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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왜 장자보다 논어를 더 좋아할까?

 

 

news letter No.947 2026/8/11

 



 

새삼스럽게도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일본에 갔다가 뒤늦게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근 40여 년간 1만엔권의 인물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1835-1901)였는데, 2024년 7월부터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1840-1931)로 바뀐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사회에 시부사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의 주저인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 1916) 1) 또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1만엔권은 일본사회의 화폐유통을 대표하는 부동의 최고액권인데, 그 화폐의 인물이 바뀌었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화사적 사건임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그것은 최고액권의 상징이 ‘계몽의 시대’에서 ‘윤리적 자본주의의 시대’로 이동된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런가? 주지하다시피 ‘일본 근대화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추앙받는 후쿠자와가 문명개화와 독립자존 등의 계몽사상을 표상하는 인물이라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칭해지는 시부사와는 기업윤리와 공익 자본주의를 표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을 함께 놓고 보면, 메이지 일본은 사상의 혁신(후쿠자와)과 경제의 혁신(시부사와)이라는 두 축 위에서 형성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메이지 일본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 모두 논어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이다. 후쿠자와는 유교(특히 주자학)적 권위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논어를 현실적 교양으로 재해석했으며, 시부사와는 논어를 기업윤리와 자본주의의 도덕적 기초로 적극 활용했다.

여기서 후쿠자와의 ‘논어 재해석’에 대해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는 당대 일본인들의 시민윤리 계몽을 위해 평생학습(學而時習之, 學而篇), 좋은 인간관계(有朋自遠方來, 學而篇), 사회적 신뢰(人而無信 不知其可也, 爲政篇), 자기수양(吾日三省吾身, 學而篇) 2) 등과 같은 논어의 지혜가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시부사와 또한 일본 자본주의의 성전이라 할 만한 『논어와 주판』에서 후쿠자와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신용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다.”(人而無信 不知其可也, 爲政篇)는 논어 구절에 주목하면서 그것을 기업윤리의 모토로 강조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이익을 보면 먼저 의를 생각하라.”(見利思義, 憲問篇)는 논어 구절을 자본주의의 도덕적 기초로 간주했다. 요컨대 그는 “도덕과 경제의 합일(道德經濟合一)”을 주장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후쿠자와와 시부사와는 둘 다 비판의 대상이다. 주지하다시피 후쿠자와는 당시 중국과 한국을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악우(惡友)”로 규정한 탈아론(脫亞論)의 주창자였다. 한편 시부사와는 식민지 조선에 있어 경부철도 투자, 운송망 구축, 제일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 설립, 일본기업의 조선 진출 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로서, 군국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의 경제적 팽창과 식민지 경영을 정당화하고 지원한 대표적인 기업인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선각자적인 발상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이들뿐만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사이고 다카모리 등 일본인이 찬미하는 인물들이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열에 여덟 아홉은 대개 부정적인 대상이라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퇴계라든가 성신지교(誠信之交)를 몸으로 주창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처럼 양국 모두에서 존경받는 인물도 적지 않으니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논어에 대한 일본인들의 특별한 관심은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일본적 유학 즉 고학(古學)의 창시자 이토 진사이(伊藤仁斎, 1627-1705)이다. 그는 논어를 “우주 제일의 책”이라고 극찬하면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인(仁) 곧 사랑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주자학에서는 사랑은 감정일 뿐이므로 그 바탕이 되는 형이상학적 이치(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진사이에 따르면, 논어의 인은 형이상학적인 천리가 아니라 부자간, 군신간, 부부간, 붕우간의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사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마디로 진사이에게 논어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책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 고학의 완성자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에게 논어의 핵심은 예(禮)이다. 하지만 그것은 주자의 도덕적 예가 아니라 국가제도와 사회시스템 자체를 가리킨다. 소라이는 논어를 정치 운영의 매뉴얼에 가까운 것 또는 최고의 정치철학서 중 하나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밖에 논어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곧 무사라고 보았던 병학자 야마가 소코(山鹿素行, 1622-1685), 효를 가르치는 가정교육의 텍스트로 논어를 이해한 본초학자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 논어 정신을 농촌 개혁운동의 원리로 삼았던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 1787-1856) 등을 비롯한 수많은 근세 지식인에게 논어는 매우 친근한 책이었다. 나아가 논어는 무가와 거상 집안의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만큼 당대 최고의 교양서로 널리 읽힌 책이었다.

