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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와 섹슈얼리티- 2012년도 하반기 정기 심포지엄

 

 


종교문화비평학회 2012년도 하반기 정기 심포지엄


본 학회는 매년 2회, 상반기와 하반기에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학술대회는 종교에 관련된 다양한 학문적사회적 이슈를 발굴하고, 이에 관한 학제적 접근을 도모함으로써 폭넓은 학문적 소통과 대중적 담론화의 장을 제공해왔다. 금번 2012년도 하반기 학술대회에서는 오늘날 인문사회과학 진영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주제의 하나인 ‘섹슈얼리티’ 문제를 ‘종교’라는 특정한 주제와 관련지어 다각적인 논의를 모색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여러 학문분야 연구자들의 종교와 섹슈얼리티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논의의 방향을 공유하면서 연구를 수행하고, 그 성과를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하고자 한다. 금번 학술대회가 일련의 연구소의 논의 과정과 결과를 학계 및 대중과 널리 공유하는 주요한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종교란 삶의 구체성에 단단히 밀착되어 있는 사회적문화적 영역이고, 섹슈얼리티 역시 그러한 밀착성이 두드러지는 일상적 요소다. 섹슈얼리티는 생물학적 존재이자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이중적 측면이 두루 얽혀 있는 영역이며, 정신과 육체, 개인과 집단, 자아와 욕망 등의 온갖 요소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점이다. 20세기 후반에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젠더’의 문제의식은 공적 영역의 성적 차이에 관한 사회구조적 차원의 논의를 넘어 사적 영역의 미세한 부분들에 까지 주목해왔으며, 그 결과 ‘젠더’ 논의는 여성과 여성성 문제뿐 아니라 남성과 남성성 문제도 아우르는 포괄적 담론으로 확장되었다. 여기에 이론적 차원에서 미셸 푸코의 ‘권력’, 자크 라캉의 ‘욕망’, 주디스 버틀러의 ‘차이’ 등 새로운 개념 틀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주요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러한 이론들을 바탕으로 종횡으로 설명됨으로써 복합성을 지니는 섹슈얼리티 문제가 새삼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후기자본주의가 여성과 남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섹슈얼리티는 소비의 욕망 기제를 규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확연히 떠오르게 되었다. 생물학적 성별(sex)이나 사회구조적 성차(gender)와 결부되면서도 이들과 구분되는 고유 속성을 지닌 섹슈얼리티(sexuality)는 개인의 내밀한 욕구에서 사회의 견고한 규율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얽혀 있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영역으로, 오늘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가장 많은 담론이 생산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 학술대회가 섹슈얼리티라는 주제에 주목하는 것이 단지 최근의 이러한 지적 유행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섹슈얼리티는 애초부터 종교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요와 다산에 대한 고대인들의 열망이 어떻게 섹슈얼리티의 화신인 여신들에 대한 상상과 신앙으로 표출되었는지, 또 일상적 노모스와 그 위를 덮고 있는 비일상적 코스모스의 질서에 지속성을 부여하는 축제에서 어떻게 섹슈얼리티가 비일상적 카오스의 혼돈을 분출시키는 통로가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종교를 이해하는 데서 섹슈얼리티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주요한 주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사회가 섹슈얼리티를 통제하여 스스로를 유지하는 데서 종교가 그 통제 권력에 신성한 후광을 부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 그리고 개인이 초월적 자아의 이상에 이르기 위해 욕망을 억누르거나 몰아대는 상반된 종교적 실천들에서도 섹슈얼리티가 핵심적 위상을 차지해왔다는 점 역시 종교와 섹슈얼리티의 밀접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본 학술대회가 종교와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를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종교와 섹슈얼리티는 흔히 성스러움과 속됨의 상반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둘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방식으로 언제나 그리고 근원적으로 얽혀 있다. 성스러움과 속됨이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생성하고 반영하는 연속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와 섹슈얼리티 역시 뗄 수 없는 긴밀함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종교를 이해하고자 할 때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를 새삼 주목해야 하듯이, 종교라는 렌즈를 투과하지 않고서는 섹슈얼리티의 미묘하고 역설적인 속성들을 충분히 포착해낼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 학술대회에서는 종교와 섹슈얼리티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긍정과 부정, 결핍과 과잉, 절제와 분출, 최소화와 최대화 등 상반된 두 극단적 양상과 그 사이에 펼쳐진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다각도로 조망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한편으로 섹슈얼리티라는 렌즈를 통해 종교의 구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길들을 모색하는 것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기존 논의에 종교라는 렌즈를 더 얹음으로써 그 학문적 담론에 좀 더 풍성한 깊이와 섬세한 결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국외의 종교연구 학계에서는 지난 20~30년 동안 ‘종교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논의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져왔다. 국외에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도교 등 동서양의 주요 종교들에 속한 신학자들과 교학자들, 그리고 특정 종교를 다루거나 종교들의 비교를 도모하는 종교학자들이 개별 종교에 관해 또는 종교 비교를 통해 종교와 섹슈얼리티의 관계 양상을 규명한 다양한 연구가 두텁게 축적되어왔으며, 지금도 계속 생산되고 있다. 물론 논의의 양상도 더욱 다양해져왔다. 예를 들어, 여성 섹슈얼리티의 억압이라는 페미니즘의 고전적 논제에서 더 나아가 남성 섹슈얼리티에까지 억압 논제를 확장 적용한 연구가 꾸준히 시도되어왔으며, 통속적이고 관음증적인 흥미 차원에서만 주로 관심을 끌던 탄트리즘 섹슈얼리티에 관해서도 그 정교성과 복잡성에 관한 연구가 다수 축적되어왔다. 또 금욕주의를 단지 욕망의 절제나 억압으로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욕망에 극도로 예민한 감각을 길러 역설적으로 욕망 자체를 종교적 자아 성취의 매개로 삼으려는 실천으로 보는 연구, 종교가 동성애와 양성애, 트랜스베스추얼과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억압하고 해방시켜왔는지를 다룬 연구, 축제나 성기신앙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적 장치들에 내재된 섹슈얼리티의 기제에 관한 연구 등과 같이 일일이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다양한 세부 주제들에 관한 연구가 계속 쌓이고 있다.


