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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편지]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 절망감 속에서도 세계와 다시 연결되기

 

news letter No.800 2023/10/17

 

 

2023. 9. 23. 기후정의행진

 

 

1.

     몇 주 동안 이어진 심층생태학(Deep Ecology)’ 강의를 마무리할 시점에 짧은 글을 남깁니다. 그동안 우리는 네스(Arne Naess)가 제안한 자기 자신을 더 깊고 넓은 차원에서 생각해보기’, 세계와 나를 바라보는 깊이에서의 변화,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세계의 일원이라는 감각 되살리기 등의 주제를 여러 갈래로 변주해서 다루었습니다. 여러분은 처음에는 심층생태학이 적절한 전략인가, 이 노선이 옳은가 아니면 다른 노선을 택할 것인가를 따져가며 수업에 임하는 듯했지요. 나의 제안은, 하나의 노선 혹은 전략으로서 이 철학이 타당한지 접근하기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생겨난 맥락을 이해하고, 그 논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적용할 수 있는 점,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상황에 딱 들어맞는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한 학기 동안 다루게 될 다양한 생태사상과 철학의 갈래들은 저마다 약점, 한계와 함께 강렬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기 상황은 복잡다단하고 여러 층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생태철학 논의들은 저마다 세계의, 문제의 특정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살핍시다, 여러분.

 

2.

     심층생태학자 네스는 우리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어떻게 느끼는지 이 두 가지 물음을 좀 더 자주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가와 이 세계를, 이 시대를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것 사이에 명확한 선이 그어지지는 않습니다. 보통 이 시대에 대해서, 이 세계에 대해서 느끼는 것과 나 자신에 대해서 느끼는 것이 서로 어떻게든 연결되고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하여간 이러한 느낌에 대해서 좀 더 자주 물어야 하며, 이 느낌을 말로 옮기는 것은 번거로울 수가 있겠지만 느낌을 숨기면 거의 아무런 결실도 맺을 수 없다고 네스는 계속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네스는 감정생활의 지배적 음조라는 독특한 용어를 사용합니다. 가령 오늘 하루,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있었던 매 순간의 여러 가지 느낌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오늘 하루 있었던 느낌만 떠올려봐도 굉장히 다양한 단어들을 적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기쁨, 슬픔, 고마움, 설렘, 불안, 수치심, 지루함... 그런데 이런 것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불쑥불쑥 튀어나왔다가 샤샤샥 지나가는 것들이지요. 그렇지만 네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좀 더 바탕에 깔린 어떤 것입니다. 이것은 희미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느낌인데 거의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네스는 말합니다.

     자, 그러면 네스의 물음에 대답해봅시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 여러분이 이 시대에 느끼는 감정생활의 지배적 음조는 어떠한가요?

     과거에 수많은 근대적 지식인들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서 인류가 무한히 진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믿음이 사람들에게 배어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여러분이 느끼는 이 시대의 상황은, 나아가 여러분이 상상하는 인류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장밋빛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2023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경우에는 이른바 감정생활의 지배적인 음조가 조금 더 잿빛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주로 분출되는 감정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현대 한국인의 마음 풍경이라고 할까요, 몇 가지 단어가 떠오릅니다. 혐오, 분노, 불안, 열패감, 냉소, 우울 같은 것. 이와 관련해서 책도 여러 권 나왔지요. 한국인들의 감정생활의 지배적인 음조가 굉장히 어둡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어떤 절망감 같은 것이 한국 사회에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미세먼지처럼 스며드는 절망이라고 표현해봅니다. 개인적 수준에서는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생계의 불안정, 거주 불안정, 앞으로도 전망이 잘 안 보이는 미래를 생각할 때 생겨나는 절망감을 생각해볼 수 있겠고, 사회적으로는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여러 사건을 경험하면서 우리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느꼈던 슬픔과 절망감이 있었죠. 세월호의 수많은 승객이 구출되지 못하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느꼈던 사회적인 절망감 같은 것 말입니다. 그리고 지구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위기 상황이 굉장히 심각한데, 이것이 해소될 수 있는 전망이 잘 안 보일 뿐더러, 인류가 그것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는 불안감과 절망감 같은 것들이 마구 섞여서 벼랑 끝에 있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많은 사람이 미래가 없다고 느끼면서 인지 부조화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3.

