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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24, 그리고 UFC
news letter No.602 2019/11/26
24는 2001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다. 2005년에 한국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고, 지금도 어렵지 않게 구해볼 수 있다. 한 시즌이 24회인데, 한 편의 내용이 한 시간 동안 일어난 것이므로, 모두 하루 동안 벌어진 일로 구성되어 있다. 드라마의 방영 시기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내용에서 9.11 참사가 미국인에게 불러일으킨 위기감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은 테러와 맞서 싸우는 조직의 정예요원, 잭 바우어인데, 테러범을 막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다. 테러리스트의 핵폭탄으로 수백만의 미국인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이’들이 고문을 금지하고 인권을 지킨다고 떠들면서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린다. 시청자인 우리는 당연히 주인공 편에 서서 그런 자들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몰지각한 이상주의자를 비웃게 된다. 24의 분위기가 그렇다.
이 드라마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기 힘들 만큼 중독성이 있다.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데도 나 역시 밤잠을 설치며 본 적이 있어서 도대체 이토록 끊기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믿고 안심할 만한 이가 없으며, 누가 “우리 편”인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은 “우리 편”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는 자도 직접, 간접적으로 적(敵)의 편에 가담하여 주인공의 뒤통수를 강타하기 때문이다. 바우어가 속한 조직, CTU(Counter Terrorist Unit)의 책임자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대통령까지 바우어를 배반하여 그를 위험에 빠뜨리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의 주인공, 잭 바우어는 오직 자신의 힘만 믿고 혈혈단신으로 곤경을 뚫고 나가야 한다. 잭 바우어만 빼고 “좋은 편”은 그가 죽는 순간에야 비로소 알게 될 정도다. 우리는 테러를 막기 위해 혼자 뛰어다니는 그를 한편으로 불안하고 애처롭게 여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숭배하면서 시청(視聽) 사수(死守)하게 되는 것이다. “민나 도로보데스”가 유행하던 80년대에도 이 정도로 주인공이 모든 고통과 책임을 감내하면서 혼자 뛰게 하지는 않았다.
UFC는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의 약자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본부를 둔 종합격투기 단체다. 케이블 방송에서 정규적으로 UFC 시합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어서 우리도 볼 수 있으며, 적지 않은 규모의 열광 팬이 있다. 얼마 전에 트럼프도 뉴욕의 경기장에 가서 관람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폭력성 때문에 추방 캠페인이 벌어졌던 초기의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UFC가 미국 주류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이종격투기가 다른 종류의 무술끼리 겨루는 것을 말한다면, 종합격투기는 같든 다르든 모든 종류의 기술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꺾는 것이 목적이다. 초기에는 온갖 무술이 등장하였으나 지금 주로 사용되는 것은 복싱, 레슬링, 무에타이, 주짓수 등 네 가지 무술이다. 팔각형의 싸움터에 올라온 두 선수는 5분 한 라운드를 3라운드 혹은 5라운드 동안 뛰게 되는데, 판정까지 가는 경우보다 그 전에 승부가 K.O나 T.K.O로 끝나는 것이 더 많다. 타격을 당해 선수가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실신해 버린다거나, 피칠갑의 끔찍한 모습을 공중파에서 실제로 보는 일은 아마도 이런 종류의 시합 이외에 없지 않을까 한다. 심판이 주로 하는 일은 상대방을 기절시켜 놓고도 돌진해서 재차 가격하는 선수를 말리는 것이다. 옥타곤의 철장에 갇힌 채, 이렇듯 두 명의 싸움꾼은 살기등등한 눈빛과 몸짓을 하며 상대방을 거꾸러트리기 위해 서로의 몸을 혹사한다. UFC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이빨로 물기나 눈 찌르기 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공격 방법이 용인되어서 그야말로 마구잡이 혈투를 벌였다. 체급도 구분되지 않았고, 박치기와 국부 타격도 금지되지 않아서 붙는 순간,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UFC가 유행하기 전에 한국에서 인기 있던 것은 서서 손과 발을 사용해서 싸우는 K-1 시합이었다. 지금 보면 K-1이 UFC보다 덜 폭력적이었다고 하지만 그때 기준으로는 충격적인 장면이 꽤 많았다. 복싱에서는 일찌감치 심판이 제지하여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K-1에서는 항시 등장했던 것이다. 링 안에서뿐만 아니라, 링 밖에서도 놀랄 일이 적지 않았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앤디 훅(Andreas "Andy" Hug: 1964-2000)의 갑작스런 사망이다. 그는 K-1에서 매너와 실력이 뛰어나서 인기를 독차지한 스위스 선수였다. 그런데 경력의 정점에 있던 나이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다음 날 사망하였다. 팬들은 이소룡이 죽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비리비리 연약하고 비겁한 우리보다 씩씩하고 용감한 그가 더 오래 버텨줄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가 속으로 골아서 죽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망치같은 타격을 일단은 튼튼해 보이는 그의 근육이 받아주겠지만, 계속 도끼질이 계속되면 창자 속이 곯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멋진 매너를 보이기는 했으나 그도 상대방에게 패대기 질을 했으니, 아무도 탓할 수는 없다.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대며 그는 가속도로 소진해 간 것이다.
UFC 시합을 보고 있으면, 싸우고 있는 선수들이 금생의 인연으로 만난 것 같지만은 않다. 그들은 전생에서 풀어야 할 복수의 매듭을 남긴 이들처럼 싸운다. 심야에 그들의 싸움박질을 보고 나서 흥분상태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도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없다. 잠 못 잘 줄 알면서 도대체 왜 넋을 잃고 보는 것인지...
‘미드’ 24와 UFC 시합은 픽션의 세계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24의 잭 바우어는 오래 살지 못할 테지만, 그를 연기한 키퍼 서덜랜드(Kiefer Sutherland: 1966-)는 아마도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우던 UFC의 선수들도 심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타격을 거둬들이며,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서로 덕담과 포옹을 한다. 하지만 24와 UFC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잭 바우어와 같은 스트레스와 UFC 시합의 격투는 픽션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것은 그들의 일상이며, 그들이 탈진상태에서 벗어나기는 난망이다.
모든 책임은 그들의 어깨 위에 얹혀 있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바랄 수 없다. 암에 걸려도 그의 책임이고, 걸린 암이 낫지 않는 것도 그의 탓이다. 긍정적인 마음 자세를 가지면 암도 극복할 수 있다는데, 대체 어떤 불순한 마음을 가졌길래 낫지 않는 것이냐? 남 탓하지 말고, 마땅히 “내 탓 내 탓”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24의 키퍼 서덜랜드와 포옹하는 UFC의 선수들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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