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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근대종교의 탄생'이라고 붙였는가?

 

 

2012.7.24

 


        종교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1867년-68년 사이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1877년-87년 사이에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구미제국과 통상조약을 맺을 때, 서양의 “릴리젼”에 해당하는 번역어였다. 중국에서도 1890년대 무렵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1900년- 1910년부터 널리 쓰이게 되었다. 한국에서 종교가 처음 사용된 것은 1883년 한성순보의 외국 뉴스 보도이다. 발음은 각각 다르지만("shukyo", "zongjiao" “Jonggyo"), 한자(宗敎)를 공유하기 때문에 이 용어는 동양 삼국 사이에서 유통하기에 용이하였다고 보인다. 최근에 중국학자들 가운데에는 종교라는 용어가 번역어가 아니라, 원래부터 중국에 존재하던 용어라는 주장(“宗敎不是外來語”)을 하는 이(彭國翔, 李申)도 있고, 근대 이전에도 릴리젼이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Michael Pye, “What is ‘religion’in East Asia?”)도 있다. 혹은 이른바 근대 이전에는 정확하게 종교라는 용어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종교가 없는 인류 역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의견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점은 “宗敎”의 전통이 지배적으로 되기 이전의 “敎”의 전통이 “宗敎”의 전통과 얼마나 다른지에 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단지 현재에 통용되는 “宗敎”의 관점에서 그 이전의 상황을 해석하면서 “敎”와 “宗敎”의 두 가지 개념이 다른 점이 없다고 간주하게 된다. 이와 같은 관점은 “敎”와 “宗敎”의 유사성을 표면적으로 파악해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敎”가 “가르침”이라면, “宗敎”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 혹은 “핵심적인 가르침” 정도로 이해를 한 것이다. 하지만 “敎”와 “宗敎”의 개념은 매우 다른 의미적,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어서 패러다임의 용어를 빌어 그 차이성을 거론할 만하다.


        첫째, “宗敎”의 개념 틀은 “敎”의 개념 틀이 지녔던 것과 같은 포괄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敎”의 개념 틀에는 모든 가르침이 포함될 수 있었다. 예컨대 儒敎, 佛敎, 道敎, 回敎 등뿐만 아니라, 白蓮敎, 五斗米敎도 포함되었으며, 심지어 “邪敎”도 그 범주 안에서 거론될 수 있었다. 반면에 종교의 개념 틀은 배타적이어서, “宗敎”와 “非宗敎”를 가르는 분명한 구분선이 존재한다. 類似宗敎, 似而非宗敎라는 용어가 출현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리고 迷信이라는 용어도 이런 개념 군에 속한 것으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따라서 “敎”의 개념 틀에서의 儒敎, 佛敎, 道敎의 관계와 “宗敎”의 개념 틀에서의 儒敎, 佛敎, 道敎 관계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면, 중요한 점을 간과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근대적인 종교 개념 및 그에 수반된 미신 개념이 정착하게 되면서 이전에 유교와 불교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교(敎) 상호 간의 갈등이 종교와 사이비종교, 혹은 미신과의 대립으로 대체된 것이다.


