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현대 한국 천주교회의 당면 과제와 그 맥락
2012.11.13
한국 천주교회는 1990년 이후에도 계속 큰 폭의 교세 증가를 경험한다. 교세 증가율은 3대 종교 가운데 가장 큰 폭이었고, 현재도 매년 10만명에서 13만명이 늘고 있다. 교세와 함께 본당수, 사제수, 수도자 숫자도 큰 폭으로 증가한다. 사회복지 영역에서도 천주교는 한국 종교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양적 성장을 경험한다. 반면 교회의 대(對) 사회 발언과 참여 빈도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평신도 단체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다. 사제 숫자가 증가하면서 평신도들의 교회 참여 태도는 소극적으로 변한다. 교회 안에 부(富)가 증가하고,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부터는 천주교의 사회 참여 태도가 소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신자들의 신앙생활 영역에서는 종교적 투신의 하락 징후들이 뚜렷해진다. 신자들의 결속력은 약화되고, 준(準) 냉담 상태의 신자들이 계속 늘어난다. 청소년층의 숫자는 계속 감소하는데 노인층의 숫자는 큰 폭으로 증가한다. 이처럼 한국 천주교회는 1990년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에 따라 내부적으로 양적, 질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현대 한국교회의 경험 특히 2000년 이후 상황을 관찰하면서 발견되는 변화 양상을 크게 교회의 사회참여 태도 보수화, 교세 성장으로 인해 오히려 쇄신이 지체되는 현상, 권위의 상대화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한국 천주교회는 여전히 역동적이고 한국 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해 보이지만, 위의 실제 모습을 보면 미래가 반드시 밝지만은 않다. 교세성장이 계속된다 해도, 그것이 종교의 본질을 잃는 것이라면 이를 달가워할 수만은 없는 일인 까닭이다. 이런 길은 교회사에 비춰보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지름길이었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회의 현재 상황에서 제기되는 과제들은 천주교의 미래와 한국 사회를 위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성장의 열매에 취해 쇄신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천주교회 사목의 최우선 순위는 유지 관리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이 제기되는 도전들을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다. 시노드(synod) 최종의제가 된 청소년 사목도 형식적일 뿐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대책이 따르지 않고 있다. 다른 영역들도 단기 대책과 성과에 급급하다. 냉담 교우들에 대한 대책은 원인파악이 충분히 이뤄졌음에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지속되는 양적 성장에 만족해 가톨릭교회가 장점으로 인정받는 영역들을 지속시키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교회 안에 팽배해가는 무신앙과 세속논리들이다. 성직자, 수도자들도 이제 교회일이 신앙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형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세속과 맞닿은 영역에서 가장 먼저 갖게 되었고, 본당도 중간층 신자들이 늘어나 이들이 사목의 중심대상이 되면서 서서히 이러한 사고방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현상은 미리 예견된 것이었다. 그만큼 교회운영이 신앙 논리로 이뤄질 수 있도록 새 신자들을 교육했어야 했는데 급격한 양적 성장이 이뤄지면서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교회가 투명성을 장점과 명분으로 삼아 자본주의적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와 같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런 경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 일들이 장기적으로는 교회에게 자본주의 논리를 몸에 배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익숙해지면 영성의 가치로 판단할 것도 비용의 효율성과 효과성으로 따지기 마련이다. 교회가 커지고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들이 많아질수록 신앙의 논리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압도당하게 된다. 교회의 규모가 커지고, 비교적 구매력이 큰 신자들이 많아지면 교회가 이런 일을 직접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데 큰 이윤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논리를 거스르는 복음의 가치를 추구하는 교회에게 같은 논리를 적용해선 곤란하다.
네 번째는, 사제 수도자들이 청빈의 가치를 점차 잃어가는 것이다. 교회를 둘러싼 환경이 풍요로워지면서 두 신원 스스로나, 평신도들에 의해 누리는 또는 누려야 하는 수준이 올라가버렸다. 이처럼 기준이 완화되다 보니 가장 엄격하게 청빈생활을 추구하던 수녀들도 이러한 경향에 쉽게 편승하게 되었다. 그 결과 세 신원간의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핵심 가치들이 약화되고 신원 간 문화수준의 간격이 좁아지는 것도 안정기에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이라 하겠다.
