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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섹슈얼리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2012.4.17 



        당 연구소의 올해 하반기 정기심포지엄 주제로서 “종교와 섹슈얼리티”가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라 있다. “종교와 여성”이라든가 “젠더문제로 본 종교” 같은 것이 아니라 굳이 ‘섹슈얼리티’를 묻는 연유가 있어 보이는데, 어쨌든 이 주제와 관련하여 어떤 것들이 논의될 수 있을지 간단히 정리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두서없는 생각들을 적어 본다. 필자의 시야가 일천한 탓이겠지만 이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국내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각 문화권의 성(性)신앙이라든가 요가 탄트리즘 혹은 도가적 방중술 따위와 관련된 정보전달식의 단편적인 담론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이 주제를 심도있게 다루어 볼만한 필요성은 충분해 보인다.


        알고 보면 ‘종교’와 ‘섹슈얼리티’는 닮은 점이 많다. 양자는 속(俗)의 일상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종종 성(聖)의 비일상으로 치부되며, 또한 정신적(영적)인 어떤 것(가령 합일이라든가 사랑)을 담보로 하여 자신의 궁극적인 절대성이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두 개의 키워드 모두 인문학적인 발견적 문제군들에 폭넓게 걸쳐 있다. 예컨대 이원론, 차이, 경계, 금기, 신성, 부정(不淨), 권력, 욕망, 희열(주이상스), 환상, 주술, 파시즘, 금욕주의, 신비주의, 신체, 주체, 정체성, 모더니티 등의 문제를 사이에 두고 양자가 연동하는 메커니즘이나 특수한 작동방식 따위를 분석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분명 도전적이고 다채로운 풍경을 연출해 보여줄 것이다. 이 경우 가령 “종교차이섹슈얼리티”라든가 “종교권력섹슈얼리티” 혹은 “종교희열섹슈얼리티” 등과 같은 형태의 삼자 배치로 논의를 모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종교도 섹슈얼리티도 그 핵심에 차이, 권력, 희열의 담론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여타 문제군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종교와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는 이처럼 주요한 인문학적 담론들과 맞닿아 있는 포괄성 및 이론적 추상성으로 인해 자칫 논의의 초점이 산만해질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건대 일단 ‘종교’라든가 ‘섹슈얼리티’라는 용어 사용부터 그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종교’의 경우 특정 종교전통보다는 ‘종교적인 것’ 혹은 ‘종교성’에 주목하는 편이 논의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섹슈얼리티’ 또한 생물학적 성 혹은 사회문화적 성차(젠더)보다는 ‘성적인 것’이라는 본래적 함의에 중점을 두고 거기서 더 나아가 ‘여성적인 것’(여성성) 혹은 ‘남성적인 것’(남성성)의 문제까지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문제는 종교담론에 섹슈얼리티를 끌어들이면서 무엇을 ‘다르게’ 혹은 ‘새롭게’ 말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을 것이다. 가령 성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페미니즘은 매우 세련된 차이 담론을 구축해왔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차이에 입각한 비교 담론을 전제로 출발한 종교학은 페미니즘의 차이 담론과 어떤 점에서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또는 푸코류의 권력 담론이나 라캉류의 주이상스 담론을 넘어선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종교와 섹슈얼리티의 접점은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야말로 논의의 시금석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혹 이런 삼자 배치적 문제군들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하위범주로 보다 구상적인 이자 배치적 소주제들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가령 “종교적 금기, 성 금기”, “종교적 희열, 성적 희열”, “남자의 종교, 여자의 종교”, “신화와 동성애”, “의례와 오르지”, “신전매춘의 성속”, “종교적 수련과 다이어트”, “회심과 성형” 같은 거 말이다. 무엇이 되든 “종교와 섹슈얼리티”라는 것이 당 연구소의 심포지엄 주제로는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기대해도 좋을 성싶다. 여러분의 창의적인 제언을 기다린다.


 

                                                                    
 박규태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편집위원장


chat0113@paran.com


저서로 <<동아시아 여신신화와 여성정체성>>(공저),<<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히메까지>>,<<일본정신의 풍경>>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 <<일본사상사>>,<<국화와 칼>>,<<신도,일본태생의종교시스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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