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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어로서 희생제의라는 말이 지닌 문제점

 

 

 

 

 

 

 newsletter No.436 2016/9/20

 

 


종교학이 다루는 분야 가운데 의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희생제의’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희생제의는 서구어 ‘sacrifice’를 번역한 말이다. 의례 연구 영역에서 희생제의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주제이다. 조너선 스미스는 의례 연구자들이 의례 이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가장 선호 하였던 의례가 희생제의, 신년의례, 남성 성년식 세 가지인데, 그 중에서도 동물 희생제의가 최고로 주목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해서 도출된 희생제의 이론들은 종교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소한 문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한국에서 ‘sacrifice’를 희생제의로 번역한 배경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살펴볼 일이겠지만 이러한 번역은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중국의 경우는 ‘sacrifice’를 ‘祭祀’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현재 희생제의라는 용어가 거의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상은 오히려 특수한 사례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희생(犧牲)이라는 말은 원래 동아시아 세계에서 늘 사용되었던 용어였다. 가령 《예기》에는 희생이란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의미는 제사에서 신들에게 바치기 위해서 도살되거나 그럴 예정에 있는 동물을 가리켰다. 아마도 ‘sacrifice’와 ‘희생’이 번역의 과정에서 만나게 된 것은 전자가 동물 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학 사전이건 전문 연구서건 ‘sacrifice’를 다룬 책들을 보면 살아 있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용어의 정의를 정확하게 내리기 위하여 골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 말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초자연적 존재와 공물과 공물 제공자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sacrifice’는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누군가가 공물을 바치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초자연적 존재에게 바치는 공물은 살아 있는 생물에서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바치는 공물은 신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본질에 변형이 가해져야 한다는 조건이 첨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성화의 과정이 반드시 동물의 도살과 같은 생명의 파괴 행위에 국한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공물의 성화는 도살 이외의 방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sacrifice’의 번역어로 선택된 희생제의란 말은 원어의 함의를 제대로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희생제의란 말에는 살아 있는 동물을 살해하는 행위라는 의미가 너무 진하게 내포되어 있다. 엄밀히 말해 ‘희생’은 ‘sacrifice’로 일컬어지는 의례에 포함될 수 있는 하나의 요소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제사라는 말이 번역어로서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제사도 완전한 번역어로 볼 수는 없겠지만 희생제의보다는 자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공물의 범위나 신성화의 방법이 훨씬 더 넓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이글이 ‘sacrifice’의 번역어를 제사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번역어가 발산하는 함의가 원어의 본의를 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sacrifice’라는 의례에서 ‘희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오죽하면 이 말의 번역어로서 희생제의가 채택되었겠는가. 하지만 양자를 동일시할 경우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오로지 살아 있는 존재를 죽여서 신에게 바치는 행위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엊그제 자신이 정성을 다해 올린 차례나 재(齋)가 그것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논문으로 〈종교와 문자: 상대 종교적 매개로서 갑골문의 본질과 기능〉, 〈갑골문에 나타난 상대 후기 사전 체계에 대한 고찰: 주제(周祭)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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