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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생각하는 크리스마스
news letter No.801 2023/10/24
나는 전부터 크리스마스에 관심이 많았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종교 기념일이지만 학문적 설명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느낌에 더 그랬다. 그래도 공부가 많이 되었던 1990년대 연구들이 있었다. 역사학에서는 미국에서 근대 크리스마스가 형성되는 과정을 풍부한 사료로 그려낸 니센바움(Stephen Nissenbaum)의 저서(The Battle for Christmas)가 있고, 인류학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크리스마스가 정착한 다양한 양상을 통해 이론화를 시도하는 밀러(Daniel Miller)의 작업(Unwrapping Christmas)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비교적 최근 책을 통해 이 주제를 차분히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대중문화를 연구해 온 종교학자 포브스(Bruce David Forbes)의 저서 〈크리스마스, 솔직한 역사〉(Christmas: A Candid History)는 대중서 외양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안에 학술적 논의를 꾹꾹 눌러 담은 특이한 책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주제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날의 주인인 기독교계가 보이는 이중적 태도가 있다. 교회는 현실에서는 가장 중요한 축일로 기리면서, 신학적으로는 현실 크리스마스의 세속성을 비판한다. 산타클로스가 선물 주는 날이 아니라 예수의 생일이라는 본래의 정신을 기리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설교는 매년 이 시즌에 반복된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성서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은 교회에서 더 잘 안다. 복음서는 넷 중 두 복음서에서만 예수의 탄생을, 그것도 전혀 다른 전승에 근거를 두고 언급한다. 그래서 성탄 전야 연극은 마태와 누가의 다른 스토리를 고통스럽게 꿰맞추어 구성된다. 그리고 12월 25일이라는 날짜와 관련된 언급은 전혀 없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예수와 관련한 중요한 주제는 죽음과 부활이고, 그를 기념하는 날도 그와 관련된 것이었다. 생일은 처음에는 관심 밖이었기에 4세기에 가서야 경축 되기 시작한다.
12월 25일이라는 날짜는 크리스마스가 철저하게 로마라는 배경에서 탄생하였음을 보여준다. 경작물을 거두어들인 겨울 초입에 펼쳐지는 농신제, 사투르날리아 축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그리고 어둠의 절정이 지나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짓날로 설정된 태양신의 생일에 크리스마스 날짜가 설정되었다. 직설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자료가 없어서 그렇지, 로마의 겨울 축제와 태양신 생일이 먼저 존재했고 그 위에 예수 생일이 덧씌워졌다는 정황은 명백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굳이 논하자면, 나는 연말의 겨울이라는 환경 조건이 이날의 의미를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음식을 나누면서 새로운 해를 준비한다는 축제적 성격이 크리스마스 역사의 기본을 이룬다.
종교개혁 이후 영미권의 청교도들은 이교도 축일 크리스마스를 금지하였다. 금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축제적 성격의 불온함이 신학적 엘리트에게 불편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18세기 미국에서 근대적 크리스마스의 창안이 시작되었다. 선물을 주고받는 가족 중심의 건전한 크리스마스가 기획되고 짧지 않은 기간 변화를 거듭해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모습을 갖추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산타클로스의 진화가 놓여있다. 터키 지역 주교 성 니콜라우스가 네덜란드 전승을 거쳐 뉴욕 사람들에게 수용된 이후 미디어를 통해 발전하는 과정은 근대 크리스마스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오늘날 우리는 ‘성탄 전야’라고 하면 산타가 썰매를 끄는 고요한 겨울밤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 이는 베들레헴이 아니라 뉴욕의 12월 날씨와 관련된다.
근대 크리스마스의 발전과 복잡한 상징체계의 형성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지만, 오늘 다룰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니 질문 하나를 던지며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흔히 이야기되는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존재하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 탄생의 의미만으로 구성되는 순수한 크리스마스는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러한 의미는 크리스마스를 모시거나 즐기는 사람들이 추구하거나 만들어 가는 상상의 산물이다. 근대 크리스마스 정신을 추구한 다양한 주체가 있다. 예컨대 〈크리스마스 캐럴〉(1843)을 쓴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도 그런 사람이었다. 소설 속의 크리스마스 유령(the Spirit of Christmas)들이 말하는 크리스마스 정신은 가난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고 가족이 함께하는 휴일이었다. 영화 〈34번가의 기적〉(1947)의 메이시스 백화점에서 알바로 일하는 산타는 자신을 “이기심과 증오를 억누르는 인간 능력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산타의 말은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우리는 상업주의와 박애, 이타심을 묶어서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서는 이들이 공존한다. 근대 크리스마스는 자본주의의 맥락 아래서만 이해할 수 있는 종교현상이다. 여기에 세속과 종교의 경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관한 학술적 논의가 생각만큼 많지 않았던 데에는, 둘의 경계를 넘어서는 논의가 종교학에서 오래되지 않은 탓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방원일_
bhang813@empal.com / 블로그: http://bhang813.egloos.com
주요 논문으로 〈원시유일신 이론의 전개와 영향〉, 〈한국 개신교계의 종교 개념 수용 과정〉 등이있으며, 지은 책으로 《메리 더글러스》, 옮긴 책으로 《자리 잡기》, 《자연 상징》 《(개신교 교사들이 본) 근대전환공간의 한국종교 I: 1879~19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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