이에 비하면 국내에서 ‘종교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매우 희소하며,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관심에 민감한 출판사들 덕분에 통속적 흥미 위주의 비학문적 대중서적들이 쏟아져 나와 인기를 누리고 있고, 그런 책들에서 종교와 섹슈얼리티의 관계가 언급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통속적 내용 이상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편,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루어온 페미니스트나 문화연구자는 대개 종교와 세속의 이분법에 갇혀 종교 자체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았고, 종교를 연구하는 종교인들이나 종교학자들은 여전히 젠더 문제만 주로 다룰 뿐 섹슈얼리티라는 새로운 문제설정으로 아직 옮겨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간혹 이 주제를 다루더라도, 항간의 대중서적들의 수준에서 그리 멀리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이 섹슈얼리티 연구자들은 종교를 소홀히 하고, 종교 연구자들은 섹슈얼리티를 소홀히 해 온 탓에, ‘종교’와 ‘섹슈얼리티’를 하나로 묶은 ‘종교와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는 여전히 제대로 된 학문적 연구의 발길을 기다리는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채로 있다. 이 점에서 다양한 종교를 넘나들고, 종교와 세속을 가로지르며, 첨예한 최근 이론들을 망라하면서 펼쳐진 본 학술대회의 시도들은 ‘종교와 섹슈얼리티’라는 주제에 관한 사실상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학문적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번 학술대회에 회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바란다.


 

                                                                      2012. 11. 6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윤승용 
                                                      종교문화비평학회    회장 장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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