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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41호-영성 개념의 확산과 한국적 영성의 이해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8. 23. 17:55

영성 개념의 확산과 한국적 영성의 이해


news letter No.741 2022/8/23

 


          


      올 4월 한종연의 종교문화포럼에서 ‘불교에서 영성의 의미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최근 영적 지성으로서 영성이 학계의 주목을 받는 주제라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줌(zoom)포럼에 참여했다. 필자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한국학 전공 교수인 돈 베이커(Don Baker)가 논한 적이 있는 한국인의 영성(Korean spirituality)을 화두로 삼고 고심하던 차에 한 수 배움을 기대하며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면서 영성에 대한 공통된 이해는 고사하고 서로 간에 소통마저도 쉽지 않았다. 필자는 왜 그런 사태가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한국 사회의 ‘영성의 의미’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영성이라는 말은 이미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고 있지만, 이글은 가능한 한 종교적 평면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이번 포럼의 논의 과정을 보면, 영성이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영성에 대한 이해나 관심의 차이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필자가 보기엔 무엇보다도 활동 영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영성의 의미는 넓고 깊다. 내면 깊숙이 있어 정말 보이지 않는다. 과거 종교성과 같은 의미로 쓰였던 영성은 오늘날 그 종교성을 포함해 인간 내면의 근원적 실재나 가치에까지 확장되어 있고, 그 발생지인 기독교[정신=영혼]를 넘어서서 현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걸쳐 있는, 잡히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영성 개념은 인간의 삶에 대한 정신적 태도나 행위 그리고 인간 자신이 가지는 내면의 힘으로까지 아주 일반적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그런 마당에 특정한 입장만을 가지고 영성 전반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추상적인 영성의 의미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유용성을 가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 영역의 영성 개념이 다른 영역에서 소통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영성이란 말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개념이다. 우리는 영성을 물질과 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애니미즘과 같이 물질에도 영성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는 점을 고려하면 반드시 그렇게만 한정할 수도 없다. 또한 영성을 종교보다 덜 제도화된 것으로 보고 신앙적인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영성을 종교의 핵심이나 최고의 이상으로 간주하는 신비주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영성은 종교의 영역을 넘어 여러 비종교적 영역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현으로 등장하고 있는 만큼 종교현상만으로 한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성은 인간의 내면적인 삶과 그 문화적 실천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삶을 영위하는 영역에 따라 영성의 의미와 그 강조점이 다르게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종교의 영역에서는 서구와 비서구 종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래도 신앙생활과 연관되어 신앙의 경건성을 강조하는 반면, 문화의 영역에서는 탈근대를 반영한 개인의 순수한 영적 태도와 성향, 생명학에서는 우주 만물의 상호 의존과 우주 생명력의 탐구, 상담학이나 교육학의 영역에서는 영적 능력 회복과 인간의 정신력 고양에 각각 방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보편적인 영성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각 영역에서 영성 개념을 나름대로 구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영성이 지닌 이러한 의미의 난맥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성 개념의 역사는 물론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개념의 정착 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영성이라는 말이 본래 기독교의 spirituality의 번역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영성의 개념사와 함께 한국사회의 번역을 통해 이 개념이 정착해 온 과정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선 영성의 개념사부터 간단하게 살펴보자.1) 영성이라는 말은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 성령(聖靈)에 따라 사는 삶, 즉 수도원의 삶을 의미하며, 수도원 중심의 신비주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후 13세기에 이르면, 신학대학의 형성과 함께 이성을 기초로 한 스콜라 철학이 중세 기독교를 지배하면서 경험적인 차원의 영성과 이론적인 차원의 신학으로 진행된다. 15세기에 들어서면, 명상을 중시하는 영적 생활과 경건하고 검소한 삶을 강조하는 신경건운동(Devotio Moderna)이 세력을 얻으면서 교권의 권위가 영적 권위의 표준이 되었던 중세의 세계관을 뛰어넘어 개인적 경건과 영적 경험 자체에 의미와 권위를 부여하게 되고, 이는 하나님과 개인의 직접적인 관계, 즉 내면적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대 종교개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후 그 개념은 근대사회를 거치면서 크게 달라진다.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이미 내면적 신앙을 의미하던 영성 개념은 1950년대에 들어서면 크게 변화된다. 한편으로는 기독교 차원을 넘어 인간 개인적 차원의 의미가 강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와는 다른 종교 문화권과 현대 대중문화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신비주의와 영성, 그리고 종교와 영성은 강조점의 차이는 있었지만 신앙과 경험의 종교현상이라는 점에서는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르면 신비주의와 영성이 구분되는데, 전자는 의미가 축소되어 특정 종교나 초자연적인 것과 연계된 것인 반면, 후자는 유사한 영적 경험인데도 보다 현세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21세기로 접어든 서구사회의 경우 종교와 영성은 서로 대립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전자에서는 기성종교와 관련하여 제도, 위계질서, 도그마, 의례 등이 부각되었다면, 후자에서는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적 경험의 사적 영역이 더욱 강조된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 통용되고 있는 영성의 의미는 기존 종교전통의 제약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한다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나아가 종교보다 넓고 더 순수하고 근원적인 영적 지성의 의미로 장착한다.

