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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현상학으로의 회귀
2009.10.6
우리는 추석을 ‘결실의 계절’이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조상의 묘를 찾고 일가친척들을 만나 행복한 담소와 맛난 음식을 나누며 꿈과 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현재의 내가 있음은 주변의 많은 은사님들, 지인들, 동료들, 가족들의 격려와 배려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저는 추석에 감사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종교와 종교인 그리고 종교현상을 쫓아 거리를 해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상’에서 떠나 추석이라는 민족의 대 전통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상쾌합니다.
2004년 필자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종교학회 창립 5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2박 3일의 일정동안 2백여 명 안팎의 종교학자들이 영국과 전 세계에서 모여 연구 성과를 나누며 뜨거운 토론과 질문공세를 퍼붓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첫날 에딘버러대의 웨일링(Whaling, Frank)교수가 종교학의 역사를 반추하는 기조강연을 했고, 이후 영국학자들이 ‘우리의 조상’(our ancestor)이라 부르는 뮐러(Mller, Max)의 무덤을 찾아가 경의를 표했습니다. 당시 스마트(Smart, Ninian)의 종교현상학을 비판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종교’(religion)를 연구하는 방법과 이론에 대한 탐색은 ‘종교들’(religions)에 대한 연구 못지않게 중요한 연구영역입니다. 경험주의에 입각한 연구방법을 강조하는 영국학자들은 종교사회학과 종교인류학 방법에 더 매료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개척은 중동, 인도, 중국,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종교학자들은 식민지로부터 보내진 정보들을 분석하고 현장경험을 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과학적 환원론은 종교를 ‘종교인의 시각에서’ 공감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종교가 이론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론이 종교를 종교 아닌 것으로 제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최근 종교현상학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반성적’ 종교현상학의 도래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생겼습니다. 과거에 간과되어 왔던 ‘상황적 이해(contextual understanding)’와 보다 여성주의(feminism)적 관점에서 종교 다시읽기를 시도한 것입니다. 과거 피상적인 종교현상학을 보완해 보고자 하는 새로운 움직임 입니다.
또한 종교현상학을 철학의 한 분야로 파악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필자는 종교현상학의 고유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오히려 철학을 종교학의 한 분야로 간주해 봅니다. 지난 9월 18일부터 4일간 서울대에서 개최된 국제 현상학회(PEACE)에서 ‘응용현상학’이라는 주제 아래 불교, 이슬람, 한국종교, 심리학, 영화, 여행, 음악, 몸, 뇌과학, 간호 등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창의적인 논문들이 발표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종교현상학의 유효성과 효율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늘 추석을 맞는 한 종교학자의 입가에도 현상학에 관한 프로이트의 고백이 맴돌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난점은 우리는 여기에서 실로 풍부하기 그지없는 여러 종교의 현상학에서 나온 한 가지 사례만 다루었을 뿐 다른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이 이상의 사례를 제시할 수가 없고, 나의 전문지식은 이 연구를 완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프로이트의 <인간모세와 유일신교> 중에서]
안신_
서울대 강사 shinahn@snu.ac.kr
서울대 종교학과 졸, 미국 예일대 석사, 영국 에딘버러대 종교학 박사.
주요 논문으로 <이슬람과 기독교의 예수 이해에 대한 연구>, <이슬람 다와와 기독교 선교에 대한 비교연구>, <조나단 스미스의 종교현상학 연구>, <엘리아데의 종교학과 인도철학의 영향>, <프로이트의 종교와 환상>, <종교적 방향성과 칼 융의 원형>, <종교현상학의 주요 인물과 최근 경향>, <회심의 다양성과 회심학의 등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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