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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208호-윤달타령(진철승)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2. 8. 8. 17:11

윤달타령

 

 

 

2012.5.1



        윤달이다. 이장을 하고, 화장을 하고,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없다(百事不忌, 동국세시기). 언제부턴가 윤달에 혼례를 기피하는 신풍속이 생겨났는데, 이는 근거가 없다. 동국세시기에 俗宜嫁娶, 又宜裁壽衣라 하여 시집 장가가고 수의를 마련하기에 좋다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결혼식장은 죽을 쑤고, 장의사와 수의장사는 대목을 만난다. 윤달이나 2월(바람달, 날이 꽉 차지 않아)에 혼례를 꺼리는 것은 예전에 없던 풍속이다.


        역법은 대단히 어려운 과학이다. 천문학과 수리학의 고도한 결합이다. 하여 하늘의 뜻으로 만 백성을 통치하는 황제의 역이었다. 하늘의 해와 달의 운행을 계측하여 한 해의 길이를 정하고, 계절과 달을 나누었다. 해의 운행을 중심으로 한 것이 태양력이고, 달의 운행을 중심으로 한 것이 태음력이다. 현행 순 태음력은 이슬람력(회회력, 세종실록 칠정산외편)뿐이고(현재는 종교력으로만 사용한다), 순 태양력은 이집트력, 율리우스(시저)력, 그레고리오력(현행 양력, 陽曆, 西洋曆), 마야력 등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소위 陰曆은 중국 역(청의 時憲曆)인데, 이는 순수 음력이 아니라 太陰太陽曆이다. 대부분 문명권의 역법은 태음태양력이다. 해도 보고 달도 보고 역을 정한 것이다. 명치유신 후 서양력(그레고리우스력)을 채용한 일제가 조선의 역을 음력=미신이라 하여 금한 것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조선문명을 하급으로 몰아가려는 술책일 뿐이었다. 하여 일제시기 음력 습행은 항일의 한 방식이기도 했다.


        윤달은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메꾸기 위래 설정되었다. 지구가 태양을 한번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즉 1태양년은 365.2422(해마다 약간씩 달라진다)이고,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1삭망월(朔望月)은 29.53059이니 음력 1년은 354.3708일이다. 약 11일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나중에는 음력 5-6월에 눈이 내리고, 12월에는 더위로 고생하게 된다. 이에 적당한 간격으로 한달씩 더 넣게 된 것이다. 이것이 윤달이다. 그러니 한 해가 13달이 된다. 하여 덤달, 공달, 여벌달, 윤여(閏餘), 썩은달이라고도 했다. 閏은 정통이 아닌 임금의 자리다. 왕이 평소에는 조정에서 거처하지만, 윤달에는 문간에서 거처하였다고 한다. 윤달이 든 윤년에는 국가에서 강제부역을 시켰고(閏月役), 세금을 더 징수했다(閏耗銀). 한 달이 더 많아 월급을 더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단다.


        현재 윤달은 19년에 7번 들게 되어 있다(置閏法). 치윤법은 매우 어렵고, 역사상 시기마다 다르기에 약한다. 윤달의 설정은 24절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4절기는 사계절에 6개씩, 각 달에는 두 개씩 배당되어 있다. 절기 개념을 좀 더 정확히 쓰면 24절기의 절기란 원래는 절기(節氣)와 중기(中氣)의 합친 말로서 12절기와 12중기로 나뉜다. 그리고 12개의 절기는 월초(月初)에, 12개의 중기는 월중(月中)에 들어 있다. 예컨대 입춘은 1월의 절기이고 우수는 1월의 중기이다. 여기서 기(氣)란 5일을 1후(候)라고 했을 때 3후, 즉 15일을 말한다. 현행대로 태양력에 따르면 절기는 매월 4~8일에 있게 되고, 중기는 매월 하순에 있게 된다. 그런데 위의 분류는 음력을 기준으로 배치한 것으로, 계절의 변화는 태양이 주도하기 때문에 정확히 맞지 않는다. 예컨대 입춘이 음력 12월말에 오는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나누어 놓은 절기를 음력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윤달〔閏月〕을 넣어 계절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는데, 그 방법은 음력 달에서 중기가 빠진 달이 생기면 그 달을 윤달로 하면 된다. 중기가 빠진 달 중 가장 앞선 달을 윤달로 하는 것이다. 2012년에는 4월 21일이 초하룬데, 20일이 곡우고, 5월 21일(음력 4월 1일)이 소만이다. 음력달에 절기가 5월 5일 입하뿐으로 중기가 들지 않는 것이다. 하여 윤삼월이다. 이처럼 윤달을 설정하는 방법을 무중치윤(無中置閏)이라 한다. 즉 중기가 빠진 달을 윤달로 하는 것이다. 중기가 빠진 달이 여렷 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는 가장 먼저 오는 달을 윤달로 삼는다.


