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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16호-의대에 가는 이유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4. 2. 6. 17:53

의대에 가는 이유

 

news letter No.816 2024/2/6

 

 

 

의대 열풍. 최근 입시 풍토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의대에 있다 보니 실제로 그 현상을 체감하고 있다. 대전에 위치한 소위 지방 사립대이지만 다른 학과들에 비해 의대 입시 지원자는 언제나 차고 넘친다. 수시, 정시 뿐 아니라 재외국민 특별전형, 편입학 응시도 치열하다. 덩달아 지원자들의 이른바 스펙도 점점 대단해졌다. “SKY 붙었는데 안 갈래요지난해 13435년 새 최고”(중앙일보, 2024.1.21)라는 기사의 제목이 사실 그대로다. 이런 현상은 벌써 오래되었다. 2015년 처음 의대에서 강의를 할 때 수강생 중에는 이미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를 다니다 온 학생,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온 학생 등이 있었다. 당시에는 의대 강의가 처음이라 신기하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의대 입학생들의 연령이 점점 높아진다.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진학하는 학생들보다 다른 대학을 다니다가 혹은 졸업하고 오는 학생들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오히려 많아지는 추세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첨단산업 육성하겠다지만 이공계 인재들 빨아들이는 의대 블랙홀’”(한국일보, 2023.4.27)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어렵게 취업을 준비하느니 전문적인 의사가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SKY 간판도, 서울 생활도 포기하고 지방 의대에 왔지만 미래를 위해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의대 동기가 40명인데 그중 절반가량은 수도권에서 온 n수생이다. 결국 의대를 진학한 목적은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건 사실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이제는 대부분의 학생이 주저함 없이 그렇게 답한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여러모로 유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평균 연봉은 최상위권에 있을 뿐 아니라 직업을 유지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개원의가 되어 자신이 직접 혹은 공동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도 있고, 다양한 규모의 병원에 봉직의로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도 있으며,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의사에게는 사실상 정년퇴직이라는 개념이 없다. 말 그대로 평생 직업이다. 의사라고 해서 반드시 환자를 볼 필요도 없다. 의사는 다양한 분야로 진출이 가능하다. 병원 내에서도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병원 밖으로의 진출도 다채롭다. 실제로 많은 의사가 의사과학자, 변호사, 경영인 등으로 진출한다. 정년 개념 없이 평생 일할 수 있고,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거의 무제한이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직업이 또 있을까.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의사되기를 왜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런 현상이 늘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30여 년 전 고등학교 때를 떠올려 보면 당시에는 의대보다는 오히려 공대를 더 많이 진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의대를 진학하는 이유도 다양했다. “의대 입학 후 도 바뀐다”(의협신문, 2001.9.27)라는 제목의 20여 년 전 기사만 보아도 그렇다. Y의대 재학생 354명을 조사한 논문에 의하면, 의대 진학 동기가 개인의 가치관이나 의업에 대한 보람 등에 의해서(42.6%)”, “성적이나 의학에 대한 적성(23%)”,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명예 추구(15.6%)”, “가족의 바람이나 기타 이유(18.8%)”로 나타났다. 경제적 안정보다도 의업에 대한 보람이 훨씬 높은 의대 진학 이유였다. 응답자들이 실제 속마음을 그대로 진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의대생들이 안정된 직장을 진학 이유로 주저 없이 말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사회 경제적 환경과 문화가 변했기 때문에 의대를 진학하는 이유 그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직업관과 관련하여 의대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때때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일부 학생들은 의사 직업이 갖는 장점 중에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런 이유를 댄다. 다른 전공, 다른 대학을 진학한 학생들에 비해 의대생들의 대학생활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남들 놀 때 못 놀고, 제대로 된 휴가도 못 가면서 늘 긴장 속에 엄청난 양의 공부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도 의대 6, 인턴 1, 레지던트 1~4, 펠로우 1~2년 해서 통상 10년 이상을 이렇게 고생고생 공부하기 때문에, 의사가 되어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너무나 정당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젊음을 불사른 당연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요즘 다른 전공 학생들도 그리 쉽게 살진 않는다고, 그들도 의대생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산다고. 하지만 그렇게 10년 이상을 보내도 아무런 전망과 보장이 없는 전공과 직업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아주 많다고. 그렇기 때문에 같은 노력으로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의사가 되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게 얻는 좋은 대우가 그저 자기 노력의 당연한 대가로만 여기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냐고. 그 이면에는 복잡한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따라서 의사라면 최소한 타인에 대해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공감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물론 이런 꼰대스런 이야기가 잘 통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직의 특성상 이런 대학시절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이런 말을 들을 기회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는 바이러스다하는 심정으로 줄기차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주 간혹 마음에 쏙 드는 직업관을 보여주는 학생들이 있긴 하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다가 혹은 제출된 과제 보고서를 읽다가 아니 아직도 이런 학생이?”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 안정된 직장이나 높은 수입보다도 개인의 가치관이나 의업에 대한 보람을 진학 이유로 가진 학생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대체로 두 부류다. 첫 번째는 자신이나 가족이 병으로 고생할 때 만났던 친절하고 실력 있는 의사를 보면서 나도 저런 의사가 되어 아픈 이들을 도와주어야겠다고 결심한 경우이다. 두 번째는 의료선교를 하기 위해 진학한 경우이다. 학생 신상을 공개할 수 없어 언론에 보도된 비슷한 사례를 들면 이렇다. “의료선교를 꿈꾸는 청년들영혼을 살리는 의사 될래요”(CBS크리스챤뉴스, 2023.10.16)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뉴스에서 한 의대생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이제 선교사 자녀로 살면서 느꼈던 것은 아무리 사람이 돈이 많아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 하나님께서 정말 사랑하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한 영혼 한 영혼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방글라데시 빈민사역을 하셨던 부모님을 보고 자란 학생의 이야기다.

