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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51호-지금부터의 세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11. 1. 18:17

지금부터의 세계


news letter No.751 2022/11/1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압사’가 일어났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인간’을 주제로 글을 쓰려던 내게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는 뇌의 고정된 양을 넘쳐 불어난 충격이다. 압사 사건이 일어나기 수 시간 전에 나는 드디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침상에 누워있었다. 밤새 목은 타들어가는 듯했고 식은땀이 흘렀다. 모든 죽음의 결과가 동일하다고 해도 죽음에 이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압사’는 내가 이미 수십여 년 전에 근사 체험을 했었기에 타들어가는 목을 쓰다듬고 뉴스를 볼 때, 나는 숨이 짓눌리는 듯했다. 수년 전에 보았던 이태원 경리단길 주말 풍광과 인파로 가득하여 발 디딜 곳을 애써 찾아야 하는 인도 거리에서도 ‘압사’에 대한 두려움이나 기억은 없다. 그러나 1989년 교내 대동제 마지막 날 시위대에 눌려 압사 직전까지 갔던 숨 막히는 기억과 타들어가는 목 통증의 감각은 ‘지금부터의 세계’을 바라보는 정서적 기반이 되었다.

     "2019년 코로나 발생 후, “바이러스는 과연 생명체인가” 하는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이는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성장하고 침입한 바이러스를 통해 인류의 미래 사안을 예시한 물음이다. 또한 이 물음은 ‘바이러스’를 통해 인류의 생존 문제를 논의할 계기가 되었다. 인문학 안에서도 현재 인류의 상황을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영역 안에서 통찰하는 논제로 다루게 되었다. 결국 ‘코로나’라는 팬더믹은 국제질서와 세계 문화를 재구성하는 인류의 공통 현안으로 급격하게 제기되었다. 즉 ‘코로나 팬더믹’은 집단과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의 ‘한계상황’을 드러내고 인류의 실존을 ‘바이러스’라는 매개체를 통해 통찰하는 이슈가 되었다. (...) 코로나 시대의 인간성(humanness)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이 물음은 ‘이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문제 제기이며,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인류 앞에 선 초월자 신은 누구이며 그와는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묻는 것이다. 실존적 관점에서 우리는 ‘인류’라는 새로운 집합적 타자와 나의 한계상황 안에서의 관계 맺음을 통해 신을 인식하는 새로운 상황에 던져졌다. 이 상황 안에서 신학에서는 ‘코로나’라는 현실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논제가 주어졌다."

    윗글은 불과 18개월 전에 내가 조직신학회에 발표한 논문의 서두와 본문 중 일부다. 당시만 해도 생물, 미생물의 영역 분류도 명확하지 않은 ‘바이러스’란 존재가 인간 공동체의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했기에 학회의 주요 이슈도 ‘포스트코로나’ 였다. 그런데 포스트코로나 즈음에, 나는 백신을 네 차례나 맞고도 변이 바이러스에 잠식당하면서 신체적 고통을 느끼고 있다. 그런 와중에 수많은 인파가 한데 모여 숨을 쉬지 못한 채 눌려 죽은 압사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다. 마치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는 ‘동시율의 법칙’(Law of Synchronicity)처럼 말이다.

     코로나 시대에 인류는 생존의식과 함께 기술문명의 급격한 전환을 마주했다. 이미 인공지능과 전자화폐는 실재 사안으로 대두하였다. 또한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 등의 논의를 통해,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넘어선 ‘기계와 결합한 새로운 인간’ 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미래학계의 전문가들이 예견한 코로나 시대 이후에 등장하는 포스트휴먼, AI 문명의 도래 직전에 무력 전쟁 상황에서나 일어날 만한 대형 압사 사건이 일어났다. 인류의 각 세대는 그 세대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나 역시 내가 몸담아온 공간과 시대의 각 장에서 경험했던 지식의 축적과 기억을 통해, 지금의 사건을 재해석한다. 그렇다면, 인간 고유의 영역이었던 창작과 예술 작품 제작에까지 이르게 된 AI 는 지금 일어난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문제의식이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면, 인류사의 여러 사건을 학습한 AI는 이러한 ‘황당한 비참함’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지금 일어난 이 사건을 AI에게 어떻게 학습시켜야 할까. 괴테는 <파우스트>를 썼던 당시, 과거의 시간대적 사건을 뒤섞어 후대의 과거에서 그 이전의 과거를 바라보았다. 작품의 세계에서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신’의 자리에 있다. 후대의 인간과 공존하거나 인간의 일부로 들어와 공생하는 AI에게 인간 집단지성체역시 코로나 시대에 급격하게 제기된 생명체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지구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각종 전쟁과 정쟁 등의 사건을 읽어주어야 하는 책무를 지녔다.

     ‘하느님의 형상’(Image of God)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본 지난 시대에서 ‘인간의 형상’을 닮아가는 AI에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류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양상이 인류의 새로운 종교가 되는지 나는 묻고 싶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며 신에게 애원하는 인간의 기도가 “인간이여, 저희의 모든 과오를 너그러이 용서하시라”는 말을 반복하며 불가해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세계가 펼쳐진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부터의 세계’를 인지하고 만들어가는 우리의 실존의 자리이며, 현재 시점에서 소실점을 이어 바라보는 앞으로의 세계다.

 

 

 

 

 

 



 

 

 


최현주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문학 서적을 출간하는 Crossing Boundaries Publications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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