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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함


 

newsletter No.655 2020/12/8




 



1.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도무지 수그러들 기미가 안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우리의 생활세계가 놀랄 만큼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거리두기’와 ‘모임 자제’를 요청 받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강제적인 ‘접촉-줄임(contact-lessness)’의 시대에 우리는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세계와 인간이 서로 밀접한 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세계내 존재들이 서로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인간의 이용과 편의를 위한 환경파괴가 가속화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빠르게 축소되었다. 그에 따라 갈 곳 잃은 야생동물이 인간과 접촉하게 되는 경우가 더 빈번해졌고, 야생동물이 보유하고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또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현대 인류의 생활방식으로 인해 전염병은 지역과 국경의 인위적 경계를 넘어 전 세계 인류에게 급속히 전파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우리의 인간중심적인 시야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동물’이, 인간이 파괴한 그들의 서식지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통해 비로소 조금씩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2.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야생동물의 서식지로서 숲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부각되고 있다. 나는 요즘 야생동물의 주요 서식지로서 숲이나 산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서 조금 더 나아가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1999년, 식물학자 완더시(James Wandersee)와 쉬슬러(Elisabeth Schussler)는 식물맹(Plant Blindness)이란 개념을 제안했다. 식물맹이란 식물종이 생물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흔히 식물종의 차이를, 심지어 식물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흔히 길가에 자리한 가로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며, 아파트 화단에 어떤 식물이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모두가 인간 활동의 배경일 뿐이다.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인공적인 사물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고, 유채꽃과 배추꽃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게 마련이다. 요컨대 현대인들은 점점 더 식물맹이 되어가고 있다.

3.


이 사진은 지난 가을에 가까운 산의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가서 찍은 것이다. 이 사진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에 왼쪽에 위치한 돌의 모양에만 시선을 빼앗겼다면, 당신을 식물맹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정의 거대한 바위 위에 키가 1미터도 넘는 거대한 돌이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모습은 놀랍다. 그렇지만 그 옆에, 흙도 거의 없는 바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뿌리를 내리고 푸르름을 자랑하는 식물의 자태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왼쪽의 돌에만 집중하고, 그 옆의 식물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식물은 지구상 인간이 거주하는 사실상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식물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현대인들은 식물을 망각한 문화 속에서 인간중심적, 혹은 동물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식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간과되고, 인간의, 혹은 동물의 배경으로서만 인식될 뿐이다. 심지어 뒤틀린 관계를 바로잡으려는 생태철학 논의에서조차, 식물은 다만 어디에나 있는 ‘배경’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짙다.

4.
세계산림자원평가(FRA 2020)에 따르면, 전 세계 산림면적은 약 40.6억ha로서, 전 세계 육지면적의 31%를 차지하지만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990년 이후 전 세계에서 4억2천만 ha의 산림이 파괴되었고, 2010-2020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 3.9백만ha, 남아메리카에서 2.6백만 ha의 산림손실이 일어났다. 먼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하동군과 기획재정부가 지리산에 산악열차와 모노레일 등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사업 추진 과정에서 막대한 산림훼손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인간이 식물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식물은 인간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래 소록도 서생리 마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가능할 것 같다. 사진은 소록도 한센인 마을 서생리를 찍은 것인데, 1990년대 초반까지 사람들이 살다가 주민 수가 줄어들면서 마을사람들이 인근 다른 마을로 이주하였다.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면서 인간들의 버려진 삶터에 빠르게 식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에 의한 비인간-자연의 파괴가 가속화되는 오늘날, 눈에 보이는 자연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식물의 존재론적 지위를 다시 고려하는 일은 실제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과거에는 숲의 생명력, 활기, 식물의 힘을 존중하며 성스럽게 여기는, 그리고 파괴하지 않고 보전하려는 신앙과 관습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져왔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존재론에서 식물은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생태위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동인이 있지만, 식물을 주로 수동적인 자원으로만 간주하는 세계관, 인간중심적 존재론은 식물에 대한 보살핌과 존중의 결여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자연 서식지 파괴라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그러한 세계관과 존재론에서 흔히 생명의 연속성은 무시되고, 인간, 식물, ‘동물’ 사이의 뚜렷한 단절이 가정된다.

식물은 지구상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이유는 식물 덕분이다. 또한 인간은 고대로부터 의식주를 위해 식물에 의존해왔다. 먹을 것, 입을 것, 집 뿐 아니라 우리의 공기, 연료(땔감) 등도 다 식물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숲과 나무는 비인간-동물이 삶을 영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인간이 없어도 식물은 존재 가능하다. 그러나 역은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식물에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식물과 ‘나’의 관계를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해볼 것을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유기쁨_
서울대학교 강사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등이 있고, 역서로《원시문화 1권, 2권》(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아카넷, 2018),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권~3권》(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 아카넷, 2012), 《문화로 본 종교학》(맬러리 나이, 논형,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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