일본인의 논어 사랑은 오늘날에도 옷을 바꿔 입으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1년 3·11 직후에는 지역 공동체와 시민윤리 재건이라는 맥락에서 공공철학과 논어가 함께 빈번히 논의되었다. 나아가 코로나19 이후에는 관계성, 신뢰, 지역공생, 커뮤니티 디자인, 웰빙, 사회자본, 레질리언스(회복 탄력성) 등의 맥락과 함께 학교교육, 기업윤리, 경영철학, 정치담론 속에서 논어가 계속 언급되어 왔다. 일본의 대형서점에 가면 인문서적과 동양철학 코너뿐만 아니라 자기개발, 비즈니스, 리더십, 경영 코너에서도 쉬이 다종다양한 논어 관련 스테디셀러들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현재 일본의 경영세미나, 신입사원 교육, 리더십 교육 등에서는 거의 모두 논어와 시부사와 등이 중요한 기축을 이루고 있다. 일본사회에는 지금도 논어가 생생한 육성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오래 전 TV뉴스에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1947-현재) 전 총리가 경남 합천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만나 무릎 꿇고 사죄하던 장면이 문득 생각난다. 그는 종종 자신의 정치철학인 ‘우애(友愛)’를 설명하면서 논어의 인(仁)과 서(恕)에 관해 언급하곤 했다. 일본에서 논어는 이렇게 외교 윤리의 언어라는 옷을 입기도 한다.

차제에 일본인의 논어 사랑을 계보화해 보자. 진사이는 일상의 인간학으로, 소라이는 정치학으로, 후쿠자와는 시민교육으로, 시부사와는 자본주의 윤리로, 그리고 3·11 이후는 공공성으로, 코로나19 이후는 관계성과 신뢰의 레질리언스로,3) 특히 마쓰시타 고노스케(파나소닉) 및 혼다 소이치로(혼다)와 함께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1932-2022)를 비롯한 현대 일본기업은 조직과 리더십의 실천철학으로 각각 논어를 변용시켜 왔다.

이쯤 해서 “일본인들은 왜 노자나 장자보다 논어를 더 좋아할까?”라는 물음을 던져볼 만하다. 크게 보자면 그 배경에는 초월적 원리보다 일상 속 실천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문화적 토양이 있었다. 이와 동시에 막번체제 하에서 유학(주자학)이 조직 질서를 뒷받침하는 학문(관학)으로 발전했다는 사회질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여기서는 답변의 실마리를 후자의 질서 관념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가령 노자의 무위 사상과 장자의 소요유와 제물론 등과 같은 개념은 기존 질서를 상대화하는 철학이다. 이에 비해 일본인은 특히 에도시대 이래 철저하게 인간관계나 사회적 질서의 차원에서 논어를 받아들였다. 흔들리는 땅 일본에서 안정된 사회적 질서야말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지켜내야만 할 지고의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일까? 이런 맥락에서 일본인에게는 질서가 곧 종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일본인에게 논어는 그런 ‘질서 종교’의 성전으로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성전이 제시하는 가장 핵심적인 계명은 “임금은 임금의 자리를 지키고, 신하는 신하의 직분을 지키며, 아비는 아비다운 책임을 다하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의무를 다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顏淵篇)는 구절일 것이다. 이는 “나를 버리고(無私) 각자에게 알맞은 제자리에서 주어진 역할과 직분 수행에 최선을 다한다.”는 역(役, 역할)의 원리에 입각한 최고의 일본적 가치인 성(誠, 마코토)의 윤리에 안성맞춤인 계명이 아닐 수 없다.

노자와 장자가 일본보다 훨씬 대중적인 한국사회에서도 근래 논어붐의 조짐이 보인다. 언어와 예절과 인간에 대한 신뢰가 크게 균열된 사회의 정신적 질서 회복을 추구하는 지난한 레질리언스의 몸짓일 것이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만 읽었던 논어를 학이(學而)편 첫 구절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요왈(堯曰)편 마지막 구절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也)까지 통독한 것은 퇴직한 후에야 가능했다.

배움과 학문(學)은 결국 말하기와 글쓰기, 듣기와 읽기를 포함하여 자타의 언어를 이해하는(知言) 문제로 수렴된다는 말인가? 이순(耳順)의 끝을 향해 질주하는 지금까지도, 나는 남의 말을 듣는 데에 인색한 채 도달하지 못했던 저 불혹(不惑)의 불가능한 성벽 아래에서 과거의 독백만 되풀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나에게 논어가 여전히 미지(無以知)의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1) 국역본은 이영자 역, 『논어와 주판』, 매일경제신문사, 2019.
2) 유서 깊은 일본 최대 서점 가운데 하나인 산세이도(三省堂)라는 이름도 이 논어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3) 가령 최근 출간된 『타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논어 입문』(他者と生きるための『論語』入門, 福本郁子著, 圖書出版みぎわ, 2026) 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박규태_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저서로 《한과 모노노아와레: 한일 미의식 산책》,《현대일본의 순례문화》,《일본재발견》,《일본정신분석》,《일본 신사의 역사와 신앙》,《포스트-옴시대 일본사회의 향방과 '스피리추얼리티'》,《일본정신의 풍경》 등이 있고, 역서로 《일본문화사》,《국화와 칼》,《황금가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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