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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16호-예술사를 가르치는 종교학자의 변명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 4. 3. 16:26

 

예술사를 가르치는 종교학자의 변명

            


          
       news  letter No.516 2018/4/3            

  

 

 

 


       재직 중인 학교의 문화콘텐츠 관련 학과에서 몇 년 전부터 <예술사와 문화콘텐츠>라는 수업을 맡아오고 있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대개는 한 달쯤 지나 한창 중세예술을 강의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이런 변명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니까 이게 꼭 내가 종교학을 해서 그런 게 아니고요. 본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사라는 게 고대와 중세는 물론 근대에 한참 접어들어서조차도 종교예술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어서 그래요.’ 라고. 굳이 이런 변명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수업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엔가는 거의 반사적으로 꼭 이 말이 튀어나온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당장 시작부터가 그렇다. 시작은 선사시대 동굴벽화다. 알타미라(스페인, 1만8천 년 전), 라스코(프랑스, 1만7천 년 전),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견된 쇼베(프랑스, 3만 년 전). (그냥 예술사만 공부하며 가르치기도 벅찬데, 콘텐츠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해서, 콘텐츠 발굴 노동이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라스코는 공식 홈페이지의 기발한 VR 서비스가 있고, 알타미라는 동굴 발견자의 실화를 다룬 영화가 있으며[휴 허드슨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 파인딩 알타미라>, 2015], 쇼베에 관해서는 3D 다큐 영화가 있다[베르너 헤어조크 감독, <잊혀진 꿈의 동굴>, 2013]. 게다가 그 노동은 으레 놀이와 섞이기 마련이어서 노동-놀이 시간에 제한이란 게 없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이 동굴벽화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의 한 축에는 주술-종교가 있다. 내가 ‘하나의 축’이라고 쓴 것은 다양한 해석들이 사실 서로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벽화들은 그저 심심풀이 낙서였을 수도 있고, 창작의 열정으로 가득한 작품이었을 수도 있고, 모방주술로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던 흔적이었을 수도 있고, 생명의 신비와 소멸의 공포 앞에서 인간에게 죽임 당한 동물들의 넋을 기리던 종교성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을 우리 맘대로 이 중 어느 한 측면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구석기인들과 우리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으며, 그들도 우리처럼 구획 불가능한 삶의 복합적 총체를 살았을 뿐이다. 동굴벽화는 놀이, 예술, 주술, 종교가 뒤섞인 복합적 산물이고, 크게 묶자면 놀이-예술 그리고 주술-종교의 두 축으로서, 어느 한쪽으로 환원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는 어떤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인 초기 신석기 시대. 권력과 생산이 집약된 도시도 아직 없고, 농경조차 출현하지 않아 주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대에 세워진 이곳의 신전들은 ‘농업 출현, 잉여생산물 집적, 권력 집중, 도시 출현, 제도종교 성립’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통상적 역사 이해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최초에 농업이 있었던 게 아니라 종교가 있었다. 물론 최근의 새로운 발굴이 초보적 도시라 할 만한 동시대 주거지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하고 있어서, 괴베클리 테베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가 산물이 아니라 원인일 수도 있고, 혹시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득한 과거에 종교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중요한 핵심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수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 건너뛰고, 두 가지만 더 이야기해 보련다. 기왕에 괴베클리 테베 이야기를 했으니 건축만 좀 더 살펴보자. 이집트의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그리스의 파르테논 같은 신전들을 거쳐 중세 교회건축에 이르면 서양 건축사는 정점에 이른다. 바로 고딕성당이다. 고딕성당이 관광콘텐츠의 핵심인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흥미로운 건 콘텐츠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과 더불어 프랑스 고딕의 양대 걸작 중 하나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과 관련해서는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혁명으로 훼손된 대성당의 복원기금 모금을 위해 집필한 소설, 이를 각색한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풍부한 문화콘텐츠가 존재한다. 그리고 최근의 콘텐츠로는 게임 타이틀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2014. 본편으로 8번째 작품. PS4/XBOX/PC)가 있다. 최근 실사영화로도 제작된 이 게임은 스틸액션 장르의 스릴 넘치는 미션도 미션이지만 무엇보다도 정교한 그래픽 덕분에 마니아층이 꽤 두터운 게임이다. 특히 <유니티>의 주요 무대 중 하나가 바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인데, 게이머는 캐릭터를 조종해 대성당 안팎을 자유자재로 누빈다. 캐릭터는 지하밀실에도 들어가고, 외벽을 타고 올라 옥상에도 올라간다. 게다가 대성당 그리고 그 앞의 마을과 저자거리는 바로 프랑스혁명 당시의 모습이다. 현실 속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들이고, 오직 게임 속에서만 가능하다. 사실, 이 소재를 다루면서 정말 하고픈 이야기는 게임과 현실과 가상이라는 주제인데, 아직 공부가 짧기도 하고 이 수업에서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러지는 않고 있다. 어쨌든 이 게임이 그토록 뛰어난 비주얼을 자랑할 수 있게 된 핵심에는 베르사유 궁전이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중요 건축물들이 있고, 그 중 단연 으뜸은 대성당이다.


       종교학자로서 어딘지 찜찜하다. 그렇다. 모두 ‘서양예술사’ 이야기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지나친 과욕이었던 ‘음악사’(역시 서양음악사) 내용을 과감히 덜어낸 대신 ‘동양예술사’를 약간이나마 포함하기 시작했다. 마침 서양예술사에 국한하지 않는 꽤 괜찮은 교재를 새로 발견하기도 했고 (데브라 트위트 외, <게이트웨이 미술사>, 이봄, 2017). 시간이 유한한지라 인도, 중국, 일본의 일부 사례를 다루는데, 어쩔 수 없이 친숙한 레퍼토리다. 타지마할, 왕몽의 <갈치천이거도>(치천은 갈홍의 字), 그리고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판화인 후지산 36경 중 <가나가와 해변의 큰 파도>. 각각 이슬람, 도교, 불교라는 종교를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쯤 되면 굳이 변명할 필요가 없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자꾸 변명을 하려 든다. 내가 꼭 종교학을 했기 때문에 예술사 수업의 절반 이상을 종교예술로 채우고 있는 게 아니라는 변명을. 그저 소심한 탓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예술사에서 종교를 치우면 고대와 중세 예술사가 통째로 사라지고, 근현대 예술사에서도 상당 부분이 사라진다. 사실상 남는 게 없다. 예술사에서 종교는 그만큼 중요하고 절대적인 핵심이다. 그래서이다. 소심한 게 아니라 너무 겸손해서이다. 겸손도 지나치면 병이다. 무엇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문화에서 종교를 빼고 과연 무엇을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제 조금은 덜 겸손해지고 싶다.

 


김윤성_
한신대 인문콘텐츠학부 부교수
논문으로 <브루스 링컨의 방법테제 분석>, <탈가부장적 신화 읽기의 전략들: 텍스트의 전복, 해체, 확장>, <자살과 종교, 금지와 자유의 아포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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