다섯 번째는, 평신도의 삶을 돌아볼 때 신앙생활이 점차 여가생활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커지는 것이다. 회심 없는 신앙생활은 기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교회에 유입시키는 통로가 된다. 진지하고 양심을 자극하는 강론이나 가르침은 더 이상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당장 귀에 즐거운 소리만을 들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설사 진지해도 그것은 교회생활에만 적용될 뿐 사회생활과는 무관하다. 성속이원론도 뚜렷하다. 사실상 교회의 세속화는 이렇게 신자들이 부추기는 것이다. 신자들의 회심 없는 여가에 가까운 신앙생활이 안정기 신드롬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점차 예언적인 정신이 약화되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성장하면서 교회 역할이 줄어든 이유 뿐 아니라 관심분야를 찾지 못한 탓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을 할 만한 신도들을 양성하지 않은 탓도 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만 살아가도 보니 당대(當代)와 호흡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또 그럴수록 대화를 기피하게 된다. 그만큼 교회 내부적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외부의 도전 없이 교회 유지관리에 매달리는 현실이 폐쇄적인 ‘그들만의 교회’가 되는 이유라 하겠다.
이상과 같이 한국 천주교는 미래가 밝지 않음에도 양적으로 당분간 성장을 계속할 것이고, 교구 사제의 성소도 한동안 현재의 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신자들도 당장 사회에 무리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 천주교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었던 이웃 종교들의 정체도 당장은 두드러지게 약진으로 전환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적 평판도 천주교가 지속적으로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는 한 현재의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 왜 위기라고 말하게 되는가? 앞서 살펴본 영역들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선행지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주교가 사회에서 기대하는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이 되거나, 그에 가까이 이를 수 있으려면 이러한 선행지표들에서 긍정적인 현상들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런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천주교회는 이제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하는 “가진 종교”, 사회적으로도 권력을 가진 “종교 권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권력이 커진 만큼 사회적 약자들에게 양심적일 수 없고, 대결하는 다른 역할주체들에 대해 신사적일 수 없다. 그리고 거느리는 영역이 넓어지고 가진 것이 많을수록 국가의 도덕성을 시비하기 어려워진다. 그동안 국가권력에 대하여 상대적이고, 약자들에게 친화적일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소유가 적은 데서 오는 도덕적 정당성과 ‘낮은 눈높이’ 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교계제도의 위기담론과 다르게 진보적 위기담론은 교세성장에 관심이 적다. 종교 간의 경쟁을 세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보는 까닭이다. 오히려 자신을 비워(또는 낮추거나 포기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모습, 인간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자본주의를 거슬러 청빈 하면서도 대안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이 시대의 종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자 과제라고 본다. 이런 기대에 비춰볼 때 한국 천주교회의 현재 모습은 위기의 면모를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위기징후를 천주교 내부에서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상태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 안일하게 이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기에 대한 불감증이 진정 위기의 징후이겠다.
* 이번주 토요일(17일) 제8차 종교문화탐방(마산 시토회 수정의 성모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앞두고 현대 한국 천주교회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본 것입니다.
박문수_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franciscus0906@daum.net
주요논문으로 <가톨릭 사회복지와 한국의 근대화 : 1784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 천주교회 활동수도회의 현
황과
전망>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 <<천주교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공저)등이 있다.
'뉴스 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8호- 제4회 (사)한국종교문화연구소 학술상 선정 및 시상 안내 (0) | 2012.11.28 |
---|---|
237호-종교는 선거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까?(최현종) (0) | 2012.11.28 |
235호-종교와 섹슈얼리티- 2012년도 하반기 정기 심포지엄 (0) | 2012.11.28 |
234호-“근대 종교”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며(이욱) (0) | 2012.11.28 |
233호- 오늘날의 에로틱 영성을 향하여 (0) | 2012.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