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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귀환’과 ‘성속(聖俗)의 변증법’

 


 

2012.4.24

 


        세계화로 치닫고 있는 후기현대의 맥락에서 ‘종교의 귀환’이 학계 중요한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세속화테제’에 대한 수정 노력이 종교사회학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속화테제’에 따르면 계몽주의 이후의 합리화의 물결 속에서 종교는 점차 사라질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계몽주의 정신이 절정에 달했을 때 종교의 세속화라는 도도한 물결은 그 진앙인 서유럽을 기점으로 해서 점차 주변부로 확대되어 나아갈 것으로 당연시되었다. 즉 서유럽에서 일어났던 종교의 세속화의 과정은 역사의 거스를 수 없는 커다란 흐름으로서 지구촌 전역에서 관철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기의 전환에 즈음하여 ‘종교의 귀환’을 알리는 탈세속화로의 흐름 또한 지구촌의 여기저기서 현저하다. 1960년대 이후 ‘세속화테제’의 주창자들이었던 버거(Peter Berger)나 마틴(David Martin)과 같은 대표적 종교사회학자들도 세속화의 가정이 오류였음을 이미 시인했다. 근대 합리화의 진행이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 모두에서 종교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해온 ‘세속화테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에 내재하고 있는 ‘종교와 모더니티’사이의 관계가 단선적인 ‘세속화테제’의 가정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리화의 증진을 통한 종교의 쇠퇴는 이데올로기적이고 허구적이라고 단정한다. 이들은 서유럽에서조차 ‘세속화테제’가 가정한 ‘성속의 변증법’의 종결(closure) 혹은 쇠락(decline)은 허구로 드러나고 성속의 변증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탈세속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세속화테제’가 후기현대에서 작용하는 일종의 ‘성속의 변증법’을 파악하는데 실패했다고 보면서, 성을 속으로 동일화하는 변증법의 쇠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탈세속화의 또 다른 변증법적 역동성을 추적하게 되었다. 물론 ‘세속화테제’가 가정한 종교의 쇠퇴가 부정된다고 해서 ‘세속화테제’가 송두리째 전부 부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이유는 버거나 마틴 같은 종교사회학자들도 여전히 베버(Max Weber)나 파슨즈(Talcott Parsons)의 종교의 변형의 관점을 버리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세속적 변형을 단선적인 동일화의 논리로 보지 않고 ‘사회적 육화(social incarnation)’에 바탕을 둔 ‘신앙과 자연의 변증법’ 혹은 ‘성속의 변증법’의 지속으로 보는 관점은 주목받을 만하다. 종교를 단지 합리화 과정과 역사의 변증법적 전개 속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할 고립된 환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보다 심층적인 이해의 정신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탈세속화의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종교의 귀환’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예컨대 ‘탈세속화테제’가 전하는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의 근본주의의 부흥은 매우 역동적인 종교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동일과 차이 혹은 이항대립의 변증법이 불안하게 작용하는 매우 모호하고 불확실한 성속의 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종교 갈등과 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희생이 지구촌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는 현실에서 ‘탈세속화테제’가 서술하는 ‘종교의 귀환’과 ‘성속의 변증법’을 낙관하는 것은 금물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더니티로 무장된 비종교적 자아의 종교적 비전 실재가 해체되기를 기대하면서도 모더니티 이후에 등장할 보다 성숙한 종교적 자아(homo religiosus)의 종교적 비전 실재를 온전하게 그려나가는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세속화테제’가 가르쳐주는 교훈은 성을 속으로 동일화하는 ‘동일의 변증법(dialectics of identity)’에 기초한 종교적 비전은 우리에게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차이의 풍요로운 실재를 동일이라는 메마른 실재로 환원시켜버리고 마는 변증법의 종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과 속의 극단적인 차이를 추구하는 ‘차이의 변증법(dialectics of difference)’ 또한 선택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속의 풍요로운 공명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성과 속의 ‘유비의 변증법(dialectics of analogy)’에서 ‘종교의 귀환’을 잘 조탁해서 ‘잃어버린 종교의 미래’를 회복해낼 수 있지 않을까?


      

 

                                                              
 박형국_

Ph. D. 장신대학교


parkhyunggug@gmail.com


주요논문으로 <바르트의 계시해석에 나타나는 脫형이상학적 현존의 사유>,<계시와 현존 - 계시의 매개에 대한 바르트의 변증법적 유비론>,이 있고, 역서로 <<신학대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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