     다음은 영성 개념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영성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용어를 번역한 것이며, 그 번역과 정착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생명 창조를 위한 영성의 고통? 예컨대, 근대사회의 형성과정에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종교 개념이 비서구사회에 상당 기간 동안 의미의 혼란[종교에 대한 가치평가와 서열화]을 초래했던 것처럼 근대에서 탈근대로 가는 여울목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영성 개념도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전통과 전통종교들 때문에 의미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기독교 토양에서 형성된 영성의 개념은 나름의 변혁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영성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서구 기독교의 특성, 즉 신앙대상인 유일신의 신성(神性)과 교계제도인 교회(敎會)다. 초월신과의 실존적 관계를 강조하던 영성을 전제해서 생각해 본다면, 신성은 신비주의에, 교회는 종교에 유비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종교는 신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종교이거나 설령 신중심이라고 하더라도 내재적 신성을 가진 종교들이다. 또 대부분 배타적인 교회 중심의 종교가 아닌 자연공동체 중심이거나 고객 집단의 종교들이다. 따라서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을 구속한다기보다 인간 내면의 가치와 심성(心性)을 발양(發揚)시킨다. 토착화를 거부한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한국종교는 본래 하늘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신인합발(神人合發)과 같은 신비주의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영성과 신비주의, 영성과 종교를 구태여 구분하지 않는다. 구분한다고 해도 서로의 길이 달라 새로운 의미를 규정해야 할 이유도 없다. 도리어 서구적 체취가 흠뻑 묻어 있는 기독교를 모델로 한 종교보다 더 근원적이고 보다 인간주의적인 ‘영적 추구의 영성’을 더 선호한다. 실제로 영성 개념은 종교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종교 일반 혹은 인간학에서 자신들의 영적 성향이나 능력을 설명하는 데 효과적인 개념 도구로 활용하고자 한다. 특히, 종교 자체나 특정 종교에 거부감이 있는 비종교인이나 이웃 종교인에게 인간의 본성, 즉 ‘영성’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종교단체에서는 신앙심 강화와 대중선교에 효과적이라며 영성이라는 말을 적극 활용하고, 영성단체에서는 자신의 영적 수련이 보편적인 인간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은 종교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

    한국인은 다양한 신적 존재나 영적 존재와 지속적인 교감을 유지하며 영적인 길을 위한 기도, 공부, 명상, 수행, 주문, 의례 등을 수행하고 있다. 다종교이기도 하자만 다양한 영성의 길을 인정하고 있다,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명(神明, 神靈과 氣運)들과 함께 하며, 불교의 불보살(佛菩薩)들을 삶의 현장에서 보신불(報身佛)로 직접 경험하고 교감한다. 이런 종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 한국인의 영성이다. 그런 한국인의 영성들은 유일신 혹은 초월신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단전호흡이나 기수련과 같은 영성 문화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최근 원불교, 천도교, 대순진리회, 증산도와 같은 한국의 민족종교들 또한 이 같은 영성담론에 적극 합류하고 있다. 이 또한 강력한 제도종교를 해체하고자 하는 동시대의 영성 문화에 적극 대응하고자 하는 한국적 사례가 된다.

    한국에서 선호하는 영성의 의미를 보면, 비물질적 실재와 가치들을 탐구하는 인간의 성향이나 능력, 혹은 우주나 세상에 내재하는 성품(immanent nature)을 인간이 경험하는 것이고. 또한 개인 존재의 가치와 본질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내적인 길(inner path)이기도 하고, 궁극적인 실재와 그것에 의해 살아가야 할 준칙으로서 가장 깊은 가치와 의미를 말하기도 한다. 이는 유일신의 신성(神性)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영성이라기보다 다양한 신과 인간이 이 땅에서 함께 공존하는 영성[神人共營]이다. 그런 영성은 하늘의 성품이 인간에게도 내재한다는 천성(天性)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서구와 같이 종교성과 영성, 신비주의와 영성을 엄밀히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영성을 논할 때 서구에서 형성된 영성의 의미들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필요에 따라서는 선택적 의미를 사용한다고 본다. 이를 볼 때, 기독교를 모태로 탄생한 영성 개념은 한국에서 제도종교의 전형(典型)을 보여주는 한국 기독교를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해체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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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하 영성의 개념사 부분은 우혜란의 <<한국민족종교문화대사전>>의 ‘영성’ 항목의 글을 필자 나름대로 발췌 재정리한 것이다. 글 의도와 다르게 재정리되었다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책임이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논문으로는 <한국종교의 이상세계론, 그 연구를 위한 시론>, <현대종교와 民族主義: 유신시대 (1972-1979)를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종교지형변화>, <동아사아 종교의 근대화과 그 한계- 동아시아의 민중종교를 중심으로->, <민주화시대 불교개혁운동과 그 한계>, <한국 신종교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와 과제>. <한국민족종교의 기본사상-단군, 개벽, 신명> 등이 있고, 편·저서로는 《한국 신종교와 개벽사상》,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책임편집),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책임편집), 《한국민족종교문화대사전》(책임편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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