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여행
newsletter No.647 2020/10/13
십여 년 전에 누군가로부터 권유를 받고 약속한 일이 한 가지 있다. 조선 천주교의 초대 대목구장이었던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의 평전을 쓰는 것이었다. 행적이 다 밝혀지지 않았다, 사료를 더 수집해야 한다,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나 자신의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 등등 핑계를 대면서 미루다가 드디어 올 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되었다. 브뤼기에르 주교와 주변 인물들이 남긴 편지들도 번역하면서 평전을 조금씩 써 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 하도 글이 안 쓰여져서 도대체 평전이란 무얼까, 모름지기 평전은 어떻게 써야 하나 등을 고민하다가 여러 평전들을 빌려서 읽었다. 바울 평전, 김수영 평전, 구마라집 평전, 에라스무스 평전, 마르셀 모스 평전, 심지어 모택통의 부인 강청 평전까지. 하워드 아일런드와 마이클 제닝스가 쓴 발터 벤야민 평전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여행에 대한 통찰이다.
벤야민은 19세 때인 1912년에 오순절 방학(5월 24일~6월 15일)을 맞아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온다. 그 전까지는 언제나 가족 동반 여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벤야민의 아버지는 아들을 성인으로 대접하려는 것이었을까? 학교 친구 두 사람과 떠나는 외국 여행을 허락하였다. 이에 벤야민을 비롯한 세 사람은 이탈리아로 갔다. 괴테 이후로 독일 사람에게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보다.
벤야민은 밀라노, 베로나, 베네치아, 파도바 등을 다녀오고 「나의 이탈리아 여행: 1912년 오순절」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 속에는 이런 말이 들어 있다. “이 여행은 내가 이제 쓰게 될 일기로부터 존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일기에서 원하는 것은 교양여행(Bildungsreise)의 요건이자 본질인 그 묵묵하고도 자명한 종합이 저절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번역 문장은 이상야릇하지만, 나 나름대로 이해를 하고 넘어갔다.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로 여행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기록하는 행위에 의해서 여행은 비로소 현존하게 된다. 나아가서 여행기를 써야만 그것은 진짜 여행이 되고 교양은 완성된다. 진짜 여행과 가짜 여행을 나눌 수 있겠는가만, 여행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여행의 참된 가치를 음미하기 어렵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지금 우리는 외국으로 가는 여행이 원천적으로 거의 차단당한 시절을 살고 있다. 나도 올해 계획했던 답사 여행들을 모조리 취소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작년까지 다녔던 곳들을 떠 올려 보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전화기에 저장해 놓은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는 일이 잦다. 벤야민 평전에서 여행기에 관한 언급을 읽으면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렇지. 이 참에 여행기를 쓰자.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곳들, 그곳에서 내가 보았던 것들, 그것들을 보면서 내가 떠올렸던 생각들, 이런 것들을 글로 적어서 모아 두자. 이것이 당분간 외국 여행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되겠다.
자기가 다녔던 여정을 꼼꼼하게 기록해두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국적인 사물을 접하고 그 감상을 그때그때 적어두는 사람은 더 드물다. 그러니 몇 년 전에 했던 여행을 되새겨 가면서 자기만의 여행기를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화기가 있지 않은가. 그 속에는 각자 수백 수천의 사진들을 담아둔다. 다행히 나는 전화기 안에 연도와 도시 이름을 적은 폴더를 만들어 해외로 답사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들을 따로 모아 두었다. 게다가 가장 최근에 갔던 외국 도시인 방콕에서 천주교 답사를 할 때에는 숙소로 돌아오면 자기 전에 낮 동안 갔던 곳, 만난 사람들, 방문하여 받은 인상과 성과 등을 간단히 메모해 두었다. 아쉬운대로 이런 것들을 활용하면 그때 그 기억들을 되살려서 여행기를 쓸 수 있다.
언제쯤 되면 외국을 다녀오는 답사 여행이 아무런 장애 없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앞으로 몇 년은 더 지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당분간 외국 갈 일은 없겠지. 방콕 답사를 시작점으로 하여 지금까지 내가 했던 답사 여행기를 차례차례 써 볼 계획이다. 여행의 추체험이면서 여행의 완성이라고나 할까.
방콕에 가서 천주교 답사를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불교 국가에 가서 무슨 천주교? 하지만 태국 천주교와 파리외방전교회는 설립연도가 같다. 파리외방전교회 설립자였던 프랑수아 팔뤼 주교, 랑베르 드 라 모트 주교 등이 1658년 아유타야 왕국에 처음 천주교를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200년 이상 된 성당이 방콕 시내에 다섯 개 있다. 그 중 하나인 성 십자가 성당(Santa Cruz Church)에는 1829년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으로 가는 것을 허락했던 당시 시암 대목구장 플로랑 주교의 유골이 제대 안에 봉안되어 있다. 나는 이 성당을 방문하여 직원의 도움으로 유골함을 직접 대면하였다. 방콕 여행기를 쓰게 되면 그때 그 느낌과 경험을 자세히 적어서 글로 남기고 싶다.
방콕 답사는 뜻하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방콕 시내에서 제일 오래된 무염시태 성당(Conception Church)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성당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성당 주변을 돌아보는데 집집마다 성모상이나 성화를 걸어두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당 근처에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사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담한 식당이 보이길래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밥값을 계산하다가 고개를 들어서 계산대 주변을 보고 흠칫 놀랐다. 거기에는 성모자 성화, 관우상 미니어쳐, 관음보살상, 불상, 불탑 모형, 예수 성심 성화 등등이 모두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집안의 안녕과 행복 그리고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식당 주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방콕 답사 여행기를 쓰면 「카오팟의 종교문화」라는 제목 아래에 내 경험담을 풀어낼 생각이다.
사실 외국을 다니는 종교 답사도 좋지만, 국내 종교 답사를 알차게 하면서 답사 여행기를 부지런히 쓰는 것도 해볼 말한 일이다. 외우(畏友)가 1년 동안 안식년을 보내면서 부지런히 종교 답사를 다니고 이를 적어서 책으로 낸 적이 있다. 감사히 받아 읽으면서 무척 부러웠다. 한국의 종교문화를 바라보는 안목이 높고 기억을 더듬어 현재와 연결짓는 솜씨가 뛰어나서 그랬던 것이다. 아직 나는 책을 엮을 정도의 내공을 쌓지 못했으니 일단 국내건 국외건 종교 답사를 다녔던 기억을 정리하여 부지런히 단상들을 모아 놓으려 한다.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올해 첫 눈이 오기 전에 마무리할 글로는 <초기 한국 종교학사 연구 서설>, <박해시대 조선대목구의 사제 양성과 신학교 설립>이 있고, 내년 벚꽃이 피기 전에 끝낼 글로는 <19세기 조선 천주교 교리서 성교요리문답 연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