     우리는 지난 시간에 네스가 제안한 대자아 실현(Self-realization)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협소한 에고(ego)가 사회적인 자아로 확장되고 또 생태학적 자아로 점점 더 확장되면서 진정한 자아실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죠. 이어진 토론에서 우리는 연결되고 연대하는 가운데 세계를 향해 확장되는 자아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오늘날의 위기 상황에 많은 사람이 오히려 축소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불안감, 위기감, 절망감 속에서 점점 더 협소한 에고 상태로 축소되고 사회적 고통, 생태학적 고통에 대해 마비되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과 행동의 괴리, 말과 실천의 괴리가 커질수록 심리적 마비와 축소는 더 심해지게 됩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그러한 마비와 축소를 오히려 부추기는 듯합니다.

     특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말과 실천의 괴리입니다. 무엇보다도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말과 실천의 괴리는 혼란을 넘어 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한국의 경우도 기후비상사태 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202065일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 중 226개 지방자치단체가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선포했다. [...]이후 924일 국회에서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어 한국은 세계에서 열여섯 번째로 국가 차원에서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가 되었다.

권희중, 신승철, 기후 전환 사회, 모시는사람들, 2022

 

     굉장하네요. 벌써 3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지자체와 국가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어떤 유의미한 노력이 이루어졌나요? 위기와 비상사태에 걸맞게 시스템의 변화가 일어났나요? 아니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말과 실천의 괴리를 목격하고 또 학습하면서, 우리의 자아는 그야말로 분열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분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한 논문을 읽었습니다.1) 전 세계 대학을 비롯한 많은 학술 기관들이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했지만, 그 안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논문에서 지적하듯이, 가령 대학의 경우 그 구성원들은 기후위기를 감지하고 있고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대학의 교육과정에는 그러한 위기감이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대학은 무사태평하게 돌아가고 있고, 그 저변에는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적 사유가 강력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변화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모두가 암묵적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기묘한 상황에서 학생이든 교직원이든 대학 구성원들은 분열된 자아를 경험하고 학습(?)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도 대학도, 이렇게 큰 위기 앞에서 우리가 확장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마비되고 축소되어 자기 자신의 작은 행복에 안주하고 안착하도록 부추기는 듯합니다.

     이에 대해 로라 혼(Laura Horn) 등은,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지속 가능한 대학을 건설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학술 기관에서 솔직한 토론의 장을 열고 문화적 금기(암묵적 침묵의 금기)를 깨자고 제안합니다. 저도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4.

     다시 우리의 문제를 바라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기후 난민들도 생겨나며 곳곳에서 사회적으로 생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절망감이나 무기력감에 빠져서 그것이 나를 휩쓸어 가도록 놓아두지 않고 어떻게 힘을 얻어서 살 수 있을까요? 심층생태학에서는 기쁨으로 그리고 슬픔으로 이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길을 제안합니다. 지면의 제한이 있으니, 그 부분은 다른 장에서 좀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합시다. 다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이 시대를,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찬찬히 돌아보고, 여럿이 함께 둘러앉아서 그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보는 것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자기가 속한 어떤 장에서든요. 그것이 절망감 속에서도 세계와 연결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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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ierry, A., Horn, L., von Hellermann, P., & Gardner, C. J., “‘No research on a dead planet’: preserving the socio-ecological conditions for academia”, In Frontiers in Education  (Vol. 8, 2023).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educ.2023.1237076.

 

 

 

 

 

 

 

유기쁨_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
저서로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 다시 상상하는 세계의 생명성』,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등이 있고, 역서로 『대지에 입맞춤을: 당신이 먹는 음식이 기후변화를 역전시키고 당신의 몸을 치유하며 궁극적으로 우리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문화로 본 종교학』, 『원시문화』 등이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 「인간적인 것 너머의 종교학, 그 가능성의 모색: 종교학의 ‘생태학적 전회’를 상상하며」, 「‘병든 지구’와 성스러운 생태학의 귀환: 생태와 영성의 현실적 결합에서 나타나는 종교문화 현상의 비판적 고찰」, 「발 플럼우드의 철학적 애니미즘 연구: 장소에 기반한 유물론적 영성 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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