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리스’의 구원론와 기독교 원죄 교리,그 이전과 그 이후

 

 

 

2012.5.8


        한 때 새로운 종교였던 기독교는 이제 오래된 종교다. 기독교라는 표제 하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무늬들을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오래된, 여전히 매우 특징적인 이야기는 죄와 구원의 서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구원과 해방에 대한 기독교의 ‘좋은 소식’의 맞은 편, 혹은 이면에는 어두운 죄의 고백이 어른거린다. 죄의 언어는 현재에도 신자들을 모집하고, 기독교 개종 체험을 구조화하며, 그들을 기독교 공동체 안에 결속시키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살아 있다.


        그러한 죄 개념의 극단적 형태는 원죄 교리다. 합리성과 휴머니즘이 진리 표준이 된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의 현대화나 동시대성을 고민하는 이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주제이다. 따라서 줄곧 그에 대한 좀 더 온건하고 합리적 해석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교리 신학 전통은 한편에서 여전히 그에 대한 섣부른 논의를 차단한다. 문제 설정 자체가 문제가 된다! 기독교적 구원의 신비에 속하는 원죄는 합리적 토론의 주제로 적합하지 않거나, 논의가 불가능한 주제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타부다.


        하지만 기독교의 교리, 신학, 제도 등이 정형화되기 시작한 4세기 경 원죄 개념은 열린 신학 논쟁의 주제였다. 특히 펠라기우스 논쟁의 설전은, 극단적 원죄론에 대한 반감과 의혹이 요즘 문제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당시의 상당한 기독교 명사들도 원죄 개념을 자유의지에 입각한 윤리적 틀을 위협하는 낯선 발상으로 여겼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부여된 자유의지의 은총을 주장하며 극단적 원죄 개념에 대해 신학적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나 5세기에 접어들어 공의회는 결국 원죄를 공식 교리로 채택하면서, 기독교적 이상의 한 축이던 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하였다. 이 교리의 입안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적으로나 교회 정치적으로, 원죄가 기독교적 은총과 은총의 기관인 보편적 교회의 확고한 신앙에 속한다는 것을 관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원죄 논쟁을 ‘은총을 위한 송사’로 규정했다. 원죄를 부정하는 것은 은총을 부정하고 교회와 교회의 세례를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게 펠라기우스주의에 그가 내민 소장의 핵심 주장이었다.


        이때 그가 수호하려 했던 은총은 바로 바울이 강조했던 은총, 곧 ‘카리스’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극한까지 밀고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리스 문화권의 정치, 사회, 종교 영역 등에서 널리 사용된 ‘카리스’라는 말은 본래 호의와 선물, 감사와 답례 등을 두루 의미했다. 신적 호의의 징표인 넘치는 매력과 아름다움, 초자연적 능력이나 뛰어나고 비범한 자질을 가리키기도 했다. 카리스의 의미를 관통하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베푸는 행위와 그에 대한 답례를 포괄하는 상호성이었다.


        바울은 그의 청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말로 개종 체험에서 발견한 신적 능력과 기독교의 종교적 비전을 전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과정에서 상호적인 뉘앙스가 강한 ‘카리스’에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신적 호의와 사랑이라는 미묘하게 변형된 의미를 덧씌웠다. ‘카리스’의 기본적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초점이 된 의미가 점차 옛 의미를 압도했다. 그것은 ‘카리스’가 이후 기독교 신학의 핵심 용어로 재설정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바울적 기독교의 메시지는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 신적 카리스, 즉 극대화된 신의 의지와 사랑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고백에 응축되어 있다. 비범한 종교적 자질로서의 카리스마도, 그것을 가진 특수한 개인보다도 신적 카리스 자체가 강조되는 방식으로 재설정되었다. 소수의 선별된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신의 카리스가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새로운’ 종교적 비전이었다. 고대 말 카리스 종교 문화를 공유했던 초기 기독교 운동은 이처럼 카리스 개념의 변용을 통해 미세한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에 구원론적 의미를 부여했으며, 카리스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종교사에 새로움을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카리스의 기독교적 변용은 특히 예수가 인간을 위해 자기 파괴와 하강을 감행한 육화한 신, 그리스도로 경험되고 고백된 것과 관련된다. 신의 자살, 혹은 신의 희생제의에 해당하는 육화 모티브를 기독교인들은 비천한 인간에게 호의를 베풀겠다는 신의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해석되었다. 신의 육화, 즉 자기희생이 보여주는 극한의 카리스가 기독교적 구원의 보편적 성취를 보증하는 구도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인간적인 상승의 노력들이 무력화되고 철저히 부정됨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온전한 희망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은 그 점을 명시적 문구로 고정시킨 것이다. 그는 바울의 카리스 개념을 끝까지 밀고나가 상호성이 완전히 배제된 신적 속성, 구원의 능력으로 재해석하였다. 그에 따르면 믿음조차 카리스의 결과다! 인간의 의지는 신의 의지의 결과다. 교회가 원죄 교리를 채택한 것은 이러한 신적 카리스의 구원론을 기독교의 확고한 신앙으로 확정한 것이다. 완전한 신적 삶을 지향해가는 초인적인 상승의 노력보다는 하강과 자기 파괴, 굴종의 역설적 의미를 보여준 극한의 신적 카리스가 훨씬 더 큰 압도적인 종교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의 인정’과 감사의 희생인 고백은 오히려 무차별적 카리스, 신의 은총을 구하고 얻는 적극적인 종교적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급진적 은총론은 그렇게 급진적 원죄론과 연결된다.


       이처럼 원죄 교리는 후기 고대 종교 문화 전체에 만연되어 있던 초자연적 영감, 즉 카리스를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면서 동시에 강제했다. 그 관점에서,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짓의 징표이고 공동체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가장 큰 죄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신적 카리스의 대상이다. 카리스가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이 된 대신 무차별적으로 원죄를 떠안게 된 모든 사람은, 스스로 카리스의 수혜자나 통로가 될 자격을 상실했다. 구원의 원천인 신적 카리스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대리자인 보편적 교회의 성사를 통해서만 주어진다. 원죄의 교리화와 죄 사면의 성사를 주관하는 제도 교회가 카리스를 독점하게 된 것은 동일한 궤도에 있다.


        현대적 상황 속에서도 이러한 원죄 교리와 카리스의 독점이라는 형식을 통해 보편적 구원을 담보하는 제도 교회의 견고한 관계는 쉽게 깨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만일 원죄 교리가 기독교 공동체 안에 존재하지만 더 이상 내놓고 말하지 않는 타부의 형식이 아니라 토론 가능한 열린 주제가 된다면, 다른 기독교, 다른 보편성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안연희_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chjang1204@hanmail.net


주요 논문으로 <일제시대 한국 개신교 부흥회 운동 연구>, <근대 영지주의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아우구스티

 

누스 원죄론의 형성과 그 종교사적 의미>, <초기 기독교의 선택-문명과 반문명의 기로에서>, <이방인의 사도 바울,

 

보편적 종교를 실험하다>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