        둘째, 교의 개념이 긍정적인 가치와 부정적인 가치 모두를 지니고 있는 반면, 종교의 개념은 긍정적인 가치만을 갖는다. 종교에 포함되지 않는 부정적인 가치는 사이비종교에 소속을 시킨다. 여태까지 종교에 포함이 되었던 것도 사회적인 역기능이나 부작용이 나타나면, 종교의 자격을 잃고, 사이비종교로 전락한다. 따라서 현재에도 사용되는 사교(邪敎)라는 용어는 종교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사회적, 반인륜적 혹은 “반인간적”인 성격은 종교에 존재할 수 없는 성격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컬트”(cult)라는 용어도 특정 현상이나 집단을 종교에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셋째, 물론 배타적이지 않은 교(敎)의 전통에도 정통과 이단의 구분은 존재하지만, 그 구분선은 그리 엄격하지 않다. 그리고 정통의 집단은 이른바 이단의 집단을 교화하여 전통의 노선에 복귀시키는 것은 우선적인 의무로 간주했다. 따라서 국가의 법적 절차에 맡기는 것보다는 인심의 교화를 강조하였다. 반면에 종교의 전통은 사이비종교의 활동을 국가의 경찰력 및 법률체계에 의해 통제한다. “敎”와 “非敎”즉 정도(正道)와 좌도(左道)의 구분이 그리 엄격하지 않고, 유동적인 반면, 종교와 비종교의 구분은 엄격하고 분명하다. 국가의 법적 통치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넷째, 종교와 비(非)종교의 구분은 종교의 영역 안에서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영역에까지 확대되어 적용된다. 즉 비종교의 공간이 세속의 영역으로 지칭되는 것이다. 종교와 세속의 영역은 동시에 출현하는 것으로 서로가 서로를 요청하는 짝패와 같다. 그리고 세속의 영역에서는 근대의 합리성이 구현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주장은 각각 세속과 종교의 영역의 격리를 강조하는 관점이다. 하지만 교의 전통에서는 이와 같은 영역의 분리와 격리는 나타날 필요가 없다.


        다섯째, 종교의 전통에서는 엄격하고 고정적인 종교, 세속, 미신의 3분법이 유지되며, 세속의 계몽활동에 의한 미신의 제거가 기본 방향으로 제시된다. 과학은 바로 세속 영역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속과 종교는 미신의 제거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설정된다. 종교는 끊임없이 세속으로부터 미신의 출처를 마련해준다는 혐의를 받게 되는데, 특히 세계종교로 간주되지 못한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국가 주도의 계몽적인 교육이 보통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신자들의 교육은 국가기관이 아닌 종교기관이 맡아 진행한다. 반면 교의 전통에서 교육은 이런 구분이 없다.


        이 내용은 앞뒤 가리지 않고, 종교의 보편성을 전제하면서 시작하는 우리의 익숙한 습관이 중단될 경우, 맨 처음 나타날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서양의 충격’과 그에 대한 동아시아 사회의 대처 반응이 일어나고, 그 맥락에서 릴리지온이 종교 개념으로 전화되기 이전의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의 물음과 연결되어 있다. 이 문제의식 속에서 전통적 “敎”의 의미망을 살피는 작업이 등장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또한 유불도 혹은 유불선의 삼교(三敎)에 관한 관점이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논의하고, 이런 것과“종교”의 틀이 어떻게 차이를 보이는지 분석하는 것도 당연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릴리지온의 영향권에서 만들어진 “종교”의 틀이 일본, 중국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정착해 나갔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더라도 별로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한국에서 민족국가 수립의 과제 및 일제 치하에서 식민주의와의 길항관계 속에서 “종교”의 문제 틀이 어떻게 작용하였으며, 결국 우리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과정과 의미를 살피는 작업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현재 헤게모니를 장악한 “종교”의 틀에 의거하여 과거의 자료를 손쉽게 대입해 버리는 대신, 그 틀 자체를 묻기 시작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일이 바로 “우리”의 연구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자세가 요구하는 쉽지 않은 긴장을 유지하는 것, 그래서 "한국근대종교의 탄생"이라는 말이 엄밀하게 보면 틀린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수원지 탐사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원지(水源池)라는 비유를 놓고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쓸데없는” 시비를 거는 것이 앞으로 “우리”의 프로젝트가 해나갈 일이다.


        * 이 글은 지난 상반기 심포지엄(6월30일) 발표문 중에 발췌한 내용이다.


                                                                   
 장석만_

종교문화비평학회 회장


stonemann@daum.net


논문으로 <민족과 인종의 경계선:최남선의 자타인식>, <인권담론의 성격과 종교적 연관성>, <한국신화 담론의등장>

 

등이 있고, 저서로 ≪종교 다시읽기≫(공저), ≪한국 근대성 연구의 길을 묻는다≫(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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