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654호-백신 및 백신 거부에 대하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0. 12. 1. 19:52

백신 및 백신 거부에 대하여


newsletter No.654 2020/12/1

 




조만간 백신이 나오긴 나올 모양이다. 외신은 연말 되기 전에 우선 의료진이 접종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뉴스를 전한다. 백신에 대한 긴급승인과 입도선매에 관한 뉴스도 뜬다. 미국은 확진자 숫자가 하루 20만 명, 누적 1400만 명에 가깝게 치솟고 있어서 부랴부랴 백신 접종의 시기를 앞당기며 서두르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고 그 시행착오 여부를 살피면서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하루 확진자가 최근 100명에서 500명으로 증가하였고, 모임의 기회가 많아지는 연말이 코앞이므로 살얼음판이긴 마찬가지다. 자연적 집단면역의 방법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왕관 쓴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백신이 필요하다.


백신(vaccine)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암소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나왔다. 소가 병에 걸리면, 납작 동그란 반점에서 고름이 나온 다음에 딱지가 만들어지는데, 병의 이름이 천연두(天然痘)나 ‘스몰팍스’(smallpox)1)로 된 것도 이런 반점 모양과 관계가 있다. 천연두 백신이라면 1798년 에드워드 제너, 한국에선 1880년 지석영이 처음 실시하였다고 아는 이가 많지만, 실상은 중국, 아프리카, 터키 지역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이미 그 전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접종’이나 ‘inoculate’이란 말도 고름이나 딱지의 일부를 떼어내 미전염자의 피부에 접촉시키는 방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는 나무의 접붙이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우두법은 병에 걸린 소에서 걸리지 않은 인간으로, 인두법은 병에 걸린 인간에서 걸리지 않은 인간으로 질병을 감염시키는 것인데, 우리 몸이 감당할 만 수준으로 병원균을 약화한 다음에 주입한다는 점에서 자연 감염과 차이가 있다. 약(藥)은 독(毒)이고 독은 약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해당되는 경우이다. 중요한 점은 “독과 약이 어디에서 나누어지는가?”일 것이다. 약 자체, 독 자체는 없다. 약이었다가 독이 되기도 하고, 독이었다가 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핵심적인 문제는 약-독, 독-약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지점과 그 조건을 아는 일이다.

백신에 거부감을 느끼고 백신 반대 운동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 19세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우두법처럼 소에서 인간으로 감염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인간이라는 종의 존엄성이 위험해진다고 보기도 했고, 인간과 금수의 차이를 무시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해당 문화의 기존 경계선을 침범하는 것에 관한 강한 혐오의 감정이 스며있다. 식민지 권력의 강압에 맞서 폭동이 일어나는데 주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백신 반대 운동은 한 가지가 아니다. 몸이 처해 있는 정치적 조건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의 반대 운동은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니,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 그리고 인위적으로 독소를 주입하는 ‘자연스럽지 않은 폭력’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주요한 자세이다. 1998년에 MMR 백신 스캔들이 일어나 한동안 반대론자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 소동은 홍역, 볼거리, 풍진에 대한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으나, 2011년 거짓으로 판명이 나면서 끝났다.

피부의 경계선에 따라 안팎을 나누고, 내 몸에 대한 권한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근대성의 주요한 성격이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 문제는 역시 얼마큼이냐는 정도이다. 미덕도 지나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그것을 해치는 결과를 빚게 되는 것이다. 약과 독의 이동처럼, 삶을 보호하는 것과 부정(否定)하는 것은 수시로 이동한다. 자기 몸의 자치성을 주장하며 백신을 거부한 결과, 다른 몸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면 이미 그것은 사회적인 독이 된 것이다. 다행히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경우라면 백신 거부자는 백신 맞은 이에게 의존해서 자신의 건강을 지킨 셈이니 기생(寄生)적인 삶을 산 것이다. 사실 인간 모두 사회적으로 서로 빚지고 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기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각자의 건강은 다른 이의 건강에 달려있는 것이다. 자기 몸의 권한을 강조하는 백신거부자의 주장은 이쪽을 보는 대신 다른 쪽만 보고 있는 셈이다.

산업화가 만들어내는 자연파괴와 독소 배출을 비판하고, 자연스런 조화의 생태계적 삶을 희구하면서 백신을 의심스럽게 보는 관점 역시 반쪽만 본다. 이런 관점에서 백신은 자연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고,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질서의 경계선을 흔들어댄다는 점에서 불결하며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 하지만 백신 거부자가 그리고 있는 순결함과 깨끗함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더럽고 오염된 상태에 있으며,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 예컨대 태어날 때부터 우리 뱃속에는 온갖 세균이 득실대고 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은 바이러스와 같이 살지 않겠다고 한다면 곧바로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깨끗하고 순수한 것도 적당한 수준을 찾아야 한다.

자기 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내세우는 주장에는 미덕이 있다. 하지만 자기주장에 포로가 되어 이웃의 다른 취약한 몸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면 그것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추함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가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질식하고 있는 현재, 오염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판타지가 지나칠 경우에 자기면역 증상이나 알레르기와 같은 자기파괴의 작용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백신은 우리 몸에 이질적인 독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 독이 내뿜는 기운은 우리 몸을 각성시키고, 삶의 기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모든 독에 대한 전면적 전쟁을 선포하고 독을 박멸하겠다고 선동하는 일은 자기파멸적인 효과만 가져온다. 독을 없애려 드는 것은 전쟁애호가의 위험한 짓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독과 약의 전화(轉化) 조건을 알고, 우리 몸의 약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이 서로 뗄 수 없이 얽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서로 빚지면서 살고 있다는 것은 왕관 쓴 바이러스가 횡행하는 시대에 절감할 수밖에 없다.




---------------------------------

1)큰 뾰루지(‘great pox’)는 바로 매독이다.

 

 



 







 


장석만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근대성의 이면(裏面)’으로서의 점복, 그리고 그 너머>, <‘종교’를 묻는 까닭과 그 질문의 역사: 그들의 물음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던지는가?>, <인권담론의 성격과 종교적 연관성>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 근대종교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