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죽음
newsletter No.650 2020/11/3
언론보도*에 의하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보통 사람이 죽었을 때 통과하는 장례 절차에 따른 통상적인 죽음 처리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고 한다.
죽음이 다가올 때 코로나19 환자와 가족은 일반적인 임종의 과정을 갖지 못한다. 임종은 죽어가는 자와 산 자가 나누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이다. 코로나19 환자의 경우, 감염이 우려돼 가족은 방호복을 입거나, 격리병실 창을 사이에 두고서 또는 병실 카메라 화면을 통해서나 환자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임종처럼 가족과 환자 사이에는 직접적인 만남이나 인사가 불가능하다. 가족들은 거리를 두고 그저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한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염습의 과정이 생략되어 수의를 입지 못한다. 감염의 위험 때문에 병실에서 입고 있던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의료용 비닐팩에 밀봉된 채 그대로 입관된다. 가족들은 입관 과정에 참관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사망한 환자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 환자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다. 떼를 써서 유리문 밖에서 겨우 돌아가신 엄마의 얼굴을 겨우 3초간 볼 수 있었다는 코로나19 사망자 가족의 절규는 안타깝기만 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장례 과정과 화장의 과정이 뒤바뀐다는 점이다. 보통 사망자 시신의 화장은 24시간이 지나야 허용되지만,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24시간 이내에 화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사망한 지 하루도 되기 전에 장례 절차 없이 화장 처리가 되어 그 유골만 가족에게 전달된다. 가족은 화장장까지 사망자와 함께 동행하지도 못한다. 사망자와 가족은 분리되어 각기 따로 화장장에 가야만 한다.
장례도 치르기 전에 소중한 가족의 유골을 받아야만 하는 유가족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죽은 자를 위한 일반적 장례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장례식을 치르지 않거나 영정 사진 옆에 유골함을 모시고 장례식을 치르기도 한다.
이처럼 코로나19 사망자의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가 철저히 분리된 채 처리된다. 이러한 죽음 처리의 과정은 남은 가족에게 죽은 가족을 일반적인 장례 절차를 거쳐 제대로 떠나 보내지 못했다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통상적인 장례 절차에서 망자와 가족은 분리되지 않는다, 가족은 임종부터 발인까지 망자를 직접 보고 만지며 망자를 향해 말을 건넨다. 마지막 발인의 순간도 가족은 망자와 함께 한다. 코로나19 사망의 경우 망자와 가족은 임종부터 분리되기 시작해서 화장되어 유골이 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유골이 되어서야 망자는 가족과 만난다.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은 죽음 자체로 불행한 사건이지만, 온전치 못한 죽음 처리 과정으로 더욱 불행한 죽음이 된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불행한 죽음으로 여겨지는 죽음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사고나 타살, 전쟁 등에 의한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이미 불행한 죽음이다. 이 죽음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죽음 이후의 과정이다. 이러한 죽음의 경우, 일반적인 죽음처럼 기족과의 충분한 만남의 과정을 통해 죽은 자를 떠나보내기 어렵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가족과 함께 하는 죽음 처리의 과정을 거치기 어려운 죽음의 대표적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불행한 죽음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 안타깝다.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 여부는 죽음을 수용하고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달려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
* 〈비닐백 속 엄마 시신 본 시간은 3초였어요〉, 《국민일보》, 2020.03.24.
〈CCTV 임종, 유리벽에 “사랑해”…속수무책 가족을 보내며〉, 《한겨레》, 2020.10.17.
〈코로나 마지막 길 배웅하는 단 한 사람 “가족이 못 보시니…”〉, 《한겨레》, 2020.10.17.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
논문으로 <일제의 무속 규제정책과 무속의 변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무속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비교: 접신(接神)체험과 신(神)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