더불어 차례를 지내는 날로 지정되었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않고 간소하게 지내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이 가정의례준칙도 현재는 폐기되었다. 추석은 예나 지금이나 그냥 속인들의 명절일 뿐이다. 참고로 현재 공휴일은 일요일, 국경일, 1월 1일, 설(전날, 설날, 설날 다음날), 식목일,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현충일, 추석(전날, 추석, 추석 다음날), 기독탄신일, 기타 정부에서 수시 지정하는 날 등이다(1998년 개정령).

추석 때마다 그 기원으로 어김없이 신라 두레길쌈, 가배, 한가위, 회소곡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 조상 제사와 계절 천신(薦新)과 상관이 없다. 길쌈은 겨울을 나기 위한 고대의 직조(織造) 풍속일 뿐이다. 고려 시기에도 추석은 9대 속절에 속했고, 관련 풍속에 대해 약간의 기록이 전한다. 고려조에는 조상 제사나 묘제(墓祭)의 관념이 약했고, 따라서 조상에 대한 햇곡식 천신은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추석이 그나마 조상에 대한 천신의 날로 부상한 것은 조 조 들어와서고, 그도 16세기 후반 이후 신진사대부들이 향촌권력을 장악하고, 주자가례에 따라 가례 규범을 정비하면서부터다.

이이(李珥, 1536-1584)는 격몽요결(擊蒙要訣) 제례장(祭禮章)에서 속절을 정월 15일, 3월 3일, 5월 5일, 6월 15일, 7월 7일, 8월 15일, 9월 9일 및 납일로 보고, 이와는 별도로 사명일(四名日, 정조, 한식, 단오, 추석)에 묘제를 행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사명일(또는 四節日)이라고 하여 사당 묘제(廟祭)를 지내는 시제(時祭)와 구별하여 묘제(墓祭)를 지내는 날로 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한식과 중양절(9월9일)에 주로 벌초와 더불어 묘제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7세기 이후 가묘(家廟) 사당을 모신 사대부가에서는 춘하추동 각 중월(仲月)에 지내는 사시제(四時祭)와 4대조까지의 기제(忌祭) 및 각 명일에 지내는 묘제가 큰 부담이었다. 이에 조선 후기로 가면서 사시제와 묘제는 한식과 중양절(더 후기에는 추석)로 축소되었고, 이는 일반 민간에도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중후기에 이르면 추석에 “하천민이나 품팔이, 거지 할 것 없이 모두 부모 묘에 가서 제를 지낸다”(‘隸傭皆得上父母丘墓’, 열양세시기 八月中秋條 참조)”라고 할 정도로까지 보편화되었다. 오늘날 모두가 지내는 추석의 벌초와 제사 및 묘제는 19세기 후반에 일반화된 것이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풍속이 아닌 것이다.

조선후기 이후 최근 산업화와 농촌공동체 붕괴 이전까지의 추석 풍속은 매우 다양하였다. 벌초와 차례의 조상모시기 외에도 각 단위 공동체에서 행해지던 풍속은 각종 문집이나 세시기 및 최근의 민속현장 보고서 등에 잘 나타나 있으므로 약하고, 추석 전후 천신의 흐름을 살펴보겠다.

추석 전 8월에는 벌초를 하고 당일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혹은 묘제)를 한다. 이는 각 가정의 조상모시기이고, 무당들은 추석맞이 천신굿을 행한다. 무당들은 봄(꽃)맞이굿(진적굿)과 추석천신을 크게 치는데, 이는 자신들이 모시는 신격들에 대한 봄가을 시절 천신굿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추석 천신굿은 거의 사라졌다. 중양절에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 차례는 남성 중심이다. 이에 각 가정의 대모(垈母)님네(아낙)는 10월 상달에 성주 등의 가정 신격에 고사를 지낸다. 때로 무당을 불러 큰 굿을 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마을에서는 10월 상달 굿을 공동으로 지낸다. 이를 고대의 제천의례의 유산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역사를 무시하는 졸견이다. 18-19세기 마을 공동체(民村) 형성과 농업생산력 증대, 민인들의 성장에 기초하여 동제(洞祭)가 크게 활성화, 확산된 결과일 뿐이다. 각 가정의 차례(남성)-10월 고사(여성)-상달 동제(마을 공동체)-무당 천신굿의 흐름 속에서 추석의 위상을 살펴보는 것은 가을 천신의 전체상을 살펴보는 데 유용하리라 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어정 칠월 건들 팔월”

풍족한 수확의 계절이나 올해 추석은 예년같지가 않다. 가을장마(秋霖)는 농부들을 애닯게 하고, 나랏님들은 백성들을 슬프게 한다. 그럼에도 귀성, 역귀성의 행렬은 도로를 메울 것이다. 설과 추석은 이제 마지막 남은 세시명절이다. 일제의 탄압과 의례준칙의 강제에도 불구하고 설과 추석은 살아남았다. 설과 추석은 풍속의 변화와 지속을 살펴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자료라 하겠다.

환한 대보름 달 구경하며 모두들 자그마한 소원 빌어보시길..............

진철승_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원장 jcs95@hanmail.ne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