 

자신이 만났던 좋은 의사처럼 되고 싶은 학생, 부모님처럼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이웃이 되고 싶은 학생들이 졸업 후 의사가 되어서도 반드시 그렇게 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거꾸로, 지금은 안정된 직장과 높은 수입을 이유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살아가면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의사가 될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대생들에게 직업관, 의료윤리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학생 때부터 그런 가치를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때 종교나 신앙이 갖는 일정한 역할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의료선교가 능사는 아니다.

 

이만열은 한국기독교의료사(아카넷, 2003)에서 1885년부터 1945년까지 60년 동안의 한국 기독교 의료활동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말하길, “1885년 한국에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한국정부는 기독교 전도는 물론 학교 설립 활동조차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할 수 있었던 사업은 의료사업이었다(871-872).”고 하면서, “과거에 의료사업은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하여 전도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였고, 전도를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감당하였다(882).”고 진단한다. 말하자면 의료사업은 복음전도를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수단 속에는 가난한 자, 병든 자들을 향한 실천과 애정이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만열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당부한다. “기독교 의료진은 전도와 진료 어느 하나에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이 둘을 통합하는 사랑의 실천에서도 탁월해야 한다. 현재의 보건의료체제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어떻게 총체적 치유를 제공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이를 위해 개인적 삶과 의료체제의 관행을 재조정, 개혁하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898).”

 

종교가 갖는 순기능과 역기능은 언제나 공존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의 대명사가 되었다. 예컨대 넷플릭스 드라마 선산3화의 한 장면에서는 종교에 의한 가스라이팅의 위험성과 심각성이 지적되는데,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이미지는 이런 식으로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것, 아니 가르쳐야 할 이유를 설득하는 것조차 그리 녹록지 않다. 그런데 종교를 가진 의대생들의 가치관은 우리가 흔히 좋은 의사라고 여기는 의사의 모습, 즉 자신의 이익보다는 대가 없이 환자를 사랑으로 돌보는 의사상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은 안정된 직장을 우선으로 하는 학생들의 가치관과 명백한 대비를 이룬다. 의사상과 의료윤리의 측면에서 볼 때 종교를 가진 의대생들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종교와 의료윤리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종교와 관련된 교육이 의대생들에게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종교와 신앙이 의료인에게 미치는 의료윤리적 효과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의학교육과 관련하여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생각해보아야겠다.

 

 

 

 

 

 

 

김재명_
건양의대 의료인문학교실
최근 저서로 《죽음학교실》(공저), 《세속주의를 묻는다》(공저)가 있으며, ‘보건의료에서의 종교와 영성의 역할’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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