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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내력(巫黨來歷)』과 시흥 단군전
newsletter No.434 2016/9/6
『무당내력(巫黨來歷』이란 책이 있다. 서울 천신굿의 각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각 그림마다 설명하는 글이 달려있는 책이다. 이 책이 작성된 시기는 1885년이라고 알려졌으나, 요사이 1920년대 저작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었다. 서울 천신굿의 각 거리를 채색화로 그리고 있어서 서울 굿의 모습을 소개하는데 자주 활용되는 책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소장처는 서울대 규장각으로, 규장각 홈페이지에도 이 책 전반에 대해 설명하는 글(서영대, 『무당내력(巫黨來歷』)이 올라와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는 고도서본과 가람본 2종의 『무당내력』이 보관되어 있다. 최근 『무당성주기도도(巫黨城主祈禱圖) 차서(次序)』, 『무녀연중행사절차목록(巫女年中行事節次目錄) 전(全)』, 『거리(巨里)』, 『무녀의(巫女儀)』 등 『무당내력』과 비슷한 자료들이 확인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무당내력』의 중요한 특징은 한국무속과 무당의 기원을 철저하게 단군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한국무속을 설명할 때 불교와의 교섭이 거론되고, 서울 무속의 경우 최영 장군과의 관련성이 강조된다. 『무당내력』은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을 다 거부한다. 무당 기원설의 하나로 통용되던 법우화상과 여덟 딸에 관한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고, 기존에 최영장군과 연결된 것으로 설명되는 서울 굿의 중심 절차를 단군 및 부루(夫婁), 고시례(高矢禮) 등단군 관련 인물을 대상으로 한 신앙행위에서 기원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처럼 무속과 무당의 기원을 단군에서 찾기 때문에 당대 무속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현상으로 비판된다. 흥미로운 것은, 당대 무속 현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는 별도로, 음사나 미신으로 비판되던 무속을 단군과 연결시켜 설명하는 관점이다, 아직 그 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무당내력』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저자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무당내력』은 고도서본과 가람본 모두 저자가 ‘난곡(蘭谷)’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난곡이 누구인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대 박물관에 소장된 ‘隈壘戱(꼭듸각씨)’도를 보면 난곡이 인명이 아니라 지명으로 나타난다. 꼭두각시 놀이의 유래를 밝힌 말미에 ‘時辛卯仲秋之節破睡於蘭谷靜窓下’라는 글귀가 나온다. 여기서 난곡은 인명이 아니라 지명을 말한다. 난곡은 조선시대 시흥의 난곡이자 지금의 서울 관악구 난곡동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무당내력』의 난곡은 인명이 아니라 지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의 거주지를 호(號)로 쓰는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이 경우 난곡에 사는 거주자가 『무당내력』을 작성했다고 봐야 될 것이다. 『무당내력』이 단군을 중심으로 무속과 무당의 기원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그 저자는 무속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단군 신앙과 관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흥미롭게도 시흥은 정훈모의 단군교가 세운 단군전이 있던 곳이다. 1910년 대종교와 분립한 정훈모는 1930년 안순환의 도움으로 시흥 녹동서원 곁에 단군전을 세우고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그러다가 1936년 일제의 강압으로 단군전이 폐쇄되고, 단군교도 해체된다. 광복 후 1948년 단군전 봉건회가 조직되어 단군전이 중건되고 이시영의 휘호와 함께 김은호 화백이 그린 단군 영정을 봉안하였다. 이후 단군전 봉찬회를 중심으로 봄가을로 제사를 지낸다. 1948년 단궁 영전 봉안 때 이성천 장군이 참석하는 것으로 미루어 해방 이후에 시흥 단군전은 대종교 지부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다시 6.25로 폐허가 된 단군전을 1961년에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해 복구하였다. 그러나 개발 붐을 타고 1981년에 단군전이 헐리고 그 자리에는 단군빌라가 들어섰다. 현재는 단군빌라 입구 오른쪽에 단군전 터 표석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처럼 시흥 난곡은 단군 신앙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 또한 꼭두각시도에는 난곡이 지명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단군을 중심으로 무속을 파악하고 있는 『무당내력』의 저자 난곡과 시흥 난곡과의 관련성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천절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무당내력』을 보다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단군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시흥 단군전 터도 마침 연구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한번 찾아가 봄 직도 할 것이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
최근 논문으로 <일제의 무속 규제정책과 무속의 변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무속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비교: 접신(接神)체험과 신(神)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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