        윤달에는 시체가 거꾸로 서도(혹은 관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고 한다. 무탈한 달인 것이다. <<동국세시기>> 윤월조에는 결혼하기에 좋고, 수의를 만들어도 좋은 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百事不忌) 달이라고 했다. 이사를 해도 좋고, 집짓기를 시작해도 좋다. 또 이장을 하는 달이기도 하다. 탈이 없기 때문이다. 윤달에 탈이 없는 이유로 "하늘과 땅의 신(神)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으로 그때는 불경스러운 행동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중부 이남 지방에서는 윤달에 성(城)이 있는 마을 부녀자들이 성터에 올라가 성 줄기를 따라 도는 풍속이 있는데, 이를 '성돌이' 또는 '성밟기'라고 한다. 이 역시 불교신앙의 '탑돌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극락으로 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전라도 고창의 성밟기(성돌기)가 유명하다. 고창에서는 '성돌기' 할 때 액(厄)을 물리치고 장수(長壽)한다는 의미에서 돌을 머리에 이고 돌기도 한다.


        수의 마련의 민간 풍속 외에 윤달 풍속을 현행하는 집단은 불교다. 동국세시기에는 불교 풍속으로 광주 봉은사의 불공과 불전에 돈을 놓는 置錢榻前을 적고 있다. 아녀자들이나 노파들이 극락왕생을 비는 것이라 했다. 이 풍속은 경외의 여러 절에도 있다고 한다. 전국적인 풍속이란 얘기다. 이외에도 윤달의 풍속으로는 삼사순례나 가사불사(袈裟佛事)가 행해지기도 한다.


       윤달 불가의 대표적인 풍속은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다. 생전예수재는 예수시왕생칠재(豫修十王生七齋)라고도 하는데, 흔히 줄여서 예수재라고 한다. 예수재는 죽은 후에 행할 불사를 생전에 미리 닦는 것으로(逆修), 사부대중들이 이 몸의 무상함을 알고 부지런히 닦아 보리과를 행하려면 죽기 전에 삼칠(三七)일을 미리 닦되 등을 켜고 번(幡)을 달아 승려들을 청하여 공양의 복업을 지음으로써 무량한 복을 얻고 소원대로 불과를 얻는다고 하여 지내는 齋供養이다.


        예수재에서 가장 핵심적인 신앙대상은 지장보살과 열시왕이다. 물론 비로자나불이 상상단에 자리하여 예수재의 모든 과정을 증명하면서 공양을 받지만 가장 지성으로 공양드리는 대상은 지장과 열시왕이다. 지장의 대원과 대비는 지옥고에 빠진 중생의 구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이로 인하여 대중의 참회와 수행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측면도 있다. 열시왕은 초강대왕에서 다섯번째의 염라대왕을 거쳐 열번째의 오도전륜대왕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명인데, 이들은 죽은 이의 내생을 결정짓는 심판관 역할을 한다. 이들은 각각 초칠에서부터 칠칠일(사십구재)을 거쳐 백일, 소상, 대상에 영가의 내생을 결정짓는 판단을 내린다.


        예수재는 관련 경전이나 설재(設齋)의 목적으로 보아 비불교적이라는 일부의 비판이 있기는 하나 현재 한국불교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고 대중의 호응을 받는 불교행사로 전승되고 있다. 또한 예전에는 마을의 효도행사이자 공동체 축제로서의 기능도 했다.

 

 


                                                                   
 진철승_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원장,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jcs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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